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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Apr 08. 2022

꽃을 사듯 미나리를 산다.

- 연녹색의 미나리 한 단을 일단 집는다


꽃을 사듯 미나리를 산다.


살 게 있어 대형마트에 들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야채 코너가 보인다. 진열도 사람 심리를 분석해한다던데 효과가 확실하다. 입구에 싱싱한 야채들이 보이면 뭐가 요리를 하고 싶어 진다.


선명한 붉은색의 파프리카, 튼실해 보이는 무, 초록색 아기 주먹 같은 브로콜리를 보다가 미나리 앞에 멈춰 선다. 싱싱한 청도 미나리가 투명하고 얇은 비닐에 쌓여 있다. 12시간 안 된 시간, 진열을 막 끝냈는지 미나리는 꽤 많이 쌓여 있고, 하나하나가 다 싱싱해 보인다.


푸릇푸릇 싱그러워 보이는데, 그 향까지 신선해 머릿속이 맑아진다. 연녹색의 미나리 한 단을 일단 집는다. 꽃다발처럼 그걸 들고 2층 공산품 코너로 올라갔다. 화장품과 세제 코너를 지나는데, 평소 같았으면 싫은 표정을 지었을 내가 무사통과. 그만큼 미나리 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용품 코너에 서 있는데 행사를 하시는 분이 다가왔다. 제품을 추천받아서 하나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것 말고도 더 살 게 있어 서 있는데 행사하시는 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미나리 요새 맛있죠? 그거랑 같이 무쳐 먹으니까 맛있더라고요. 뭐였더라? 아 꼬막!”

“아~ 꼬막이요? 진짜 맛있겠네요. 근데 저는 꼬막 데치는 게 어려워서. (에헷;;)”

“아니면 새콤달콤하게 미나리만 무쳐도 맛있고 데쳐서 나물로 해도 맛있잖아요.

새우 넣고 전 만들어도 좋고.”

“그렇네요. 다 맛있겠네요.”

“요새 미나리는 거머리도 없고 맛있어요.”

“맞아요. 저 미나리 좋아하는데 샀을 때 거머리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특히 청도 미나리엔 거머리가 없어요.”

“그렇죠? 거머리 있으면 어떻게 먹어요.~”

“요새 미나리 맛있고 향도 좋으니까 맛있는 거 많이 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필요한 걸 하나 더 장바구니에 넣고 돌아섰다. 차 용품 매대 앞에서, 실컷 미나리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이다.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내용도 선명하게 기억날 만큼 유익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웃겼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 반찬가게를 들렸을 때 일단 꼬막무침부터 샀다. 나는 꼬막 반찬을 하지 못하므로(못한다? 안 한다?) 그걸 사서 미나리를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다.


대신 미나리 전은 직접 할 계획이었다. 우리 딸이 또 미나리를 좋아하므로. 그렇게 차린 저녁 식탁, 꼬막을 너무 좋아하는 둘째가 꼬막에 미나리를 얹어 먹더니 “오오~~!” 감탄사를 내뱉고 연신 먹는다. 꼬막은 별로라는 우리 첫째는 미나리 전만 공략. 나는 둘 다 골고루 맛있게 먹었다.


싱크대 위에는 씻어놓은 미나리가 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씻을 때 향이 더 강해졌는지 싱크대와 식탁 주변에 미나리의 시원한 향이 그득하다. 꼬막에 곁들여 먹고, 미나리 전을 부쳐먹어도 미나리는 그만큼 남아있다. 양도 많고 싸서 더 예쁘다.


저녁 설거지 후에도 미나리는 한동안 싱크대 위에 있었다. 꽃보다 더 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서 품에 안고 돌아다닌 것과 다름없다. 꽃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그 향을 내내 즐긴 것처럼 미나리로 하루 반나절을 즐겼다. 앞으로 종종 꽃을 사듯 미나리를 사게 될 것 같다.


(※ 미나리의 강한 향은 방향성 정유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방향성 정유 성분이란 식물의 원초적 방어 기제로 식물 스스로 독특한 향을 냄으로써 번식을 유지하는 기능이라고. 미나리는 의학적으로도 탁월해 독소를 배출하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한다. )


여러모로 좋은 미나리 봄철에 많이 드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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