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64일째’는 ‘금주에 대한 통증의 관점’ 이었습니다.
가을이 한창이라 가는 곳마다 축제와 행사인데 그곳에 푸드 트럭과 주막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금주중이라 그런지 술자리가 더 끌립니다. 금지된 것에 더 끌리는 인간의 욕망 같은 걸까요. 견디어야 하는 정신적 통증은 주막 사이로 다니는 제 발걸음을 힘들게 합니다.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66일째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오늘도 회식자리에 참석하여 술 마시지 않고 버틴 후 돌아오는데 찬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제 금주하면서 참석하는 회식자리가 저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가는데, 남들은 술 안 마시는 제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가 봅니다.
가을 분위기에 맞는 쓸쓸한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가을 억새밭에서
\ 정은정
저 혼자 저물어 가는
가을 억새밭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바람이 불어야 몸짓을 시작하며
능선마다 출렁이며 털어 내는
비늘을 품에 안고
역류하는 해를 마주한
억새의 어깨가 눈부시다는 걸
가을 억새밭에 서 본 사람은 안다
아름다운 것들도 언젠가는
푸석한 잡초가 되고
계절이 깊어지면
산속의 바다도 쓸쓸해진다는 것을
가을 억새밭에 서 본 사람은 안다
빛이 사라지면 스러지고
빛을 받으면 타오르는
고개 숙인 가을을 아쉬워하는
남자 같은 것이 억새란 걸
가을 억새밭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꽃처럼 피어나고 싶어
뜨거움도 비우고
혈기도 비우고
비울 것 다 비우고
성성한 백발로 서서
거울처럼 빛을 퉁기며
한줄기 억새로 서 있는
그 섬이 자신이란 것을.
. . 끝. .
(아이패드에 끄적거린 가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늘 책 욕심만 앞섭니다.
‘내몸엔 바다가 산다’ 정은정 시집에 나온 시인데 가을엔 감성 가득한 시집 한권 정도 읽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억새 앞에서 느낄 내 섬은 어떤 걸까요? 제 섬 같은 마음이 담긴 그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위 그림은 중국의 고흐라고도 불리는 팔대산인 이 그린 "팔팔조도"입니다.
고독이란 단어를 잘 표현한 화가로 유명하답니다.
그림은 외로움과 고독이 주제인데, 정은정 님의 시 (詩)도 비슷한 분위기로 가을 억새 앞에서 느끼는 쓸쓸한 마음이라 이 글에 함께 담아보았습니다.
팔대산인 이분이 붓을 잡은 건 60대였답니다.
그리고 70대가 넘어서야 팔팔조도와 같은 걸작을 남겼다네요.
뭘 해도 늦은 나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주제 사라마구" 연금술사의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 모두 60,, 70세 넘어서 대작이 되는 좋은 작품들을 내놓았으니까요.
우리나라 작가님들도 박완서 님처럼 늦게 등단하셔서 좋은 작품을 독자들 품에 안겨주신 분들도 있고, 황석영 님처럼 노년에 왕성한 작품 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살아온 경험의 가치가 좋은 작품으로 빛을 발하는 거라 생각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겠죠.
그런 의미로 이렇게 늦은 책소개 하나 하겠습니다. 작년에 읽은 책으로 제목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입니다
이 책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히 소설이 좋아서이지만, 이 작가에게 더 주목되는 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출판사에서 98번을 퇴짜맞고 99번째 에야 출판계약을 이루었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더 놀라운 것은 이 작가님이 64세에 처음 쓴 소설이라는 겁니다.저는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 책을 잡는 순간부터 두 권을 쉬지 않고 쭉 읽었습니다.
읽는동안 ‘랩걸 -과학과 나무와 사랑’이라는 책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책이 떠오르며 비교하며 읽게 됩니다.
여성과학자나 과학기자가 나오는 미국책이라는 점과 편견에 맞써 진실을 추구하는 역경이 세 책의 비슷한 점이라면, 소설과 에세이,논픽션이라는 차이와 주인공이나 저자가 바라보는 관점과 시점의 차이가 있고, 화학, 식물학, 물고기학문등 분야의 차이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렇게 말했죠.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번 째 봄이다.’
억새밭에 흐르는 바람과 햇빛처럼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해야 될 일은 많은데, 뭔가 늦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나의 내면을 돌아보는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만큼은 늦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앞에 소개한 그림이나 책, 글처럼 나의 내면 속에서 그 시간들이 서서히 잘 익어가고 있을테니까요. 까뮈의 말은 그냥 잎이 알록달록 꽃같아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도 생각하고 행하기에 따라 이 가을이 새롭게 시작하는 봄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농익은 작품을 남기는 거겠죠.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내 인생이라는 그런 작품을 나만의 섬에다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