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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05. 2024

나는 내가 지난 금요일에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일기를 쓴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처리하고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친다. 5~6줄 정도 간략하게 전날에 대한 기록을 한다. 병원을 다녀왔다던가 친구를 만났거나 영화를 보았거나 겨울비가 내렸거나 식혜를 만들었다던가 -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쓴다. 어떤 날은 읽고 있는 책에 대한 느낌을 쓴다. 어떤 날은 우울하거나 쓸쓸하거나 행복하거나 - 감정과 기분을 이야기한다. 가끔 남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쓰기도 한다. 새로 알게 된 정보를 노트 필기하듯이 쓸 때도 있다. 일기보다는 메모로 부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도 할 일을 마치고 일기장을 펼쳤다. 어머나. 금요일부터 아무 내용이 없다. 3일 치가 밀렸다. 어제 일기는 지금 쓰면 되니까  3일 치가 아니라  2일간의 일기가 빠졌다. 어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밤늦게 귀가했다. 토요일 일기를 쓰지 못한 변명이고 이유이다.  ‘서울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영화와 책이야기를 해서 참 재미있었다’고 어제 일기를 썼다. 그저께 일기도 썼다. 이제 금요일 일기만 쓰면 되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 금요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  토요일 아침은 얼마나 바빴길래 일기를 쓰지 않았나.


캄캄하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파편이 한 조각이라고 있으면 뭐라도 떠올려 볼 수 있으련만…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닌데 이렇게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나. 난감하고 당혹스럽고 속상하다. 이 정도 일로 자괴감이 들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자괴감이 몰려오고 불안하다.


휴, 심호흡을 하고 먼저 금요일 삼시 세끼를  되새겨보았다. 아침은 늘 먹던 대로 샐러드와 빵을 먹었다. 점심은 아이가 먹고 싶어 한 돈가스를 먹었다. 저녁은 무얼 먹었지? 아, 모르겠다. 송알송알정식을 먹었으려나. 송알송알정식은 우리 집의 집밥에  내가 붙인 이름이다. 김찌찌개나 된장찌개와 몇 가지 반찬이 있는 아주 평범한 보통의 집밥이다.

문자와 카톡 내역도 앨범도 조용하다. 손님도 없었고 나도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하품 나올 정도로 조용하고 별일 없는 날이었나 보다. 나는 평소처럼 운동을 약간 하고 책을 살짝 읽고 TV 앞에서 오래오래 멍을 때렸으리라. 그랬겠지? 아마도?


며칠 전에 일본 노인들이 센류( 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 모음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많은 작품 중에서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가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  아. 심란하도다. 일기를 자기 전에 쓰면 괜찮으려나. 밤에 일기를 쓰는데 낮에 일어난 일이 기억 안 나면 어떡하지. 에고에고 내가 한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면 누가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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