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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늑한 서재 Apr 17. 2022

핫도그 하나 주세요, 하고 내밀었던 50원.

-문방구표 미니 핫도그와 편의점 닭꼬치 

엄마에게 200원을 받으면 나는 부자가 되었다. 백 원을 갖고 문방구에 가면 작은 핫도그를 50원에 사 먹을 수 있었다. 분홍 소시지는 새끼손가락만 했고 핫도그는 어른 손가락 세 개 정도 합친 크기였다. 반죽도 문방구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물에 개어 만드셨다. 


분홍 소시지를 양푼에 담긴 반죽에 푹 찍었다가 기름에 넣는 아주머니의 손동작은 빠르고 정확했다.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핫도그들이 철망 위에 하나씩 놓였다. 


"핫도그 하나 주세요." 하고 내밀었던 50원, 혹은 100원. 


그거 하나면 배가 불렀다. 사서 들고 있기만 해도 뿌듯했다. 일단 핫도그를 하나 사들고 문방구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돈돈 초코볼,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 얼굴이 그려진 딸기맛 캐러멜.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지만 꼭 참았다. 


핫도그를 일단 손에 넣었으니 내일의 행복을 위해 50원은 주머니에 저장. 은색의 작고 반짝이는 50원은 내게 황금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주머니에 잘 넣고 핫도그를 야금야금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작은 내가 또 그렇게 작은 핫도그를 손에 쥐고 행복해했다는 사실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미니 핫도그 하나에 행복해하던 아이의 마음이 무턱대고 그립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한 번씩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에 몽실몽실 안개가 차오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옆 집 언니를 따라 교회 가던 시절, 꼬마인 나는 생각한 것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 50원짜리 돈돈 초코볼을 사기 위해 헌금 100원을 통 안에 넣고 50원을 거슬러 받는다. 그리고 신에게 속삭인다. '전 애초에 50원만 낼 생각이었는데 100원짜리밖에 없으니 50원 거슬러 갈게요.' 


그렇게 손에 넣은 50원짜리 초코볼은 어쩐지 그전만큼 맛있지 않았다. 헌금통에 손을 넣었다 뺐을 때의 촉감까지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의 내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다. 




며칠 전, 열 살을 넘긴 둘째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편의점 닭꼬치 너무 맛있어!" 난 깜짝 놀라 아이를 쳐다보았다. "뭐? 밖에서 뭘 사 먹었다고?" 


아이는 지금껏 밖에서 컵떡볶이 하나 마음 놓고 사 먹지 못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더러운 손으로 뭘 먹으면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고 단단히 교육을 해왔기 때문이다. 수긍하고 말을 잘 듣던 아이는 이제 열 살이 넘었고, 학원과 학원 사이 빈 시간에 친구와 편의점에 갔던 모양이다. 


아이의 친구 녀석은 형도 있고 경험이 많다. 편의점도 다녀봐서 뭐가 맛있는지 잘 안다. "엄마, 나 용돈 좀 주세요. 닭꼬치 얻어먹었으니까 나도 뭐 사줘야 해요." "얼마?" "한 삼사천 원쯤?" 나 어릴 때와 비교하면 안 되지만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었던 50원짜리 동전 하나가 떠오른다. 


이제 둘째도 밖에서 사 먹는 군것질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인가. 불량식품(?)을 파는 구멍가게가 없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편의점이나 무인 할인점을 들락거리는 아이들에겐 뭐가 추억이 될까? 바코드를 찍는 기억? 삼각김밥과 닭꼬치? 매일 가도 살 수 없는 포켓*빵? 문득 아이가 추억할 '지금 이 순간'이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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