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동생과 함께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을 다녀왔다. 꼬꼬마 어릴 적부터 함께 알고 지내 온 동생과 차를 타고 길을 달리니, 마음이 묘하게 설렜다.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한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벽면에 걸린 한 편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귀천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저 읽고 있는 것뿐인데, 마음이 아릿하게 젖었다. 삶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이 그대로 전해진다.
삶을 비유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지만, 천상병 시인이 택한 ‘소풍’이라는 단어는 유독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의 시 속에서 ‘소풍’은 인생을 포근하게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시선이 되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소풍(逍風)’의 한자는 거닐 소(逍)와 바람 풍(風)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 그대로 “슬슬 거닐며 바람을 쐰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도 바쁘고 거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쉴 틈을 주는 여유와 평화를 담고 있는 단어다.
삶 전체를 하나의 여정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 시의 세계는, 우리를 삶의 본질과 아름다움으로 이끈다.
‘소풍’이라는 말은 유년 시절, 초등학생 때 자주 듣던 단어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날,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 풀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던 기억.
그 풍경은 우리에게 설렘과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천상병 시인이 남긴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구절은 삶을 그렇게 채워가고 싶다는 소망이자 다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삶의 순간을 누리고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결국, 하나의 능력 아닐까.
대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만,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가는 일’, 곧 귀향으로 비유했다. 삶은 “소풍”이었고, 죽음은 “돌아감”이었다.
그 단순한 비유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해 준다.
천상병 시인.
그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순수함과 소박함을 잃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는 아픈 경험을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는 언제나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았다.
그의 그런 삶이 곧 그의 시를 만들었고, 그의 진심은 시의 구석구석에 배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 깊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의 결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서로의 다사다난한 인생의 순간들이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온기와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천상병 시인의 시는 언어의 단순함 속에 숨겨진 굳건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마음을 하나의 따뜻한 빛으로 비추는 듯하다. 그는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를 통해 어렵지 않게, 그러나 깊이 있고 온화하게 삶을 이야기한다. 삶에 지치고 흔들리는 이들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를 건넨다.
이 시는 살아가며 여러 번 곱씹게 될, 마음의 언저리에 오래 머무는 시가 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이 마음,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시를 통해 다시금 아름답게 살아가볼 용기를 얻는다.
Pachelbel’s Canon in D
https://youtu.be/lgh68Swuak0?si=hTtI_ei5_tfbQj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