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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Nov 10. 2023

류정석 인터뷰下 - 문화예술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다

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

(1편에 이어)


황서영 (이하 황) : 2018년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이음갤러리와 공동으로 주관한 작품 전시회를 하셨고 2021년에는 강남장애인복지관과 공동으로 프로젝트 '도란도란' 을 진행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과 함께한 프로젝트들 어떠셨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류 : 솔직히 현실적인 대답을 하자면 제가 한국말을 하니까 한국 기관들이 계속 연락이 와요. 한국 단체 입장에서는 해외 단체들과 협업을 하고 싶었지만 소통의 장벽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한국말로 소통이 가능하니 그게 쉬워졌고, 덕분에 제가 NaAC에 오고 나서 매해마다 한국을 가요. 매해 한국 기관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거죠.


황 : 와, 매년 가신다고요? 제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게 겨우 몇 개 뿐이라 한국과의 공동 프로젝트를 그렇게 많이 하고 계신지는 몰랐어요.


류 : 예. 정말 매년 다녔어요. 저희끼리 우스개소리로 '아, 이제 한국 좀 지겹다'(웃음)하고 농담을 하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참 많아요. 기관적인 차원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대한 개인의 의지와 구성력이 굉장히 강해요. 그리고 장애 예술인들의 부모님들이 가지는 열정도 본받을 점이고요. 아무리 사회적 차원에서 기회를 열어 주고 마련해 놓는다고 해도 장애를 가진 당사자는 아무래도 한계적인 상황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럴때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 애착과 열정을 가지고 이끌어 주지 않으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캐나다는 많은 기회들을 놓치는 안타까운 사례가 한국보다 아직 많아요. 


황 : 극성이라며 폄하되는 게 한국 부모님들의 자식에 대한 열정인데 한편으로는 실제 당사자들에게 닿는 기회의 차이를 만들기도 하겠네요. 특히나 자발적인 기회 창출 활동에 제한적인 요소가 있는 분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 같고요. 당사자의 자율과 가족의 지원은 반비례의 관계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장애 예술의 영역에는 가족, 지인과 같은 측근의 열정과 지원이 아무래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류 : 그런 사례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죠.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 정은혜 작가님을 통해 발달 장애 예술가들의 가시화가 되고 있잖아요. 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김현우 작가의 작품도 그렇고요. 이런 한 개인의 활동이 대중들에게 가시화되고 화제성을 가지고 또 사회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한국 장애예술의 네트워크의 힘, 그리고 그걸 활용한 개인적 성취, 이런 모멘텀이 사회 차원의 영향력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황 :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 개인의 성취가 미디어에서 주목받고, 다시 네트워크에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는..... 선순환의 모멘텀이네요. 캐나다에 사는 제가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걸 보면 그걸 증명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서 말씀하신 캐나다의 사회적 포용성과는 별개로 한국의 장애예술 분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할까요?


류 : 예, 맞아요. 그것이 NaAC가 계속 한국과의 협업을 꾸준히 지속하며 한국 사회와의 소통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그걸 캐나다에도 알리고 퍼뜨리고 싶어서요.


황 : 한국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인식이 만들어내는 상황이 안타깝다고만 느꼈지 복지 선진국인 캐나다에서 오히려 한국으로부터 본받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대표님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류 : 솔직히 말씀드리면 캐나다에서 작품 전시 혹은 공연 활동을 할 때면 동정의 시선과 의무적인 책임감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눈에 보이는 무시나 차별은 없지만 포용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그런 느낌이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문화체육부의 결정이나 매체의 파급효과가 대중들에게 깊숙하고 넓게 닿을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런 특성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진 않겠지만요.


황 : 사회차원에서 동의된 당위적 존중에 대해서는 개인주의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합치된 '옮음'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까요?


류 :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제가 활동하는 영역에서만 보면 한국의 이런 문화적 성향은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서 진행할 프로젝트는 서울에서 가장 큰 갤러리 중 하나인 KF 갤러리 (The Korean Foundation Gallery)와의 협업이에요. 최고의 장소에서 최고의 큐레이터들과 진행하는 훌륭한 전시예요. 아마 NaAC 48년간의 역사상 제일 멋있고 화려한 전시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건 한국에서 장애예술을 받아들이고 활동에 임하는 마인드셋이 캐나다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갖는 그런 차별점 덕분에 가능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황 :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전시회가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혹시 한국 이외에 장애 예술 분야의 모범을 삼고 계신 나라나 도시가 있으실까요?


