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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Mar 28. 2024

담임쌤이 폰번호를 공개하신 이유

쌤의 근거 있는 자신감

 

“저는 아이들을 다 키웠어요.”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혹시 우리 반 아이가 첫째이신 분은 손들어 보실까요?”

창가에서 왼쪽 두 번째 제일 앞자리에 앉은 내 눈빛이 갈길을 잃고 방황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손을 쭈뼛쭈뼛 들었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몇몇 엄마들도 손을 든 것 같았다.



“중학교라고 해서 뭐가 많이 다르고, 특별할 것 같지요? 아니에요. 학교 생활을 즐겁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면 돼요.”

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 뒤로 내 걱정과 욕심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혹여나 학폭 같은 데는 제발 연루되지 말고), 열심히 공부 하자. (이를 내년 내신 성적으로 증명하기를!)



“나눠드린 자료에 있는 연락처는 제 개인 휴대폰 번호고요, 반 아이들에게도 제 번호 저장해 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개인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신다고? 이어진 말씀에 더 놀랐다.  

“제 도움이 필요실 때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세요. 미리 문자 남겨 놓으시면 제가 급한 업무 보고 나서 늦게라도 연락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늦게라도' 라니. 이건 내 업무 메일에 예의상 붙였던 클로징 멘트가 아닌가.




서이초 사건을 기점으로 교사 업무 영역과 업무 시간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제가 진상 학부모인가요?’라는 질문에는 ‘그럴 수 있지’, ‘그게 바로 갑질이네’가 오고 가며 엄청난 댓글이 달린다. 결국 ‘진상 부모 자가 체크리스트’가 돌면서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 ‘내가 알게 모르게 했던 행동들이 교사들을 의도치 않게 힘들게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최근 선생님들은 개인 휴대폰 공개 대신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하여 학부모와 소통하고 있고, 연락 가능한 시간에 대한 자세한 안내도 덧붙인다. 그래서일까? 담임 선생님의 느닷없는 개인 휴대폰 번호 공개가 오히려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저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이게 더 편하더라고요.”

선생님의 환한 미소에 한 엄마가 용기를 내어본다.  

“그럼 선생님! 점심시간에 전화드리면 될까요?”

“하하하! 저는 업무시간 이후에 연락드리는 게 좀 더 편하더라고요. 점심시간에는 한숨 돌리고 싶어요.”

선생님의 여리여리한 체구를 보니, 점심 식사 후에 쉬는 시간이 필요하실 것 같았다. 그렇지. 선생님도 직장인이지.



“그냥 너무 심각하게 상담이라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아이들 학교 생활하는데 필요한 이야기는 언제든지 랑 나누시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수다 떠는 게 좋더라고요.”

이 분은 도대체 어떤 교직 경험이 있으셨기에 요즘 같은 시대에 개인 휴대폰 번호를 학부모에게 당당하게 공개하고, 학부모와 열린 마음으로 ‘수다를 떨자’ 하시는 걸까. 선생님의 ‘자신감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다.




학급 운영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선생님의 '자신감'의 '근거'들이 이해되고, 보이고,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반은 올 한 해 서로 배려하며 지내기로 작정했으니, 부모님들께서는 그리 알고 계시라.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 대신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할 것이다. 즐거운 학급 활동을 위해 학급 원칙은 절대적으로 사수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아이들을 굳건히 믿겠다 하셨다. 풍부한 육아경력, 교직경력의 노련함이 아우라가 되어 터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속으로 '아멘'이라 외쳤다.  

@Unsplash

 

고로 부모님들은 아이들 밥 잘 먹이고 잘 재워달라. 쓸데없는 걱정으로 잔소리하는 대신 등굣길에 꼭 아이와 눈 마주치고 인사하고, 좋은 컨디션으로 등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e알리미 잘 확인하고, 요청 사항은 미리미리 (스무번은 말씀하신 것 같다) 연락 주시면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



결론. 긴밀하고 원만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처리하겠다.

이런! 다정한 원칙주의자이시다.




“오늘은 개별 면담이 없습니다. 누구 엄마라고 남아서 저한테 따로 인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믿고 아이들을 믿고 올 한 해 잘 부탁드립니다. 어서 가셔요”



인사하지 말고 어서 가라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정하게 들릴 것 까지야.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핑크빛 솜사탕 구름이 되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 올해 담임 선생님 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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