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대봉감 한 자루 받은 이야기
이웃집에서 대봉감을 한 자루 주셨다. 성탄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전 세계로 둘러메고 다니는 선물 자루만큼 커다란 자루였다. 한두 개는 정 없으니 그렇다 치고 한 봉지도 아니고 한 자루를 받았다. 이걸 받아야 해 말아야 할지 고민할 틈도 없었다. 지난 주말에 둘째 아이가 집에 와 있었다. 우리 둘째에게 감을 서울로 조금 가져가서 먹을 건지 물었고, 우리 아이는 서 너 개 정도 상상하고 감사의 마음을 힘껏 담아 하이소프라노로 대답했다. “네~ 좋아요. 감사합니다. “
그 대답의 결말이 대봉감 한 자루이다. 좋지 않냐고? 나눠 주니 좋기는 한데 난감하다. 받은 만큼 나도 뭔가를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맛있게 잘 먹는 걸로 보답하면 되나?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 곶감과 홍시를 먹는 사람은 남편과 둘째뿐이다. 나와 큰 아이는 잘 안 먹는다. 1년에 한 개 먹을까 말까? 남편과 둘째 아이도 홍시와 곶감 없이는 정말 정말 못살겠다고 노래를 부를 정도는 아니다.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이 먹는다는 의미다. 나는 눈에 감이 보여도 안 먹고 남편은 보이면 먹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감이 싫다. 싫어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어릴 적에 사과와 토마토, 귤만 먹고 자라서 자라서 그런가? 다른 과일은 먹어본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아니면 감을 실컷 먹고 똥을 누지 못한 아픔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남아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감 자루가 며칠 동안 창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슬쩍 보니 짓무르기 시작한 감이 몇 개 보였다. 이 많은 감을 어떡하지? 몰래 버려? 받아 온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인가. 짜증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올라온다. 버리고 싶어도 나중에 지옥에서 혼날 것 같아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하루 종일 감만 먹어야 하는 형벌을 받을지도 모르잖아. 남편과 상의해서 40개 정도 곶감으로 만들기로 했다. 50% 성공률을 감안해서 제사 지낼 때 필요한 만큼 만들었다.
감을 꿰어 걸 데가 없어 사다리를 이용해서 걸었다. 비록 사다리에 걸었지만 곱디고운 주홍색 감 덕분에 예쁘고 맛있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보고 있으니 뿌듯하다. 잘 먹지도 않는 데다 , 다 먹지도 못할 식량을 창고에 잔뜩 쌓아두고 흐뭇해하는 놀부 심보 같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감을 보니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잘 마르기를 기도하고 있다. 곶감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감이 너무 많다고 툴툴거리던 사람 맞아?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 나도 잘 먹게 될지도 모른다. 다정한 이웃 덕분에 곶감을 만들어 보고 곶감의 맛을 알게 될 것 같다. 내 곶감이 잘 마르면 내년에는 감 2자루를 주시는 것은 아니겠지. 2 자루는 너무 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