류 : 단연코 두바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UAE(United Arab Emirates) 중의 하나의 도시이기도 하죠. 사실 UAE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나라보다 훌륭한 보장과 대우를 해주는 곳이에요.


황 : UAE는 예상 못했어요.


류 :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달라요. 영어로 장애는 Disability잖아요. Ability에 Dis가 붙는다는 것은 능력(Ability)을 없앤다 혹은 파괴시킨다는 개념의 Dis가 붙는 개념이고, 한글의 '장애' 또한 어떤 일의 진행을 가로막는다는 부정적인 느낌이고요. 그런데 아랍어에서 '장애'를 뜻하는 말을 영어로 바꾸면 'People with determination' 혹은 'Determined ones'가 돼요.


황 : 와, 느낌이 확 다르네요. 그 단어를 듣자마자 휠체어에 앉아있는 느낌이 아닌 휠체어를 힘차게 구르는 활동적이고 주체적인 이미지가 떠올라요.


류 : 맞아요. 한국어로 표현하면 뭘까요? 뭐랄까, 더 결의에 찬,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더 큰 결의와 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의 표현이죠. 아부다비에 갔을 때 주차장에서 그 단어를 처음 만났어요. 깜짝 놀랐죠.


황 : 언어가 의식을 만들고 세계를 만든다고 하잖아요. 더 많은 나라에서 People with disabilities 보다 People with determination을 사용한다면 사회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데요? 백 번의 캠페인이나 공익광고보다 단어 하나가 만들어 내는 영향력이 더 클 것 같아요.


류 : 뿐만 아니라, UAE의 경우 상위의 부를 쥐고 있는 가족들이 하나같이 장애인 지원 기관에 엄청난 기부를 해요.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에요. 캐나다의 경우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장애인들의 참여율을 확보하기 위해 저희 기관이 로비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UAE의 경우는 그런 노력이 필요가 없어요. 법적으로 보장받고 당연시 되고 있는 거죠. 한 예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 비행기에 그려진 패턴도 장애예술인의 작품인데 이런 사례들이 무수히 많아요. 그들을 위한 기회가 항상 당연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죠.


황 : UAE가 장애예술에 대해 지금의 높은 수준의 포용력을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이나 환경이 궁금해 지네요. 이번엔 조금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요?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그리고 깊이 느끼실 대표님의 재정의가 궁금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NaAC에 대해 살펴보면서 치료나 복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류 : 사실 장애인에게 예술의 치료적 기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요. 그건 비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죠. 주류 문화예술의 흐름에서는 치료 혹은 치유라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하지만 저는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예술 활동이 대상에 관계없이 치유적인 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다만 저희가 초첨을 맞추는 부분은 그들이 가진 특징이 만들어내는 경험적 가치예요. 그런 특징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하는 경험을 그들이 가진거 잖아요. 그 세계를 예술을 통해 나누고 그 세계 밖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예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만드는 음악, 보지 못하는 사람이 추는 춤, 듣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는 그림, 그것들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 해방감, 그리고 자유의 성취는 세상에 더해지는 행복인거죠. 정신적인 만족감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캐나다의 경우 예술인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혜택이 꽤 커요. 작품 활동을 통해서 받는 금전적 보상이 그들 입장에서 얼마나 큰 뿌듯함과 자부심을 가져다 주겠어요.


황 : 제가 드린 질문이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일까, 였는데 말씀을 들으며 반대로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예술문화 영역에 장애란 어떤 의미일까 하고요. 그들이 갖는 경험적 가치는 예술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예술 영역의 확장과 잠재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거나, 혹은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의 세계는 지금껏 비장애인들이 만들어 놓은 예술 세계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확장하고 연결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2D 영화에 머무르지 않고 3D 안경과 함께 새로운 시각 예술의 경험을 만들어 낸 것처럼요. 말씀에 빠져 듣다보니 어느새 40분이 훌쩍 지났네요. 아직 마지막 질문이 남았는데 3분 정도만 더 시간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류 : 네, 그럼요. 제가 인터뷰에 지각을 해서(하하)...... 편하게 질문 주세요.


황 : 내일 또 한국으로 가신다고 하니 준비도 하셔야 될 것 같고 괜히 제가 마음이 급해지네요.(하하) 그럼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캐나다의 장애예술 분야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계시는 대표님의 비전과 미션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캐나다 장애예술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요?


