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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23. 2024

시골 극장 풍경

이사하고 처음으로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우리 동네 문경에는 극장이 딱 하나 있다. 홈플러스 문경점 1층에 있는 메가박스이다. 같은 층에 헬스클럽, 카페와 옷가게들이 있다. 헬스클럽과 상영관만 벽이 있는 공간이고 나머지 공간은 개방되어 있다. 극장의 티켓박스와 매점 앞에 옷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워낙 가까워서 옷에서 팝콘 냄새가 날 것 같다. 버터와 캐러멜 냄새가 배어 있는 옷들이 잘 팔리는지 궁금하고 가끔 장 보러 갈  때마다 왠지 한산해 보이는 극장은 걱정이다. 관객이 너무 없어 하나밖에 없는 극장이 문 닫으면 어떡하지? 걱정은 하면서 막상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았다. 왠지 극장 같지 않아서 그랬다.


영화 <웡카>가 1월 31일 개봉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이다. 윌리 웡카는 어떻게 왜 초콜릿을 만들게 되었을까? 움파 룸파는 웡카와 어떻게 만나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웡카와 아버지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게다가 주인공이 ‘티모시 살라메’이다. 귀엽고 멋지고 연기 잘하고 매혹적인 배우이다. 내가 누구인가? 윌리 웡카를 탄생시킨 작가 ‘로알드 달’과 닮은 사람 아니던가. 글 쓰는 재능이 아니라 태평양처럼 넓은 이마가 닮았지만 말이다. <웡카>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설 연휴 때 온 가족이 모인 김에 다 함께 <웡카>를 보러 갔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는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늘 한산한 곳이니 명절 연휴라고 별다를 것 같지 않았다. 티켓팅과 팝콘 주문에 필요한 시간- 10 여분정도 여유 있게 극장에 도착했다.  


이게 웬일인가? 극장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사 오고 1 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곳도 휴일에는 관객들이 많은 것을 내가 몰랐구나 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었다. 극장에서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을 본 것도 처음이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시골 극장의 풍경이구나 싶었다. 이 어르신들이 나처럼 <웡카>를 보러 왔나? 손자와 함께 오지 않은 걸로 보아 아닌 것 같은데? 뭘까? 티켓팅을 위해 키오스크 앞에 일단 줄을 섰는데  왠지 어수선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와 매점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며 곤혹스러워하셨다. 극장 직원은 티켓 구매와 간식 주문은 키오스크를 이용하라고 안내한다. 키오스크는 어르신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어르신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줄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우리가 티켓팅을 빨리 했다. 이제 팝콘 들고 입장만 하면 되는데 우리가 티켓팅을 키오스크에서 무사히(?) 끝낸 것이 어르신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웡카> 시작하기 직전까지 티켓팅을 도왔다. 티켓팅을 도우며 그분들이 보려는 영화가 <건국전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슬아슬하게 <웡카> 상영관에 입장하는데 어르신 몇 분이 후다닥 나가셨다. 상영관이 헷갈려 잘못 들어오신 것이었다.


<웡카>는 재미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움파룸파 둠바티투”를 흥얼거리며 나오는데 <건국전쟁>도 끝났는지 어르신들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때는 <건국전쟁>을 몰랐다. 어떤 영화이길래 어르신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 서글펐다. 요즘의 극장은 노인들에게 불친절하다. 극장만 유난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극장 환경과 이용 방법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동시에 근무하는 직원이 많지 않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노인이 많은 시골의 극장은 조금 다르게 운영하면  좋을 텐데. 아직까지 나는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지만 나이가 더 들고 극장 환경이 달라지면 나도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극장이 사라져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한 영화를 봤는데 왜 이리 씁쓸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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