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15
요구 사항이 매우 구체적이고 집요해진 미운 네살의 어느날,
몇시간 뒤 정신 없을 나를 위해 하원 전 미리 야채를 듬뿍 넣은 짜장을 만들어두고
아이들을 하원시킨 뒤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코를 벌름거리며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하고 집에 들어선 아이들은 냄비 가득 끓여진 짜장을 보더니 카레 생각이 난건지,
아니면 그냥 빵순이빵돌이 답게 음식을 보면 자연스레 '빵'을 연상하는건지 갑자기 카레랑 먹던 넓은 빵도 같이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마침 쟁여둔 난도 있겠다.
'그래, Why not?'이라는 마음으로 후라이팬에 난을 몇조각 구워 아이들의 저녁식판에 한조각씩 올려주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십분반영된 덕분인지 그날 저녁 식탁 위 아이들은 많이 웃었고,
입가에 검은 수염을 그려가며 열심히 저녁을 먹었다.
마음이 푸근해진 아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내게 덕담을 건냈다.
"엄마, 많이 먹어요~
그래야 쑥쑥자라서 할머니 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알까.
"지금은 먹어도 돼, 대학가면 다 빠져~"
"지금은 공부만 해, 대학가면 여친 생겨~"
"결혼만 해, 애는 그냥 생겨~"
같은 말들은 사실 다 거짓말이라는 거.
대학가도 수험 생활 묵은 살들은 빠지지 않았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었으며,
결혼은 엄마가 되기에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당연한 게 하나도 없는 이 세상의 규칙을 투영해보자면 아마 내가 쑥쑥 자란다고 (너희처럼 귀여운 손자손녀가 있는) 할머니가 되진 않겠지.
(& 할머니가 되는걸 두팔 벌려 환영하기엔 엄마가 아직은 젊단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운 아이들의 귓가에
"잘자~ 내일은 7시까지 푹자~그래야 키가 쑥쑥 크는거야."
라는 나의 바램을 담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건내고
조심스럽게 아이들 방의 문을 닫았다.
식사 시간에 아이가 나에게 건낸 덕담이 생각났다.
' 1이 2가 되고, 2가 3이 되는게 당연한 세상에서 좋은 꿈꾸렴. 엄마도 오늘 밤은 고민없이 잠들어서 쑥쑥 자라볼게.
그 꿈 속에서는 엄마도 푸근한 미소의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야.'
26.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