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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Apr 03. 2023

보는 춤에서 움직이는 춤으로

춤은 뇌의 발달와 즐거움을 위한 몸짓

 멋진 춤을 감상하면 눈이 즐겁다. 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동작이나 표정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리드미컬하게 팔과 다리, 골반, 허리 등을 움직이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셔플댄스는 양다리의 스텝으로 앞뒤, 좌우로 오가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힙합은 몸과 팔다리의 관절을 튕기기도 하고 흐느적거리기도 하며 몸 전체가 따로 움직인다. 신체의 움직임이 음악의 리듬과 박자에 따라 사라지고 생겨난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우크라이나인 출신의 댄스팀인 Light Balance의 색다른 춤을 보았다. 검은색 배경에 LED 조명으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고 사라지며 힙합 춤을 추는데 단번에 시야를 사로잡아버린다. 리더 혼자 춤을 추다 갑자기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차례로 없어지더니 리더만 남는다. 현란한 몸동작으로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흰색,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LED 조명이 수염, 모자, 옷, 신발로 나타난다. 각자의 움직임이 전체 속에 있고 전체 속에 각자의 춤이 있다. LED 조명으로 인간의 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며 다양한 빛의 변화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기발한 공연이다.     


 춤은 어렵다. 누군가는 음악에 맞춰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음악에 몸을 어떻게 맞출지 감이 없는 나로서는 춤은 언제나 자신이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을 갔었다. 고막에 닿을 정도의 큰 음악 소리와 사이키 조명에 기가 눌렸었다. 평소 발라드 음악을 좋아했기에 나이트클럽의 리듬과 박자가 익숙하지 않았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무리를 지어 동그랗게 둘러섰고 음악에 몸을 맡겼다. 어설프게 나도 춤을 추고 있었다. 슬쩍슬쩍 남의 춤을 보면서 내 춤이 형편없는 막춤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부자연스럽지만 ‘에라 모르겠다’라는 식의 막무가내로 몸을 움직였었다.     


 일행 중의 누구도 잘 춘다, 못 춘다는 말은 없었다. 특별히 누가 잘 추는 사람도 없는 도긴개긴의 춤판이었다. 약간의 술기운과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볼륨, 점차 흥이 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모두 어깨동무하며 좌우로 돌고, 양손을 들고 소리 지르면 뛰놀았다. 춤의 의미  보다 모두 춤을 통해 그 순간을 즐겼을 뿐이었다. 신나게 놀고 나온 나이트클럽 밖의 공기는 춤으로 풀어진 근육과 땀구멍에 신선함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나이트클럽에 몇 번 갔지만 춤의 세계는 먼 나라처럼 항상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시절 성당에서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교리를 가르치는 과외교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성가를 부르고 같이 율동을 해야만 했다. 춤을 못 추기도 했지만 율동을 따라 하는 것이 어색했다. 굳이 이런 율동을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서 따라 하는 정도로 흉내만 내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 율동을 학생들이 좋아한다며, 친한 선배 여교사가 학생들 앞으로 나를 내세웠다.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그렇게 교사로서 율동에 적응해 갔다.

      

 다음 해 초등학교 4, 5, 6학년을 데리고 여름 캠프를 갔었다. 마지막 날 저녁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 장작에 불이 붓는 순간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불이 붓은 장작더미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율동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타오르는 불빛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따뜻하게 녹여냈고  열기에 학생들은 모두 들떠있었다. 당시 유행했던 댄스곡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모두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췄다. 원시시대 인류가 불을 피워놓고 춤을 추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했다.   

   


 

 인간의 몸에 춤의 DNA가 있다고 한다. 원시 벽화를 보면 춤을 추는 인류의 모습을 세계 여러 유적지에서 볼 수 있다. 아프리카 부족에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까지 전 세계 모든 민족은 문화와 환경에 따라 고유의 춤이 있다. 지금도 왈츠, 탱고, 살사, 차차차, 지르박, 탭댄스, 디스코, 스트릿 댄스, K-pop 춤 등 인류는 국경을 넘어 다양하게 서로의 춤을 추고 있다. 화석이나 기록으로 전승되지 않는 무형의 춤이 인류에게 이어온 것을 보면, 춤은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 할 것이다.

  

 춤에 대한 인류의 DNA가 내 아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다. 돌이 안된 큰아들이 장난감 아코디언을 불다가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을 추었다. 그 장면을 어머니와 장모님이 똑같이 보시고 웃으시더니 눈빛으로 나에게 신호를 주셨다. 춤이라고 하기에는 어설프지만, 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은 나름 음악에 흥이 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춤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추는 아들의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미국의 건강 의학 포털 Healthline에서 춤의 장점을 네 가지로 주장했다. 심혈관 건강을 증진하고 몸의 균형과 힘을 향상하며, 인지력이 향상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춤을 추는 처음 시작이 어색했지만 어떻게든 음악에 맞춰 움직이다 보면 신나고 즐거웠던 대학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올덴부르크 대학의 음악인지 연구가 군터 크로이츠는 ‘춤추기를 직립보행의 부산물이며 춤추기가 우리의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한다. 주일학교에서 성가와 율동을 같이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춤은 인간의 인지능력 향상과 즐거움을 주는 몸짓이다. 4월 29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춤의 날이다. 근대 발레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스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장조르주 노베르의 생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춤의 장점과 기능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꼭 그날이 아니어도 나이 먹어 굳어가는 뇌와 신체를 위해 보는 춤이 아니라 움직이는 춤을 춰봐야겠다. 신나고 즐거웠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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