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던 한국의 삶. 사람에게 데이고 마음 문을 닫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도 관계를 더 이상 앞으로 이어나가기 힘들었다. 타인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 삶이 송두리 째 바뀐 경험을 하니 더 이상 사람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나는 소속이 되어야 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잘할까 걱정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며 잘 살아가는 중이다. 살아야 하면 바뀌는 건지 처음엔 나는 사람들을 경계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의 진심이 보이고 나도 나를 점점 드러내게 되었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상처를 받으면 당시엔 경험에 의해 세상이 딱 상처받은 만큼 암울해 보인다. 다 맘에 안 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여기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경험이 나의 아는 것의 전부였다.
삶에 뒤바꿀 만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상처일 수도 있고, 50년 뒤에 아니 1년 뒤, 한 달 뒤에 생각해 보았을 때는 왜 상처받았는지 정도로 아주 미미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매일 새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그 안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발전과 성장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매일의 내 삶의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상처를 받았다면 생각과 관점을 바꾸고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 상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지 생각해 보는 것 나에게 훨씬 더 건강하다.
칼질하다가 손을 베었다.
좀 깊게 베인 듯 싶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살들이 저절로 붙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째는 신경에 거슬리고 상처를 확인했는데 점차 상처가 내 신경에서 벗어나더니 시간이 흐른 후 보았을 땐 아물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너무 힘들더라도 우리는 매일 해야 할 것들이 있고 또 살다 보면 그 상황에서 최선의 것이 보이기 시작하며 괜찮아진다.
시간이 흐르며,
살아가며,
상처는 아물고,
더 단단한 새 살이 돋아난다.
나에게 아픈 시간이 왔을 때 시간이 약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약이더라.
그리고 극복하며 발버둥 쳤던 시간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