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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Feb 01. 2023

허공에의 질주

멋도 모르고 가지 않으면

         - <나이든 추한 여자를 그리고 있는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  알트 데 겔더. 

                                                                                         슈테델미술관. 프랑크푸르트 

        

낯선 그림인데 매우 친숙하다.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가 관람자를 향해 웃고 있다. 그는 왜 실실 웃고 있는 걸까. 겔더는 렘브란트의 제자다. 제욱시스는 신라의 솔거가 그러했듯 포도를 기막히게 그려서 새가 쪼아 먹으려 했다는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는 추한 모델을 그리던 중 웃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화가의 웃음은 갈등이자 질문이다. 모델을 미화해서 그려야 하는지, 늙고 못난 대로 재현해야 하는지. 추한 늙은이의 그림도 예술이며 아름다움에 포함되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이 당대가 추구하던 이상적 미에 겔더가 던진 조롱이자 비판이라면, 이 웃음은 화가 자신의 대답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없으니 모든 게 쇠락하며 빛을 잃는 덧없음과 허망함에 대한, 불변하는 가치이자 고정관념에 대한 의심이다. 나아가 불편함과 위험, 추함까지 포함한 개별적이며 특별한 매혹으로서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깨달음과 변화로 밀어붙인다는 것 아닐까.      

그제서야 나는 렘브란트의 웃는 자화상에도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있음을 알아챈다

겔더는 스승의 그림에 각주 하나를 적실하게 단 셈이다

그러자 곧 제욱시스 렘브란트가 말을 얹는다 

커튼 뒤에 네가 기대하는 멋진 그림이 있는 게 아니야* 

부디 환상을 걷어 내, 아무것도 없어

커튼은 커튼일 뿐, 모든 것은 네 안에 있지

a의 본체를 봤다고 우길 뻔한 순간

지진아를 향해 잇달아 날아드는 카운터 펀치 

몇 겹의 커튼을 더 걷어야 되는걸까


'반쯤 웃는 젊은 여자'의 미묘한 미소에 또 낚인다**

반쯤 웃다니, 엄청난 제목에 가슴이 콩콩 

반쪽 웃음Half-laugh이 아니라 반신상Half-length이다

매혹은 자유자재로 길을 내고 미끄러지며 a를 낚는다 

환상체계, 상상계를 벗어날 수는 없어도 

환상의 틀을 알아채면서 붙들리지 않을 수 있다

상징계에 수시로 구멍을 내는 실재(the Real)를 

두려워하지 않고 누비며 가로질러 나간다 

허공의 질주는 끝나지 않았다     


사실 그 질주는 한참 전에 시작되었으니 두려울 게 없다

중3들과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를 보고 

토론했던 수업시간의 열기를 잊지 못한다

드디어 부모를 찢고 나간 열여덟 살 소년의 홀로서기

아이들은 어떤 가능성을 품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중력이자 무중력인 자유 또는 두려움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며 뭉클했다     


용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용감하지 않다 

자신의 불안과 공포를 말 그대로 ‘딛고’ 있을 뿐

허공을 질주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고 계속 길을 낼 뿐 

달리겠다고 스스로에게 이미 말했는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덜덜 떨면서 준비했던지도...     


마침내 자신들로부터 뜯겨나가도록 한 부모의 결단

자식을 독립된 인간으로 분리시키지 못하면 

부모라는 이름의 걸림돌이 될 뿐 

그러나 부모 되기, 그것은 

멋도 모르고 가지 않으면 불가능한 창조의 길 

엉성한 대로 온전하게 가장 많이 사는 인간의 길이다     


나는 약간 들뜨고 엉기는 중 

꽃피는 나무처럼 말들이 웅성대고 

붉은 대지처럼 표상이 꿈틀거린다 

진짜 어른의 말을 시작하려나 보다 

진지함에서 가벼움으로 이동하나 보다 

더 자주 크게 웃을 수 있겠다 

종종 카페가 떠나가도록 웃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아주머니가 될 수 있으려나 보다 

모든 응시를 단번에 되돌리고 뒤집는 폭발 같은 웃음

모든 폼으로부터의 자유이자 살림의 여성성

지금을 껌뻑 중단시키는 사건 같은, 최고의 웃음  

오호 혁명적 깨달음 크하하하하하  


                                                                                                                                         

*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그림솜씨 겨루기 :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에 놀라 어쩔 줄 모르는 파라시오스, 그에게 제욱시스가 말한다. 자, 이제 자네의 그림을 볼 차례군. 그림을 가려놓은 커튼을 걷고 어서 그림을 보여주게. 제욱시스가 다가가 커튼을 걷으려고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바로 그 커튼이 파라시오스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 렘브란트 작품이라고 써놓긴 했으나 진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나이든 추한 여자를 그리고 있는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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