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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08. 2024

서평 : 검찰 핵심부에서 관찰한 '검찰 개혁의 당위성'

<검찰의 심장부에서>, 한동수, 감찰, 윤석열, 한동훈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갔던 2016년 말~2017년 초 촛불 혁명의 가장 큰 화두는 검찰 개혁이었다. 하지만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검찰을 활용해 적폐 청산에 몰두하면서 검찰 개혁의 기회를 놓쳤다. 

윤석열 서울지검장-검찰 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적폐 청산을 끝낸 뒤 검찰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애초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은 적폐 청산 과정에서 더욱 세를 불린 뒤, 이를 발판으로 아예 정권을 집어삼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예를 빌리면, 오다 노부나가의 일개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밑에서 세를 불린 뒤 일인자의 지위를 차지한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역시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표현을 차용하면, 도요토미가 오다의 그늘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나라 훔치기(國盜)'에 성공한 셈이다.

검찰 정권으로 불리는 윤석열 정권은 역설적으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더욱 확인해 주고 있다. 김건희 특검과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거부권 행사에서 보듯이, 검찰권을 포함한 권력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는 도구로 서슴없이 쓰고 있다. 그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전방위 수사, 비판 언론에 대한 무차별 압수수색 등이 대표적인 실례다. 이제 일반 시민들도 윤석열 정권 2년여를 겪으면서  그들이 '검찰의,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정권'이란 것을 알게 됐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커졌지만 그걸로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남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착수하려면 먼저 검찰의 속성과 문제를 잘 파악하고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해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한다.

<검찰의 심장부에서>(오마이북, 한동수 지음, 2024년 1월)는 검찰의 속성과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책이다. 특히, 윤석열 사단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기록이다.

필자인 한동수씨는 대검 감찰부장으로 2년 9개월(2019년 10월~2022년 7월) 근무하면서 검찰의 문제를 속속들이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가 감찰부장으로 재임했던 시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2019년 7월~2021년 3월)을 역임한 시기와 완전히 겹친다.  

한씨의 책은 다른 검찰 비판서에 견줘 몇 가지 큰 장점이 있다. 이제까지 검찰 비판서의 주류는 기자들이 쓴 것이었다. <한겨레> 이춘재 논설위원이 쓴 <검찰국가의 탄생>, 뉴스타파 기자들이 쓴 <죄수와 검사>, 조성식 전 <신동아> 기자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등이 대표적이다. 또 검사 출신들이 쓴 책도 몇 권 있다. 검사들이 쓴 책은 아직 본격적으로 읽어보지는 않아 여기에선 언급을 삼가겠다. 하지만 기자들이 쓴 책은 문제의식은 투철하나 전해 들은 얘기거나 외부에서 관찰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이 책 중에는 "검찰 출신은 검찰을 나가서도 검찰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일제히 침묵한다. 따라서 법무부나 청와대와 같은 조직에서도 검찰 내부 정보와 조직의 작동 원리, 생리 같은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검찰 개혁의 지지부진함과 한계를 야기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한씨가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검찰 출신이 아니면서 검찰 핵심부의 행태를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한씨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우선 한씨의 책은 대검 감찰부장이라는, 즉 검찰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구체적으로 다루는 책임자가 썼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한씨는 장기간 법관을 경험한 변호사 출신이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속성과 문제를 검찰 출신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다볼 수 있는 장점이 지니고 있다. 검찰 외부에서 경험을 쌓은 법률 전문가가 검찰 핵심부를 들여다봤으니 얼마나 문제를 구체적으로 또 생생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한씨는 검찰의 부정적 문제점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 윤석열 검찰총장 시기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검찰의 심장부에서)에서는 채널A 사건, 판사 사찰 문건 사건, 한명숙 총리 모해위증 교사 사건, 고발 사주 사건 등 한씨가 감찰부장으로 직접 경험한 사건을 적었다. 상당수가 윤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는 사건들이다. 한씨가 감찰부장으로서 기록을 세세하게 남겨놨으니 나중에 들여다보면 그와 그의 일당들이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씨는  다음과 같은 글로 윤 대통령의 퇴임 뒤 단죄 가능성을 암시했다. 

