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일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opening)
그동안 쓴 글들을 브런치 매거진 1, 2권에 모아 놓았다가 양이 좀 많아서 브런치 북으로는 어떻게 만드나 하면서 편집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교정이나 이것저것 편집도 되지 않은 채 저번 글까지 묶여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저의 귀찮음 탓입니다. 제목은 ‘슬기로운 금주생활’ 로 준비 없이 만들어졌는데 목차 추가나 편집이 안되나 봅니다. 이후 이야기는 여기 매거진에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글 목록에서는 예전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58일째’ 는 ‘당신은 나를 만난 적이 없어요. 자전거 사고’ 였습니다.
이 글쓰기가 있었기에 금주를 계속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어제는 여러 해프닝 속에 결국은 음주를 멀리한 채 아주 멀리까지 라이딩을 다녀왔습니다. 연휴기간 중 가장 장거리 코스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보니 오늘 아침 가슴이 뻐근하고 온몸이 욱신거립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겠습니다. 혹시 갈비뼈에 금이 간 것은 아닌지..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 63일째
자전거 사고로 인한 통증이 계속 있어 결국 병원에 갔습니다. ‘좌측 제 6,7번 늑골 골절’ 이라는 진단서를 받았습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고 X-ray로 보니 금이 간 모양입니다. 갈비뼈를 다쳐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깁스를 할 수 없어 진통제 맞고 움직임을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조심히 다니면 생활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아프다보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제 잘못인데 남 탓도 하게 됩니다. 남 탓이라 해야 결국 자전거길바닥, 날씨, 브레이크 성능, 스마트 워치의 기능 같은 주변 환경 탓입니다.
다친 몸도 아픈데 내 잘못이라 생각하면 마음도 아프니 그걸 피하고 싶어 이 모양입니다. 그런데 남 탓, 환경 탓, 기계 탓, 날씨 탓 온갖 심리적 방어기제를 다 동원해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결국 제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입니다.
학교에 가서 엄마에게 받아온 급식비를 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준비물을 사서 가방에 넣고 등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서 몇 시간 지나 선생님에게 가져온 급식비를 내야 하는데 가방 앞쪽 지퍼에 넣어온 돈이 없는 겁니다.
당황해서 정신없이 찾아보았지만 여기저기 뒤적거려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차분하게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혹시 어디서 가방을 열어 흘린 적은 없냐고, 무슨 생각나는 거 없는지 물어보십니다. 친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저는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때 아침 문방구 기억이 났습니다.
준비물 사러 문방구에 갔을 때 같은 반 아이를 만났었는데, 손버릇이 나쁘다고 소문난 아이였습니다.
문방구에서 그 아이는 제가 가방에서 돈을 넣고 빼고 어디다 두었는지 보았을 거라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아침 문방구 건을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그 아이는 집안 형편도 좀 어려웠고 결손가정이었습니다. 실제 그 아이가 손버릇이 나빴는지,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짓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불러서 압수수색하고 자백을 받아 일이 끝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돈을 찾기전에 그 아이가 돈을 다른데 숨겼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까지도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한잠을 생각하시더니 알았다고 하고 가방을 놓고 들어가라 하십니다.
선생님은 내 가방 여기저기를 자세히 보시더니 어렵게 가방 밑바닥 어느 공간에서 조금씩 무언가를 움직여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가방 앞쪽 주머니 아래에 구멍이 나서 돈이 가방 아래에 있는 다른 어느 공간으로 흘러 들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낯이 뜨거워집니다.
그 당시에 저는 실수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창피한 것은 알았겠지요.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나의 실수로 치부하고 그 아이를 의심한 건 그냥 그렇게 넘어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사건은 제 마음속에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내 잘못을 남 탓으로 해놓고 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마음 한 켠에만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편견이나 선입견, 남 탓 이런 잘못은 안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멀었습니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잘못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그때 일이 생각나곤 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상처가 생기고, 그 흔적이 남습니다. 그 외에도 살아오면서 몸의 여기저기 상처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흔적들을 볼때 희미하지만 그 아픈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으로부터 내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내 스스로의 잘못으로도 상처가 납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나 콤플렉스 같은 흔적이 남습니다.
조그마한 생채기로 남았다가 서서히 사리지기도 하지만 큰 흉터로 남기도 합니다. 노랫말 따나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프기도 합니다. 너무 오래되어 없어진 줄 알았다가 어느 순간 불쑥 다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실, 초등학교 가방 사건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서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작동되곤 합니다.
나의 판단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남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잘못은 아닌지. . 이 테스트 용기에 담가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채사장) 에 나온 글이 떠올라 여기에 옮기고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신체의 내면을 보고, 신체는 통증을 통해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이 글처럼 요즘 저는 자전거로 인한 부상과 통증을 통해 저의 내면을 바라봅니다. 이 글을 쓰고 나니 통증이 좀 사라진 듯도 하여, 좌측 늑골 제 6,7번이 잘 붙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