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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13. 2021

잃어버린 아내를 찾아서

남편, Y 이야기 - 난임한의원

 한의원이라는 정성, 잃어버린 우리의 조각

   아내는 몰입도가 엄청난 사람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목표한 바를 이룰 때까지는 잠도 줄이고, 이 악물고 해내는 그런 타입의 사람. 하지만 2년째 소득 없이 이어지는 임신이라는 목표는 그런 아내도 지치게 했다. 의욕이 넘치던 인공수정 1, 2차를 실패로 끝내고 3차 시술이 끝난 뒤 아내는 산책하러 가자고 해도, 예쁜 카페를 가자고 해도, 근처로 여행을 가자고 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던 중 주말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아내는 뜬금없이 내게 경주를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당장 내일.

      

   그렇게 여행을 제안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아내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하게도 아내의 목적은 이번에도 ‘임신’이었다. 경주에는 임신이 되게 하는 명약을 지어준다는 D한의원이 있다고 한다. 그 근처에 숙소를 잡고 1박 2일로 경주를 다녀오자고 구체적인 기차 출발 시각, 숙소 이름까지 말하는 아내에게 나는 ‘No’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고 답장을 보낸 뒤 나는 ‘그간 자궁근종이 커질까 봐 한약을 멀리하던 아내가 한약에까지 손을 댈 정도라니….’ 하는 생각에 우리의 처지가 진짜 벼랑 끝까지 온 건가 싶어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실 한의학에 대해 평소 불신이 있었다. 과학적인 검증 방법을 거치는 의학과 달리 한의학의 접근법은 내게 어딘가 비과학적, 미신적으로 들렸다. 진맥이라는 방식으로 내린 진단부터 어떤 성분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한약이 초래할 결과가 어떨지 믿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내가 경험한 한약은 초등학생 때 엄마로 인해 강제로 먹은 키 크는 약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때보다 키가 컸지만 클 때가 될 즈음 한약을 먹은 거지 한약 때문에 키가 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내게 서울에 있는 한의원도 아니고 경주까지 가서 한의원 앞에서 밤새 줄까지 서야 한다는 조건이 내킬 리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말한 D한의원에 대해 좀 더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글이 검색되었고 최근에는 유명 리얼리티쇼에서 연예인 부부가 이곳에서 진료를 보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그 인기가 더 높아졌다고 한다. D한의원의 독특한 점은 ‘할아버지 원장님’이라는 존재였다. 한의원 앞에 밤새 줄을 서는 이유도 바로 이분이 주말 오전에만 진료를 보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원장님 앞에 호처럼 붙는 ‘용하다’라는 수식어나 ‘특정 시간에만 나타났다가 스르륵 사라진다.’라는 정보만 들으니 신선이나 삼신 할아버지 같은 존재인가 싶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임신이라는 건 현대 의학으로도 원리만 이해가 된 것이지 완벽한 정답이 밝혀진 분야는 아니었다. 나는 문득 ‘정성을 다해서 먹으면 키가 큰다.’라며 하루 세 번 먹기 싫다고 떼쓰는 나에게 뜨겁게 달인 한약을 건네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그래, 우리는 해볼 만큼 해봤고 이제 남은 건 1%의 정성일지도 모른다. 양방이든 한방이든 그게 무엇이 중요하랴.’ 나는 이 삼신 할아버지에게 찾아가는 일이 마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영웅들의 이야기 속 과제처럼 느껴졌고, 기꺼이 우리 부부의 정성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경주로 떠났다.



 

