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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25. 2024

서평 : 조선은 청일전쟁의 철저한 '봉'이었다.


청일전쟁은 한국(조선), 중국(청), 일본(일본제국) 동아시아 3국이 두루 깊게 관여한 전쟁이었다. 또한 이 전쟁을 기점으로 세 나라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아편전쟁 이후 양무운동 등을 통해 재기를 꿈꾸던 중국은 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급속히 몰락하며 반식민지의 길로 접어들었다. 청일 양국이 벌이는 고래 싸움의 전쟁터가 된 조선은 일제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일제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러일전쟁, 만주침략,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까지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그 여파는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갈랐던 청일전쟁에서 한국은 무엇이었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동안 청일전쟁 관련 연구를 보면, 한국을 주체로 한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편)의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청일전쟁 연구가  일본과 중국에서 주로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청일전쟁 관련 핵심 사료의 대부분이 일본과 중국 것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푸른역사, 조재곤 지음, 2024년 2월)은, 그간의 청일전쟁 연구에서 빠져 있는 조선과 조선인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되살려내려는 귀중한 연구 성과물이다. 저자인 조재곤 씨는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로, <한국 근대사회와 보부상>으로 월봉저작상을, <전쟁과 인간 그리고 '평화': 러일전쟁과 한국사회>로 임종국상을 수상한 바 있다.




"중국과 일본의 연구는 일국사적 시각 또는 일국을 중심으로 한 양국 간의 비교사적 시각에서만 청일전쟁을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같은 시기 활동했던 동학 농민군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청일전쟁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하다. 때문에 전체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19쪽)  




작가의 이 말에서, 청일전쟁을 주체로서의 조선·조선인 시각에서 되살려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간 일본과 중국의 사료를 중심으로 한 청일전쟁 연구의 결과,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던 조선과 조선인의 목소리는 없어지고 장소와 인력·물자를 제공하는 동원과 협력의 대상이란 점만 부각됐다. 청과 일, 조선 정부의 3중 쥐어짜기에 신음하는 조선 민중의 목소리뿐 아니라 청와 일의 압박에 시달렸던 조선 정부의 신음은 소거됐다.




작가는 청일 중심의 연구에서 증발돼 버린 조선과 조선인의 고난과 고통을 한중일 3국의 방대한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해 되살려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청일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라 조선이 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돕기 위한 정의의 전쟁으로 치장해온 일본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됐다.




이 책은 3부로 돼 있다. 1부는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보호국 구상을 다룬다. 2부는 경복궁 점령 직후 시작한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를, 3부는 한반도에서 마지막이자 최대의 전투인 9월 15~16일 평양전투를 다룬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자료를 통해 당시 조선인의 피해 실상과 일본의 거짓 선전을 밝혀낸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은 성환 전투에서 전사한 나팔 병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도 총을 맞아 죽으면서도 나팔을 계속 분 것으로 신화화했음을 폭로했다. 또 평양 순안 지역에 있던 1371채 가옥이 평양전투를 거치면서 100채만 남는 참상을 겪은 사실도 일본 쪽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이 밖에 청군이 전투 과정에서 동원한 조선인 인부·뱃사공과 우마의 통계, 그리고 이른바 청일전쟁의 3대 전투로 불리는 풍도, 성환, 평양 전투 과정의 상보와 조선인 피해 상황 등이 표와 통계로 자세하게 정리돼 있다.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한중일 3국에서 자료를 모으는 데만 10년 이상을 소비했다고 하니, 인내와 끈기의 승리라고 부를 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길이 간 곳은 2부의 종군 기자를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2부 4장(전쟁과 언론인의 윤리)에서 무려 80쪽 정도를 할애해 당시 청일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한 일본 기자들의 면면과 활동, 기사 내용을 분석했다. 그가 일본 신문 등을 통해 파악한 종군 기자는 모두 124명이었다.




이들은 종군 기자로서 객관적이고 정확한 보도보다 '일본 제국의 나팔수'로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도식 아래 이웃나라를 모멸하는 배외적인 충군애국주의로 일관했다고, 저자는 말했다. 저자는 "이때 만들어진 왜곡된 '조선상'이 실체적 진실처럼 장식되어 이후 황국사관·식민사관 등을 거치며 이른바 '혐한'의 기제로 크게 확산'되었다고 지적하며, 청일전쟁이 조선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창출했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는 혐한론 도서의 뿌리가 청일전쟁 보도에 있다는 것인데, '잘못 사용한 펜은 마약'처럼 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는 1894년 당시 일본 주요 신문의 분석을 통해 "청일전쟁을 일본의 '자위행위'로 미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우월감을 강조하는 원천이 이미 식민지 이전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일본 신문 자료의 문제점을 주제별로 여섯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개별 특파원들의 전봉준 접견 보도의 허위, 과장 가능성이다. 둘째,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전쟁을 권유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한 점이다. 셋째, 자료의 허위성과 과장성이다. 넷째, 조선의 '문명 진보'를 명분으로 일본의 관여를 촉구한 점이다. 다섯째, 신문기사를 전쟁 수행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 여섯째, 일본의 내부 모순을 농민전쟁에 전가시킨 점이다.




이 책의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전쟁과 언론인의 윤리와 책임'을 다룬 2부 4장은, 언론인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다. 또 누군가 이 부분을 더욱 심층적으로 연구해 별도의 책을 냈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또 한 가지 첨언하면, 개소리에는 사실(진실) 만큼 좋은 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일본 식민지가 조선(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지, 책상 공론인지 절로 알 수 있다.




청일전쟁 당시 조선인(한국)은 청과 일본의 주도권 싸움 과정에서 더 이상 당할 것이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당했다. 그런 꼴을 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그때 어떻게 당했는지를 알고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분투에 분투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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