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어울려야 아름답다
낮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있다. 맑은 분홍색 꽃잎이 주는 여리여리한 인상과 달리 기세가 대단하다. 잡초처럼 잘 자라서 지피식물로 유명하다. 3년 동안 지켜보니 우리 집 마당의 낮달맞이꽃은 잡초보다 더 잘 자라는 것 같다. 낮에 보기 힘든 달을 맞이하려면 기가 세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이 부족해도 물이 많아도 햇빛이 강하거나 부족해도 덥거나 춥거나 환경이 열악해도 쑥쑥 자라고 노지 월동도 끄떡없고 개화기간도 긴 데다 뿌리로 번식하고 씨앗으로도 번식한다. 번식을 해서 포기를 늘이지 않아도 여름 내내 꽃이 피고 지는 동안 키를 키우고 가지를 늘여 덩치를 키우니 한 포기만 있어도 풍성하다.
처음 꽃밭을 만들고 이웃에서 2 포기 얻어 심었다. 2 포기만 있을 때도 꽃밭을 꽉 채웠었다. 처음이라 다소 엉성했던 꽃밭을 분홍물결로 채워주어 좋았다. 다음 해부터는 달랐다. 땅따먹기의 고수처럼 꽃밭 전체를 차지할 것 같았다. 봄 여름 가을동안 오래오래 꽃을 보고 싶어 에키네시아, 플록스, 구절초, 버들마편초, 매발톱꽃 등등을 심었는데 다 사라지고 낮달맞이꽃밭이 될 모양새였다. 물론 낮달맞이꽃만 있어도 예쁘겠지만 이왕이면 다른 꽃들과 어울리면 더 좋지 않을까? 이미 다른 꽃을 심었으니까 말이다. 지난봄에 눈물을 머금고 뽑아냈다. 솎았다고 해야 하나.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오는 흰머리카락처럼 정말이지 많았다. 솎은 새싹들은 집 근처 여기저기에 옮겨 심었다. 담벼락에도 몇 포기 심었는데 잘 자랐다. 그중 한 포기를 화분에 심었다.
화분에 어울릴까? 화분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과 달리 한 두 송이씩 여태껏 피우고 있다. 작은 화분에서 꽃이 피고 지고 키가 크고 , 꽃이 피고 지고 키가 조금 오르고를 반복한다. 키는 껑충한데 꺾이지 않는다. 솔직히 낮달맞이꽃의 성정으로 화분에서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주로 군락으로 피어 세를 과시하고 아름다움을 뽐내던 꽃 아니던가. 화분의 꽃은 꽃밭에서 왕성한 세를 자랑하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같은 꽃 다른 느낌이다. 꽃밭의 낮달맞이꽃은 활발하고 명랑해 보이고 화분의 낮달맞이꽃은 외롭고 고고해 보인다. 꽃밭의 낮달맞이꽃은 합창 같고 화분의 꽃은 속삭임 같다.
자리가 달라지니 꽃의 표정이 다르다. 꽃의 표정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타고난 게 아니라 자리의 어울림에서 오는 것이리라. 아무리 예쁜 옷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으면 꼴불견 되기 십상이다. 시험 삼아 심었는데 기대보다 더 예쁘게 자란 꽃을 보며 자리에 맞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