"채널A 사건은 대체로 충실하게 기록돼 있고, 감찰 중단이 명백한 사안이므로, 대통령 퇴임 후 등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반드시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82쪽)

1부에서 내가 가장 분노한 대목은 대검 기자단의 친 검찰적인 행동이었다. 한씨도 얼마나 기자단의 행동에 실망했는지 다음과 같이 길게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글을 읽으면서 사실 분노보다도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창피함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가 권력을 감시하기는커녕 권력 감시를 방해하고 권력과 동업자가 된 현상을 이 장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대검 공용 폰을 둘러싼 대검 기자단의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보도와 실력 행사를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다. 일부 기자들은 왜 당사자처럼 직접 나서서 감찰과 수사의 영역까지 간섭하고 실력행사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현재의 힘 있는 정치권과 연결되어 더 좋은 자리로 이동하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대통령실로 옮겨간 C 기자도 있고, 다른 유력 방송사 팀장으로 옮겨 간 J 기자도 있다."

2부(검찰의 도그마)에서는 감찰의 독립, 특수 수사, 검사 동일체 원칙, 특수 활동비, 검언 유착, 검찰과 친일, 검찰과 무속, 검찰과 국회 등 검찰 개혁 과제를 다뤘다.

이 부분에서는 한동훈에 관한 인물평도 나오는데 매우 흥미롭다. 그는 한동훈을 "수사와 법무 행정을 마치 게임하듯이 전략을 세워 오로지 포획하고 척결하는 대상으로 접근"한다고 평했다. 이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총선을 지휘했던 모습을 보면 적확한 평인 것 같다. 그는 윤 대통령에 관해서는 "자기가 싫고 불편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거나 의외로 겁이 많다는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라고 썼다.

그는 검찰의 윤석열 사단 핵심은 이명박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 근무자와 대검 중수부 경험자들이라면서 대략 70~120명 정도로 봤다. 전체 검사가 2300명이니 3~5% 정도가 검찰 전체를 쥐고 흔들고 있는 셈이다. 그는 또 대검이 하는 일의 절반 정도는 언론 대책일 것이라면서, "수사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잘 활용하라"라는 말은 대검에서 유효하게 통용된 수사기법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검찰 담당 기자들은 검찰의 수사기법에 활용되는 유효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에 대한 검찰 기자들의 자성과 자각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검찰총장의 권한은 감찰과 인사, 특수활동비라고 하는 지적도 눈에 띄었다. 특히, 5만원짜리 현금 다발을 금고에 쌓아놓고 마음대로 꺼내 쓰는 검찰총장 특수활동비는 인맥 관리와 통치자금 노릇을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검찰 특수활동비부터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세금 도둑 잡아라'의 하승수 대표(변호사)의 말이 핵심을 짚고 있다는 걸 이 지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부(어둠 속에서 별은 빛이 난다)에서는 윤석열과 최은순, 한만호와 김학의, 증거의 신빙성 판단, 법원의 역할 등에 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놨다. 그는 이곳에서 언론 플레이와 증거 선별 제시 등을 통해 재판을 지배하려는 검찰에 맞서, 법원이 증거의 신빙성 판단에서 더욱 피의자 입장에 서서 판단을 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법관이 '신문을 보지 말고 TV를 끄고' 인권과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점만 의식한 채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이 말이, 그가 감찰부장으로서 본 검찰 조직은 유죄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증거 조작도, 언론 공작도 마다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통찰에서 나온 절규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대형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있다가 대검 감찰부장 공모에 응한 것을 '한 사람의 힘'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는 한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그것도 적대와 무시로 일관하는 깡패 소굴 같은 곳에서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검찰의 개혁을 위해 활동하고 직을 떠난 뒤에 이런 값진 글까지 남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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