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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Countdown 4, 3, 2, 1…

by rimmie

결혼식이 4일 남은 이 시점, 나의 심경을 짧게라도 남겨보려고 화면을 켰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꽤나 지난하고 거대한 미션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정말 일병행 결혼준비?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서도, 일을 하면서 결혼을 준비한다는 것은 매일 해야 할 업무를 하면서 퇴근 후 남은 시간에 오롯이 결혼준비와 관련된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결혼준비와 관련된 일이라 함은.. 단순히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것뿐만이 아니다. 양가의 가족이 합쳐지는 인륜지대사인만큼 가족 인사는 필수인데, 가족 인사 때 가져갈 선물, 식사를 할 장소 서칭과 예약, 일정 조율, 입을 옷 쇼핑과 머리 세팅, 청첩장 준비 등이 모두 인사에 포함된다. 또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집. 손품 팔아 매물 검색하기, 필요하다면 은행 대출 알아보기, 발품 팔아 매물 실제로 보고 오기, 계약을 한다면 계약 절차와 서류 알아보기, 집에 들어갈 가구들 치수 재기, 여러가지 짐들 가져오기, 입주 청소하기 등등 수많은 것들이 “집 구하기”에 포함된다. 또 혼주 한복과 양복 준비.. 예산잡기, 브랜드 알아보기, 피팅, 수선, 수령까지.. 거기다가 의외의 복병인 청모! 청첩장 모임의 줄임말인데, 어느새인가 자리잡은 결혼식문화라서 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내가 초대하고 싶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결혼식을 핑계삼아 만날 수 있는 건 분명 기쁘고 좋은 일이었다. 다만 두달(?) 안에 내 모든 인간관계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체력과 일정상으로 몹시도 고달프고 빡빡했다. 그리고 결혼식의 꽃인 신부 드레스! 드레스 투어 한 번, 본식 가봉 한 번 가서 하나의 드레스만 고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골라서 조금 기대되긴 한다. 그러나 여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결혼식순을 정하고 여러 예식자료들-신부입장곡, 신랑입장곡, 축가MR, 축사 대본, 성혼선언문, 혼인서약문 등을 직접 셀렉하고 편집, 작성해야 한다. 예식장에서 제공해주는 여러 부대상품들(웨딩카, 플라워샤워 등)과 서비스(중창, 피아노곡 등)를 골라야 하고, 그 외로 원하는 대로 본식DVD, 본식스냅, 아이폰스냅 업체도 골라서 계약을 해야 한다. 부케도 고심해서 고르고 피로연 때 입을 원피스랑 구두도 고르고, 신랑 예복도 구입하고 구두는 광을 내러 수선소에 맡긴다. 신부 관리로 제공되는 스파도 한 번 다녀오고 수정화장을 할 때 필요한 것과 화장 지우는 클렌징 티슈도 샀다. 그리고 웨딩 네일이라기에는 거창하지만, 하고 싶은 디자인으로 젤네일(나는 핑크톤 자석젤+리본스티커+진주 파츠로 디자인했다!)도 받았다. 결혼 반지-요즘 말로는 웨딩 밴드라고 하는데-를 맞추고 결혼 직전에는 폴리싱도 맡겨서 또 받으러 다녀와야 한다. 거기다가 신혼여행도 가야 하니, 비행기표, 숙소, 관광, 식당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캐리어도 구해와서 짐까지 싸야 한다. 너무 자잘하게 준비할 게 많아서 정말 마지막까지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요즘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바로 요즘의 내 마음 속에 메아리치는 소리다.

