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되는 법

(100일째) I'm on the wagon.

by 하늬바람

(opening)


저번 편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99일째는 ‘Retro와 Vintage, 그리고 Stay - 어반 자카파 (Urban Zakapa)’ 였습니다.


그래서 책은 다른 매체와 달리 레트로보다는 고전이거나 빈티지이고, ‘E.H 카’ 가 이야기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역사와도 같다는 생각입니다.

널 사랑하지 않아. 니가 싫어 라고 어반 자카파가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당분간은 아니 오랜 기간 우리는 책과 헤어지긴 힘들 겁니다.
Stay in my dream

(opening 끝)


오늘은 여기부터입니다.

슬기로운 금주(禁酒) 생활 100일째


나답게 되는 법

- I'm on the wagon for 100 days.


드디어 100일째입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금주생활이 한 달을 넘기니 욕심이 생겨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원동력은 브런치에 글쓰기였습니다. 브런치에 슬기로운 금주생활을 연재하면서 글 쓰는 재미가 붙었고, 호응해 주신 분들도 있어서 계속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거꾸로 금주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금주로 인한 글쓰기의 주제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의 일상과 생각의 파편들을 소재삼아 적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금주와 글쓰기가 상부상조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한셈입니다.


뭔가 목표를 세워서 했던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기억이 없습니다. 무난한 성격에 그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그런 성향이라 무언가 목표를 세워서 달성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목표달성도 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걸 얻었습니다.

금주 100일간에 58편의 에세이를 썼습니다. 정식으로 써본 적이 없던 터라 생각이 다듬어지지 않았고 문장도 거칠지만 그냥 써보았습니다.

슬기로운 금주생활이란 매거진을 만들고 금주기간 동안 일상의 모습과 생각을 기록했고, 내 맘대로 문학기행이란 주제로 그동안 읽었던 글이나 책들을 통해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금주를 하게 된 동기는 확실치는 않지만 금주를 통해 얻은 건 확실합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자타공인 주당이라는 명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남들보다 술이 세고 술 마셔도 뭐든지 잘한다는 알량한 자만감도 있었고, 이태백을 존경하며 그처럼 술과 글을 벗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과하면 넘치고 넘치면 주워 담지 못할 테고, 공자님 말씀 따나 과유불급이라고 한 번은 돌이켜 볼 때가 되었던 겁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들도 보게 되고, 제가 챙겨야 할 일도 생기고, 무엇보다 내 안에 무언가가 소리를 낸 거 같습니다. 나는 아닐 거야, 문제없어라는 생각은 예외법칙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좀 미리 깨달았다랄까요. 아니 좀 늦게 철이든건가요.


회사에서 진행한 금연클리닉에 참여했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금연도 되는데 금주도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고 이왕 하는 거 남들한테 대놓고 공개까지 했습니다.

금주에 대한 응원도 있었지만, 돌아온 건 어디 아프냐는 우려가 가장 많았고, 약간의 냉대와 적당히 하지 하는 조언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당연히 그냥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술을 안 마시고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구나 피부로 느낍니다. 나는 주류라 행복했구나 생각합니다. 주류 (主流) 말고 술 주자가 들어간 주류(酒流) 이야기입니다. 하여튼 이번 금주기간을 통해 그동안 과했던걸 조절하는 방법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몽테뉴가 쓴 수상록입니다.

몽테뉴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시작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은 변화하고 복잡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것만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모순을 솔직하게 탐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실천적인 지혜를 통한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나답게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이번에 저도 이 기간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조금 더 다가가 보았습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더 성숙해져서 조금이라도 나답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에서 술 이야기 잠깐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몽테뉴는 술은 인간관계와 교류에서는 필요하지만 취한 모습은 몰상식한 행위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가 진정 인류의 스승이자 최고의 성인으로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술에 대해서는 그의 지혜만큼이나 애주가인데다가 대가였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마셔댔는지 그의 수제자인 플라톤이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무절제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석해진다’ 고 저서 ‘향연’ 에서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역시 주량이 중요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변론을 하고 제자들의 권유에도 탈옥하지 않고 독배를 마십니다.

그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감옥에 갇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스스로 감옥에서 나오지 않고 자신을 유폐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찌 보면 이 세상은 다양한 감옥으로 구성돼있는 것도 같습니다.

자신이 만든 감옥, 회사라는 감옥, 너라는 감옥(?), 사회의 시선이라는 감옥, 존재나 조직은 자칫 서로를 얽어매는 감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가둔 건 물질적인 감옥의 건물뿐 아니라 인간대중들의 편견, 무지, 반감, 오해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금주생활이라는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보았습니다. 저야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한 술을 좀 참아본 것이고, 아직도 그 감옥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이제 더 큰 감옥으로 나가야 되겠지요.



PS. 1

태백산맥을 쓰신 조정래 님이 예전에 황홀한 글감옥이란 에세이 집을 내놓으셨습니다. 실제로 태백산맥을 비롯한 현대사 3부작 대하소설을 쓰시면서 술을 한 모금도 안 드시고 자신을 글감옥에 넣으셨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PS. 2

I'm on the wagon

(금주하고 있다. 술 끊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선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 먼지가 이는 걸 막기 위해 말이 끄는 물차(water wagon)가 다니면서 도로 위에 물을 뿌렸던 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술 대신 물을 마신다는 이미지를 풍기는 관용어라고 합니다. 반대말은 I'm off the wagon.


PS. 3

알게 모르게 이 글들에 모티브가 되거나 글감을 제공해준 분들과 일상의 소재에게 감사드려야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빛나게 해준 별똥별, 대봉감, 빵들, 바다, 바람과 소나기, 나무, 자전거, 제 갈비뼈, 여행지, 계절, 소중한 책과 시, 글귀들, 이야기, 인류의 위인들,

그리고 술. . 모두 함께해서 행복한 아름다운 글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