(68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66일째’는 ‘그 섬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었습니다.
금주하면서 참석하는 회식자리가 저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는데, 남들은 술 안 마시는 제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가 봅니다.
뭘 해도 늦은 나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온 경험의 가치가 좋은 작품으로 빛을 발하는 거라 생각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겠죠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68일째
스페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와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스페인 사진을 보니 뜨거운 태양볕 그늘아래서 마시던 와인의 맛과 향이 그대로 되살아나 입가를 맴돌고 침샘을 자극합니다.
얼마 전 스페인 다녀오신 분 덕에 저의 머릿속 뇌의 활동은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열정의 나라 스페인의 라만차 지역과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등등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전경. 스페인에서 날아온 따끈따끈한 사진. 2025. 10)
어렸을 적 청소년기 호기심이 강하던 시기에 우리에게는 깔때기 이론이라 부르는 게 있었습니다.
깔때기는 좁은 입구의 용기에 참기름이나 밀가루 등을 부어 넣을 때 사용하는 원뿔형 도구인데, 우리 대화가 아무리 다양해도 결론은 한 곳으로 모일 때 깔때기라 불렀답니다.
대화를 하다가 실마리 하나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작용이 있는데 그게 어떤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지면 그게 바로 깔때기 이론입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할 때라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이성’ 이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뭐했어 하고 물어보면 숙제하고 티브이 봤는데 하다가 드라마 속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들고, 밥 먹다가 반찬이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떡볶이가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대화의 귀결이 결국 이성에 대한것이 되버립니다.
어른이 되고 직장에 다니고부터는 이 깔때기 이론이 다른 목표로 작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고생했으니 술 한잔하지, 어제 술 많이 마셨으니 오늘은 해장술 해야지, 스트레스받은 날은 내가 받든 동료가 받든 그래서 또 한잔, 모든 결론은 꼴깍! 한잔해야지! 집안일은 비겁한 변명이고, 몸이 아프다는 건 덜 마셔서 정신 못 차린 것이고 어쨌든 간에 안 마신다는 건 배신이고 조직에 대한 반항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조직문화도 바뀌고 저도 금주로 이 생활에서 좀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저는 와인 깔때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작년에 스페인 갔을 때 점심, 저녁으로 스페인 와인에 흠뻑 빠져 살았거든요.
하몽과 빵, 다양한 음식과 함께 마시는 와인은 최상이었습니다. 경치며 분위기가 낯설지만, 맛과 향이 좋은 와인은 그 낯섦을 신선함과 약간의 흥분으로 바꿔주었습니다.
가성비도 최고입니다. 바르셀로나 선착장에서는 가격이 너무 좋아서 와인을 몽땅 사다가 숙소에서 맘껏 즐기기도 했지요.
(바르셀로나. 저 푸른 바다와 하늘같은 낭만과 열정의 도시 - 2025.10)
스페인 와인 중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의 배경이 되는 지역 이름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라만차 와인은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낭만과 열정이 듬뿍 느껴집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에 나오는 다소 허황되지만 꿈을 꾸는 이들의 낭만을 대변하는 명대사입니다. 저는 가끔 술자리 건배사할 때 사용하곤 했습니다. 요즘엔 건배사 하면 꼰대 느낌이지요.
실제로 라만차 지역은 스페인 최대의 와인 생산지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넓은 생산 면적을 자랑합니다. 고원 평야와 건조한 기후가 독특한 와인 생산 조건을 만들어준다고도 합니다.
이런저런 깔때기가 작동되니 술을 안 마셔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제가 먹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술자리에 참석해서 술을 안 마셔도 남이 술 마시는 것을 보면서 은근 대리만족이 되는 겁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유튜브로 먹방을 보는구나 하고 이해가 됩니다.
이제 술을 안 마시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계에 올라선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이 금주가 끝나는 날 라만차 와인으로 기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페인에서는 건배할 때 ‘살루드’라고 외칩니다. 건배! 또는 ‘건강하세요!’라는 뜻이랍니다.
스페인의 술기운을 전해주신 분과 아직까지도 깔때기 이론을 사랑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건배하겠습니다.
살루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