     이번 여행에 내게 주어진 미션은 두 가지였다. 공식 미션은 ‘한의원 앞에서 밤새기’, 비공식 미션은 ‘아내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다행히 나의 비공식 미션에는 장인·장모님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계셨다. 아내에게서 한의원 방문 계획을 들은 장인·장모님은 일요일 오전에 한의원 앞으로 오셔서 우리 부부에게 합류하기로 했다. 한동안 친구도 잘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던 아내가 장인·장모님과의 시간으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성과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달려와 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뚜벅이 부부였던 우리는 경주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M병원에서 피검사를 한 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차창으로 머리를 기댄 채 자는 아내 옆에서 나는 비공식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에서 아내가 좋아할 만한 메뉴들로만 고른 맛집 리스트, 카페 리스트였다. 아내가 싫다고 해도 이번에는 꼭 내 뜻대로 경주 맛집을 한군데는 다녀올 계획이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던 아내는 결국 내 뜻에 동의했고 우리는 황리단길로 향했다. SNS를 하지는 않지만, 피드에 올릴 사진을 건지고야 말겠다는 듯 음식 사진도 찍고 음식을 먹는 아내의 사진도 몇 장씩 찍었다. “뭐 하는 거야” 쑥스러워하며 웃는 아내의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우리는 착상에 좋은/안 좋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황리단길에서의 데이트를 즐겼다. 마치 결혼 전, 혹은 임신 준비를 하기 전 어느 주말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5분 거리에 있는 한의원에 들러보았는데, 벌써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래는 새벽 2~3시에 나가서 혼자 줄을 설 계획이었지만 위기감을 느낀 아내는 12시부터 교대로 줄을 서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자고 했다. 어두운 밤길에 아내 혼자 한의원 앞을 지키게 하는 게 불안했지만, 아내는 씩씩하게 “강도가 나타나면 나 임신해야 하니까 비키라고 말할게” 농담을 하며 숙소를 나섰다. 내일 제정신을 차리려면 몇 시간이라도 자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일찍 잠을 청한 뒤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새벽 3시에 한의원으로 향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리라 예상은 했지만, 한의원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수십 명이 줄을 지어 대기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내는 10번째로 자리를 잡아 앉아있었고, 나는 지친 아내를 토닥인 후 아내와 교대하여 그때부터 대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도 보고, 팟캐스트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고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가고 있다 느꼈다. 그렇지만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점점 몸이 노곤해지면서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거나 듣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잠시 치워두고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이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이 많은 사람이 난임이라는 힘든 과정을 겪고 있구나. 우리처럼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사람들이 희망의 동아줄을 붙잡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모여있구나.’ 처음 보는 사람이고 이름도 몰랐지만, 알 수 없는 연대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대기표를 나눠주기 시작하는 D한의원의 아침


    동이 틀 때 즈음 피로는 점점 심해져 캠핑용 작은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결국 얇은 돗자리에 웅크려 눕고 말았다. 한여름인데도 새벽은 서늘했고, 딱딱한 콘크리트 보도블록 위에서 자세를 아무리 바꿔도 불편함은 가시질 않았다. 마치 군인 시절 야간 보초 근무 서는 것처럼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7시 30분쯤 되자 굳게 닫혀있던 한의원 문이 열렸다. 순서대로 나눠주는 대기표를 생명줄처럼 받아들고 나는 숙소로 직행했다. 그리고 선잠을 자고 있던 아내에게 승전보를 전한 뒤 바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우리의 진료시간은 10시 30분이었고, D한의원 앞에서 경주까지 찾아오신 장인어른, 장모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 뒤 한의원 안으로 들어갔다. 결혼 후 아내의 보호자는 나였다. 병원에서 수술하거나 수면 마취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내는 보호자란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고 나는 아내의 보호자라는 직책에 어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한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와 아내를 안아주는 장인·장모님을 보고 있으니 내가 아내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만큼 성숙한 보호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어있던 아내의 얼굴은 장인·장모님을 보자 한결 풀렸고, 나와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애교 넘치는 딸의 모습을 보이는 아내를 보니 잃어버린 아내의 조각들이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긴 기다림이 끝나고 마침내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삼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머리와 수염이 희셨는데, 그래서인지 뭔가 산신령 같은 아우라도 풍겼다. 아내와 나를 차례로 진맥한 삼신 할아버지는 짧은 진단명을 내리셨다.     


“아내 분은 한재, 남편분은 한재 드시고 또 한재”     


    난임에 누구의 탓이란 게 있겠냐마는 어쩐지 아내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함께 들어온 장모님의 눈치가 보였다. 장모님은 경주에 도착한 뒤 그림자처럼 아내의 곁에 함께 계셨다. 진료실에서 나온 얘기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장모님은 약값을 결제하고, 밥을 사 먹이고 잠을 잘 자지 못하여서 피곤하겠다며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신 뒤 기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우리는 삼신 할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났지만, 결과적으로 이 여행에서 우리는 아기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얻은 게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우리가 아기를 찾아 헤매는 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기를 향해 걷고 있는 길 위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내려갈 때는 창밖에 기대어있던 아내의 머리는 내 어깨 위에 올려졌고 나는 장모님을 흉내 내며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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