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을 읽고
“우와~ 너무 재미있잖아.”
김동식 작가의 글은 재미있다. 아주 많이 매우 재미있다. 그의 단어와 문장은 이해하기 쉽다. 길어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작품의 길이가 짧아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의외의 반전에 깔깔깔 웃는다. 웃음 뒤에 오는 묵직한 한 방에 슬프고 속상하고 화도 난다. ‘우리의 상식을 두드리는 묵직한 거짓말’이라는 책 소개말이 딱 맞다.
김동식 작가는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꾼이다. 순수한 아이처럼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세상에는 우리 같은 지상사람이 있고 땅 속에서 사는 지저 사람들이 있다는 상상은 나도 어린 시절 한 번은 했던 것 같다. 이승의 평균수명이 길어져 저승은 인구 감소 문제가 생겼다는 발상은 어른의 감성으로 상상하기 쉽지 않다. 지옥에서 포교 활동하는 사이비 교주는 신박하다. 좀비는 좀비인데 낮에는 인간 밤에는 좀비 혹은 그 반대인 사람들도 기발하다. 한 번 좀비는 영원한 좀비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상상의 세계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작가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다. 작가가 툭 던지는 인간본성에 대한 신랄한 물음에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이 무엇이더냐?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가? 나는 어떤 인간이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빚어내는 모습은 비관적이다. ‘아웃팅’에서 작가가 말하듯이 멸종위기동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은 섬뜩하다. 기발하지만 기묘하고 기괴한 반전의 결말에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희망이 보인다. 24개의 글 중에서 <회색인간>을 표제작인 이유가 짐작된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존개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어떻게 될까?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저 배고픔을 느끼는 몸뚱이 하나만 남을 뿐’
지저 인간들에게 납치되어 끝도 없이 땅을 파야 하는 사람들은 항상 지쳐있고 항상 배고프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욕하고 돌을 던진다. 지저 인간들이 도시를 하나 세울 만큼 땅을 파면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땅을 파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노래를 부른다고? 그랬던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간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벽에 그림을 그려도 화를 내지 않고 몇몇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이곳의 이야기를 쓴다. 항상 부족해서 절대로 나누지 않던 빵을 나눈다.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 몰라도 무표정한 얼굴의 회색인간처럼 보였던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인간이 아니다. 여전히 돌가루가 날리고 여전히 배고프고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말이다.
문학과 예술이 우리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누르고 사랑을 깨닫게 하리라. 우리에게 글, 노래, 그림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