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영의 컬러풀 캐나다
(1편에 이어)
황 : 가빈군은 원래 돌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생물학자로 꿈이 바뀐 건가요?
민 : 어렸을 때 돌과 지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생물학이 더 흥미롭더라고요. 특히 바다 생물들이 신기한 게 많아요. 예를 들어 상어는 오줌 나오는 곳이 없어서 껍질로 오줌을 내보내거든요.
황 : 오, 몰랐던 사실이네요. 상어는 몸체 껍질로 오줌을 내보내는군요. 가빈 군 말 들어보니 해양 생물들은 참 다양하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내용들을 어떻게 공부하면 잘 되던가요?
민 : 일단 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으면 그 '이유'를 찾아보는 거예요. 이유를 찾으면 더 재미있기도 하고 머릿속에 기억으로 더 오래 남기도 하고요. 그리고 단어들도 필요하면 무슨 의미인지 꼭 찾아봐요.
황 : 이유를 찾아서 호기심을 일으키고 재미있게 만드는 게 가빈 군의 공부 방법이군요.
민 : Why로 공부를 해야지만 그 쓸모가 더 많거든요.
황 : 그걸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이유를 찾으면서 공부하기 쉽지 않은데 꾸준히 그렇게 하는 게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가빈 군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서 보니까 가빈 군이 대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사귀고 사회성도 엄청 좋아졌다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봤는데요, 그런 공부 방법이 사회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었나요?
민 : 아무래도 학습을 제대로 하면 아는 게 많아지고 할 이야기도 많아지니까요. 친구들한테 내가 아는 걸 설명해 줄 수도 있고 토론도 할 수 있고요.
황 : 정말 그렇겠네요. 영상에서 보니까 친구들이 가빈 군을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혹시 캐나다에 살면서 자폐성 증상을 가진 가빈 군의 정체성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을까요?
민 : 스카이트레인(SkyTrain)에서 크게 당한 적이 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었는데 제가 웃었다는 이유로 저를 쫓아와서 때렸어요. 그때 심하게 맞아서 눈에 멍이 들 정도였어요.
황 : 세상에. 많이 놀랐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대처했어요?
민 : 얼른 집에 와서 주사를 맞고 몸에 약을 넣었어요. 저는 혈우병이 있거든요. 몸 상태를 지켜보면서 경찰에 신고도 했어요. 또 언제 그런 애들이 나올지 모르고 그건 분명 잘 못 된 일이니까요. 만약 그 아이들이 몸집이 더 컸으면 더 위험했겠죠.
황 : 너무 무서웠고 아팠겠어요. 정말 위험했네요.
민 : 예. 그래서 그 이후로는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안 가려고 했어요. 마음이 아팠던 적보다 혈우병 때문에 몸이 아팠던 적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황 : 그러면 대학생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일이나 팀 프로젝트 같은 것들도 있을 텐데 그럴 때 힘든 점은 없나요?
민 : 좀 어려운 점은 서로 관심 있는 주제로 얘기할 때는 괜찮은데 제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예요. 예를 들어 제가 저번에 사람이 죽어서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 계산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싫어했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시험 성적을 못 받은 친구를 보고 놀린 적이 있어요. 근데 저도 거의 패일(Fail) 할 뻔했거든요. 저도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도 그때는 그렇게 했어요. 그래서 친구를 화나게 했죠.
황 : 그래도 아직 그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잖아요, 그렇죠?
민 : 예. 제가 자폐가 있으니까 화가 나도 아마 봐준 것 같아요.
황 : 좋은 친구를 뒀네요. 그렇게 서로 이해하며 지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친구들은 가빈 군이 자폐 증상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고, 가빈 군도 친구가 화내면 왜 화를 내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고. 앞으로 더 서로를 이해하면 싸울 일도 따돌림받을 일도 점점 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데 가빈 군은 생물학자가 되어 어떤 걸 연구해 보고 싶어요?
민 : 어렸을 때부터 저는 물고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캐나다 비씨주(British Columbia)에는 특이한 물고기가 한 두 마리가 아니거든요. 지구가 앞으로 변할 건데 거기에 따라서 연어의 개체수나 생존 경쟁이 어떻게 변할지 그런 거요. 그리고 요즘은 상어에도 관심이 많은데 왜냐하면 상어는 다른 물고기들과 뼈 구조도 다르고 오줌 싸는 방식도 다르거든요. 또 홍어에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도 흥미롭고요.
황 : 가빈 군의 말에서 물고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요. 훌륭한 생물학자가 되어서 신기한 물고기들의 비밀을 많이 밝혀주길 바랄게요. 혹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민 : 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커온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고 싶었어요. 특히 저처럼 고기능 자폐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언어에 문제가 있으니까 그림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저는 경험이 많으니까 도와줄 수 있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노력해서 잘하게 된 거라서요.
황 : 가빈 군이 그림으로 공부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방법을 친구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싶은 거죠?
민 : 예. 그리고 자폐를 가진 아이들이 왜 힘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워서 부모가 죽은 이후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데 제가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테니까요.
황 : 와, 진짜 훌륭하고 멋진 생각이네요. 오늘 가빈 군과 대화하면서 참 많은 걸 배웠어요. 이 인터뷰 제안을 받고 가빈 군이 흔쾌히 하겠다고 용기를 내줬잖아요. 저는 사람들로부터 인터뷰 제안에 대한 거절을 많이 받아왔거든요. 가빈 군은 어떤 마음으로 수락해 준건지 묻고 싶었어요.
민 : 저는 제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세상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부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요. 제가 한 공부 방법을 쓰면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자폐 때문에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 그러니까 사회성이라든지 언어 문제 같은 것도 극복할 수 있도 있어요.
황 : 제가 가빈 군이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잘 정리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오늘 인터뷰 한 소감 한 마디만 해 줄 수 있어요?
민 : 저는 일단 되게 재미있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자폐가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일이 저는 쓸모가 있는 일이라고 보거든요.
황 : 가빈 군의 이야기가 분명 누군가에게 큰 쓸모가 될 거라 믿어요. 저도 오늘 인터뷰 즐거웠고요, 가빈 군의 솔직하고 소중한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민 :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황 : 중간고사도 잘 준비해서 원하는 결과 얻길 바랄게요.
가빈 군과 대화를 나누며 '자폐는 정체성'이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의학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발달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또 그것을 고치려면 과학적으로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왔고 그건 분명 하나의 증상이라기보다 그의 정체성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기능 자폐성 장애를 가진 가빈 군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다양한 자폐인들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장 먼저 자폐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그의 당당한 마음,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장애와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는 교육 환경과 조건에 대한 고찰을 다시 하게 했다. 한국에서 살다 캐나다로 이민 온 다른 한국 장애인 혹은 관계자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인터뷰를 고사하는 그들의 답변은 하나 같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혹은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그들의 아픔과 고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그리고 교육에 대해 깊이 연구한 교육자 아버지를 둔 가빈 군과의 모습과 내심 대조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차이는 타고난 성정도 있겠지만 분명히 교육환경과 방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겪은 힘들었던 일들과 공부를 통해 그것들을 극복했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멀리 퍼져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부모의 부재 이후에도 자립적으로 살 수 있는 자폐인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는 가빈 군의 마지막 메시지는 감동 이상의 큰 울림이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전하는 것이 '쓸모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표현처럼 자폐인들이, 그리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닫아' 두지 않고 스스로 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사회가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둥글어 지기를, 그래서 세상에 '쓸모'있는 이야기들이 더욱 흘러넘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