해야 할 게 너무 많고 계속 들여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이 쌓이다보면 압도되어 버리곤 했는데 그럴 때 나를 도와준 생각이 있다. 내가 갔던 결혼식에서 ‘그것이 기억에 남아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생각보다 기억이 안 나서 나만 이렇게 고민하고 남들은 크게 신경 안쓰겠다 싶어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인지 포토테이블과 식전영상도 쿨하게 생략할 수 있었다. 사실 초대받아 가게 된 결혼식에서 나는 포토테이블에 놓여진 결혼 사진이나 틀어진 식전영상을 유심히 본 적이 별로 없다. 촉박한 예식 시간에 맞추어 다음 예식 사진으로 재빨리 교체되는 모습을 보며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물론 아기자기한 식전영상을 보며 귀엽게 느낀 적도 있지만 나의 성향상 우리 둘의 사적인 공간에서의 편안한 모습을 다 알지 못하는 만인에게 공개하는 것 자체가 굳이 그래야 할까? 싶기도 했다. 신부입장곡을 고르려고 신부 입장곡 추천 유튜브를 보고 여러 음원을 들어보다가 도저히 결정을 못하겠고 너무 고민이 되어서 내가 갔던 결혼식의 신부입장곡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했는데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드레스가 잘 어울렸고 분위기가 예뻤다 정도의 느낌과 인상은 남지만 노래는..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면서 그냥 내 마음에 드는 노래를 해야 겠다고 마음 편히 결정할 수 있었다. 너무 S나 T스러운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신경써서 고심하고 커스터마이즈하려면 병이 나고 말 것이다. 어쩌다보니까 정말 그냥 내가 생긴대로, 내 스타일대로 결혼식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청첩장도 2023년도에 경주에 놀러갔다가 오빠가 좋은 셀프사진관이 있다고 해서 땀을 뻘뻘 흘려서 찾아갔던 곳에서 휘뚜루마뚜루 찍었던 캐주얼한 사진을 써서 한 장의 엽서로 만들었는데, 받으시는 분들이 놀라거나 신기해 하기도 하시고 나를 잘 아는 분들은 나답게 잘 했다고 하셨다. 나다운 게 무슨 느낌이지? 하고 아리송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평소에도 나는 수수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람?의 이미지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나는 나를 잘 모르나보다. 결혼식에서도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생각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한 것 같아서 평소 결정을 잘 못한다고 생각해온 것과는 다소 다른 나의 모습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나는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 나의 결정을 지지받기를 원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 마음 깊은 곳에 윤곽은 간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거나 지지해주지 않을 것 같을 때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진짜 결과적으로는 스튜디오 안 한 것도 정말 한 톨의 미련도 없다. 스튜디오 사진까지..? 했어야 한다면 정말 스트레스가 하늘을 찔렀을 것 같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편집을 거쳐 연출된, 실제의 나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진 '예쁜 사진'은 나의 가치관에도 그다지 맞지 않기에. 결혼식을 코 앞에 앞둔 지금으로서는 나의 선택들에 후회가 하나도 없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정말 이러한 긴 레이스에서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상대와는 완주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는 가족 그리고 돈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각자의 약한 부분이라서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불편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들로도 자존심 부리지 않고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그나마 결혼 생활이 유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같은 말도 어떤 톤과 어떤 표정으로 어느 시점에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대화하고 잘 싸워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있다. 예전에 결혼학개론이라는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운전하는 차 안에서나 배고플 때 싸우지 말라는 말은 진짜다. 그 책을 예전에 예랑이와 같이 읽고 맞다맞다 하면서 웃어넘겼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은 서로 대화하기 어려운 상태일 때는 솔직하게 “지금 너무 배고프고 지쳐서 잘 안들리는데 뭐 좀 먹고 이야기할까?”라고 담백하게 말하고 상대도 왜곡없이 받아들여주고, 같이 식사를 하고나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안전한 관계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결혼식은 결혼의 시작일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이 결혼의 전부인 것처럼 너무 많은 기운을 빼며 서로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더 좋아 보이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결혼 시장(?)이 추가금 파티이자 파국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도 결혼 시장에 발을 들여보고 또 집을 구해 보면서 느낀 것은 비싼 것은 더 좋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계속 보다 보면 이것보다 더 비싼 다른 게 좋아보이고 더 추가금을 내면 더 비싼 다른 게 또 더 좋아보이고의 무한 반복이어서 마치 차를 살 때 계속 옵션을 추가하다보면 '이 가격이면?'하면서 차종이 바뀌고 눈 깜짝할 새 천만원이 추가된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돈을 펑펑 쓰다 보면 돈에 대한 감각이 둔해져서 100만원은 우스워보일 지경에 이르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복귀할 나의 현실에 불행감없이 다시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돈 감각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모아야겠다(?)는 조금은 웃긴 결론과 더불어 인생은 '선택과 만족'의 미학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비교는 끝도 한도 없어서 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항상 나보다 좋아보이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계속 나의 위와 비교하면서 불행할 바에는, 내가 선택한 것들과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함을 가지고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이 감사한 마음을 많이 느꼈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고, 힘들까 배려해주고 선물을 챙겨주고, 작고 큰 돈으로 하나의 가족이 살아갈 공간을 채워주고 도와주시는 그 마음들에 한없이 감사하고 또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느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나도 앞으로 그들에게 베풀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갚아나가야 하겠지만, 이렇게 오고 가는 마음 속에서 정이 쌓이고 나를 지켜줄 안전한 관계망이 촘촘하게 짜여져 가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괜스레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졌다. 아무리 내가 걱정인형이라고는 하지만, 결혼식 당일에는 나를 위해 한 자리 한 순간에 모두 모여준 수많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하를 만끽하고 즐기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이 길고도 지쳤던 준비들이 아깝지 않을테니! 결혼식날 아빠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눈물 버튼이 될까봐 좀 걱정스럽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느끼고 반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게 통제되지 않는 현장의 매력이 아닐지!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정말 후련하고 개운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마지막까지 잘 완주하고 돌아오려고 한다. 결혼식 3일 전에 밤 10시까지 야근하는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그래도 떠나기 전 해내야만 하는 미션들을 겨우겨우 털어내고 와서 뿌듯한 마음으로.. 너무 바빠서 글을 쓸 틈이 없어 핸드폰으로 틈틈이 끄적인 결혼식 직전 예비신부의 글을 황급히 남겨보며... 이만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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