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뤼미쌤 May 31. 2024

더디고 느린 5월의 계절

1년차였나, 어느날 엄마는 내 블로그를 보고 글이 너무 많아서 읽기 힘들지 않겠냐고 독자를 위해서 좀 잘라서 올리거나 글을 줄여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넌지시 던졌다. 그때는 오기처럼 ‘싫은데!’라고 말하면서도 글을 두개로 나누어서 올렸었다. 그 뒤로 3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긴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나름대로 주관이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 글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고 내 생각과 마음의 역사를 정갈하게 기록하는 의미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욕구가 있는 것도 같고, 이렇게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내려가는 독자에게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나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내 기록이 보여지게 한다는 것은 나름의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다. 내 기록에 대한 평가가 오갈 수 있고 그로 인해 창피하거나 수치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유한다’는 행동이 나를 채워주는 어떤 일면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기록하고 이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렇게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춘 긴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최소한의 방어이자 보호막인 것도 같다. 짧고 빠른 컨텐츠에 익숙해져가는 요즘 시대에 그러한 트렌드를 역행하여 힘들게 단락, 단락, 긴 글을 읽어내는 사람에게만 나라는 사람의 일부분을 슬쩍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괜히 어렵게 써봤는데, 오늘 쓰는 글도 짧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렇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한 이후 정신없는 첫 3개월 동안 새로운 업무를 익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느라 각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5월이 다 끝나갈 무렵, 다시 소진감이 찾아왔다. 작년 5월 초에 썼던 글을 보니, 작년 이맘때에도 힘들었구나 하면서 괜시리 과거의 나에게 위로도 받았다. 그래도 작년 이맘때보다는 올해가 덜한 것 같은데? 하면서. 올해에도 소진교원 심리상담을 신청해보았는데, 수요가 많아 두세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5월에 상담을 받기 시작했었기에 역시 5월은 아직 내게 좀 힘든 달인건가 싶었다. 내담자 경험이 지금의 상담현장으로 나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의 내담자 경험은 비록 드문드문 있지만 내게 어떤 씨앗과 질문을 심어주고 스스로 곱씹게 하는 의미있는 작업인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생각과 걱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이십대 초중반 무렵, 심리학 수업에서 마음챙김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고 마침 살던 기숙사에서 요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참여해보면서 나는 ‘멍때린다’는 행동을 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고, 머리를 비우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몹시도 어려웠다. 도대체 생각을 멈추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달까. 마치 ‘핑크 코끼리 생각하지마!’하면 이미 머릿 속에 떠올라버리듯이, ‘생각을 멈춰!’하니까 이미 생각을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깨어있는 순간에는 거의 단 한 순간도 멍을 때려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보고 계획하고 상상했지,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는 행위 자체를 해본 경험이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늘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나만의 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정말 나는 늘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보면 성실하고 몰입경험이 많은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던 나는, 또 어떻게 보면 강박적이고 다소 불안한 기질을 타고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습성과 성격은 내게 좋은 성취를 안겨주는 원동력과 동기가 되어주기도 했기 때문이고,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것을 평생 지속할 수 없다는 괴로운 소진감과 무력감이 내게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늘상 최선을 다해서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마음 한 켠에 싹트기 시작했고, 사회에 나와 둘러보니 겉으로 보기에 대강대강 살아내면서도 꽤나 현재를 잘 유지해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렇게 여전히 열심히 사는 나의 습성대로 행동하면서도 마음에는 괴로움을 품고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괜히 손해보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고,  나는 왜 대충 살지 못할까 스스로를 비난하게도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내담자 경험이 중간중간 끼워졌고, 인생 선배이신 선생님의 경험담이 내 마음에 와닿아 위로가 된 순간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 경험하게 된 보호자 상담에서 ‘부모로서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 응답이 ‘강박’이라고 해석받으신 것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처음에는 억울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자녀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을 수 있고 그랬다면 힘들었겠다는 수용으로 이어졌다는 경험을 나누어주셨다. 다만 추측컨데 내게 그 깨달음이 더 빨리 온 이유는 내가 ‘상담’이라는 업을 선택했고 계속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사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마주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라면 대부분의 경우 초점이 나에게 향해 있으므로 내 계획대로 인생이 진행되어 가는 경험을 하기 마련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 상담하는 업을 갖게 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현실의 무게감을 느끼게 되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맞닥뜨렸기 때문에. 비록 예전 부모님 세대보다는 늦었지만 요즘 내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는 빨리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져 더 빨리 소진감에 휩싸인 것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겠는가. 계속 외치고 있듯이 내가 선택한 길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으니, 내가 선택한 이 길을 계속 걸어보는 수밖에.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수밖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며 현생을 후회에 담그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나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견디고 버티면서 살아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남은 삶 속에서만큼은 멍도 때려보고 중간에 주저 앉아도 보면서 현실에 발을 꾹 붙이고 도망가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직장을 이동해보는 것도, 운동을 해보는 것도, 강아지를 데려와 책임지고 일상을 함께 해 보는 것도, 상담을 신청해 받아보는 것도, 힘들지만 진솔한 소통을 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다 해보는 것이다. 유튜브 숏츠에서 본 아이유의 말 중에 행복이란 단어가 괜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행복에 뭐 별 거 없다고, 불행하고 힘든 일이 없는 잔잔함도 행복이라고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원래 평범하기가 제일 어려운 게 아닐까. 중산층의 환상이라는 말도 있는데, ‘평범한(ordinary)’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귀한 복인 게 아닐까. 그래서 더이상은 계속 의문을 품지 말고 그냥 아무 일 없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낸 것 만으로도 기분 좋게 만족해 하는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10대, 20대동안 미래에만 가있던 마음의 초점을 현재로 이동시켜 오려고 노력해보는 과정 중에 있다.


두세달 뒤에 시작하게 될 상담에서는 또 어떤 통찰(insight)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도 되고 지친 마음에 또 많이 울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아직은 내가 상담하는 것보다 상담받는 게 더 좋다. 상담에는 참 멀어지기 어려운 묘미와 매력이 있다. 학교에서 부장님이 보호자 상담을 함께 해주실 때 자주 해주셨던 비유가 있다. 청소년기 자식에게 부모는 난로나 이불같다고, 추우면 끌어다 덮지만 더우면 발로 차버리는 존재라고. 너무 인상적이라서 잊혀지지 않는 비유인데, 내게는 상담이라는 분야도 마치 난로인 것 같다. 멀어지면 춥고 가까워지면 뜨거운 존재.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못한 채 곁을 맴돌며 그 온기는 느끼고 싶은 그런 대상.

Wee센터에 온지 벌써 만 3개월이 채워지고 있고 어느덧 2024년도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남은 2024년도 가보자고! ​​



작가의 이전글 생존신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