류 : 사실 제일 판타지적인 상황은 저희 기관이 없는거예요. 캐나다에는 막대한 정부 지원금과 기부금을 받으며 운영되는 문화예술 기관들이 있어요. 이를 테면, 밴쿠버 아트 갤러리, 내셔널 발렛 스쿨, 왕립 음악원 등과 같이 상당한 규모, 깊은 역사, 훌륭한 실력 등을 자랑하는 기관들이죠. 그런데 우리 기관이 왜 존재하나요? 그 기관들이 장애인들에게 포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에요. 이건 분명 슬픈 일이에요. 가장 좋은 결실은 우리 기관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려면 캐나다 문화예술을 떠받치고 있는 굵직한 기관들이 책임을 맡아야 하겠죠. 캐나다 통계 자료를 보면 5명 중 1명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다섯 번의 지원이나 활동 중에서 한 번은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런 꿈을 가지고 싸우고 있어요. 다른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가지며 이런 생각을 계속 나누고 강조하면서요. 캐나다의 정체성은 포용성과 다양성인데 국가의 고유한 특성을 문화예술에 녹여내는 것이 캐나다 문화예술 분야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그 방향 중 하나의 큰 줄기가 장애예술이라고 믿어요.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겠죠. 


황 : 대표님의 말씀에 공감해요. 지난 칼럼에서도 인용했지만 이화여자대학교의 김혜숙 총장님의 말씀과 맞닿아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대학교가 필요없어지는 세상을 위한 '소멸의 소명'을 가지고 달려가는 학교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떠올라요. 아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소수자로 고려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단체나 기관들 모두가 가지고 있을 공통된 소명이 아닐까 싶어요.


류 : 올해 한국과 캐나다가 수교 60주년을 맞았어요. 그리고 작년에 캐나다와 한국 예술위원회가 양국 간 문화예술 분야 교류 증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요. 내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회로 시각예술과 작곡 분야의 활동이고, 올해 8월에는 우리 기관의 무용단이 한국에 가서 함께 리서치를 할 예정이에요. 그것을 토대로 내년에는 함께 창작을 하고 2025년에는 한국과 캐나다 투어를 하며 공연을 할 계획이 잡혀 있어요. 어쨋든 한국 출장이 살짝 지겹긴 하지만 하하(웃음), 한국의 훌륭한 기관들과의 더욱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황 : 지겹다고 하시지만 (웃음) 저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웅장해지는데요. 한국과 캐나다가 만들어내는 이런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세상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지 기대가 돼요. 앞으로도 더 새로운 시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NaAC의 소식, 그리고 류정석 대표님의 앞으로의 행보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류 : 우리 기관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도 즐거웠습니다. 


황 : 저도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어요. 대표님의 말씀을 모쪼록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한국 잘 다녀오시길 바랄게요.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오랜만에 방문한 할머니 댁 거실 소파에 못 보던 얇은 책자가 놓여있었다. '치매예방을 위한 회상하기'라는 제목을 단 색칠 워크북이었다. 반쯤 채워진 첫 페이지 이후 백지로 남겨진 책자를 넘겨보며 할머니에게 어디서 난 거냐 여쭸더니 복지관에서 보내줬다고 하셨다. 


처음 '장애 예술'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복지관에서 보내준 '치매예방을 위한 색칠 워크북'에 안내된 색들을 채워넣었을 내 상상 속의 할머니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애예술과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 장애라는 특징을 먼저 앞세워 인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편협함과 무지의 결과였다. 장애인의 삶에 대해 글을 쓰고 그들의 권리 신장에 이야기를 보태 보겠다는 필자조차 장애 예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깨달았다. 부끄러웠다.


벗어나지 않도록 그어진 테두리 안에만 색을 채워넣는 '색칠공부' 책처럼 장애라는 프레임은, 장애예술을 단순히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도구라는 인식에 갇히게 한다. 장애보다 예술의 정체성을 먼저 세우고 비장애 예술인이 갖는 동등한 기회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는 NaAC의 류정석 대표는 장애 예술인들을 세계무대로 내보내며 테두리 너머 비어있는 기회의 공간으로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틀을 벗어난 그의 시도와 확장은 또 다른 경계와 만나고 연결하며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다양한 색깔들로 채워지게 될 문화예술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해당 칼럼은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칼럼 <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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