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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베 May 03. 2024

뭉뚱그림에 대하여

형상이 아닌 형태

뭉뚱거리다 : 여러 사실을 하나로 포괄하다


나무를 본 적 있나요?


어느 날과 다름없는 어느 날 오후, 출근길에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을 기다린다.


우연치 않게 바로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나무를 들여다보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최근에 나무를 본 기억이 있는지.


아마 대부분 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높이가 수 미터가 되는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아니더라도,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 된 나무가 아니더라도,

분명히 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오가는 길에서, 좁은 골목길에서, 집 앞 놀이터에서

분명히 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여러분이 본 나무는 어떤 형상이었는가.



나무를 보다.


여러분이 본 나무는 어떤 형상이었는가.

내가 본 나무의 형상은 이렇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하루에 수 십 그루의 나무를 본다.


하지만 이 날,

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나무는 갈색 몸통에 초록색 잎이 달린 형태였다.


이 날, 몇 년 만에 나무의 형상이 아닌 형태를 자세히 관찰해보았다.

불규칙적이면서도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겨져있는.


길거리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같은 품종의 나무라도

뭉뚱그려보지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린 모두 다르다’ 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형상이 아닌 형태


나무의 형태를 천천히 관찰하며, 표면을 만져보며

‘내가 그동안 사물을 자세히 뜯어보지 않고 너무 뭉뚱그려 보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과연 사물만 뭉뚱그려 보았을까’


이전의 ‘행복하지 않음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불행’ 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옮겨적었다.


어쩌면 ‘행복’, ‘불행’ 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의 감정을 뭉뚱그려 포현한 것이 아닐까.


‘행복’의 감정은 즐거움, 흥분, 성취감, 안정감, 편안함 등으로.

‘불행’의 감정은 괴로움, 슬픔, 우울함, 상실감, 평안함 등으로.


뭉뚱그린 형상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뭉뚱그려질 수 밖에 없다.

뭉뚱그린 형상이 아닌 정확한 형태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 뭉뚱그려 보지 않았을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자세히 관찰한다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의 형상이 아닌 형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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