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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 한소 Apr 05. 2024

껍데기를 씹으며 (봄)

봄에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견뎌 내려는 노력,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마음이 본질인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바로 공부일까.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겉 껍데기들. 여전하네. 육체의 나에게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나오면 겉 껍데기와 내면이 동시에 보인다. 오늘은 껍데기를 씹어 먹으려 한다. 가끔 가장 내가 아닌 척 위장하고 치장된 거추장한 겉 껍데기를 질겅질겅 씹고 싶다.


세상을 보는 기준이 망가진 건 어릴 적부터였다. 아마도 자존심은 강하고 자존감은 자존심만큼 높지 않았나 보다. 극과 극이었을까. 나를 감추고 속이려 했다. 감정도 감정의 움직임도. 알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거나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컸기 때문일까. 두려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회피했다. 껍데기와 직면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내가 만들고 있는 모래성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지어왔던, 그토록 지키려 했던 성은 모래성이었을 뿐. 결국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기초가 바탕이 튼튼하거나 단단하지 못한 모래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을. 스스로 버리지 못한 부정적 감정과 의지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껍데기로 나를 치장하고 위장하는 수많은 장식들.  그 모든 것을 거둬낸다면 과연 나는 얼마만큼 존재하며 '나'라는 본질이 남아있긴 하는 걸까. 외모, 말투 분위기, 직업_선생님, 엄마, 아내, 딸, 동생, 동서, 며느리, 누나 등 나를 씌우고 있는 수많은 껍데기들. 그것들을 거둔다면 과연 내 본질을 찾을 수 있을까. 

삶에서 찾아낸 가장 거짓진실이다. 껍데기에 덮여 치장하고 위장된 나를 향해 본질을 찾겠다고 나섰다.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덮어버렸던 껍데기를 다시 하나씩 벗기고 있다는 사실이. 멀리 있거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근원을 찾기까지는.


그 근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면이 겪었던 두려움, 불안함이었다.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후 학습되어 온 과장된 동작과 사교적인 성격. 우린 흔히 그것을 처세술이라 말한다. 내면의 아이에게 물었다. 심장이 콩닥되다 이제는 콩콩 급기야 쿵쿵 천둥보다 크게 울린다. 자신의 귀에 들릴 만큼이다. 불편한 겉 껍데기가 하나씩 채워져도 평온한 상태가 아닌 불안감이 점점 진다. 자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가장 자기다움을 스스로 읽는다. 나누기까지. 




편안함을 담아서 봄을 읽어 낸다. 봄을 제대로 담는다. 그렇게 봄에 닿았다.


봄에


덜지 못한 삶의 무게

그것보다 가벼운 발걸음 안에

겨울이 끝내 밀려갔

봄이라는 이름보다 먼저 자리 잡은 봄에.


강화로 진입한 우리를 등졌던 구름과

싱그러움이 봄을 알렸다

만개한 벚꽃은 감탄하기 전에 바닥에 흩날린다

더 큰 아름다움으로


큰 마음의 배려로

시작은 얕은 욕구보다

여유로웠고 평안했다

그 어떤 흐름도 방해받지 않을 것처럼

깊은숨으로 자연을 마신다

조급한 마음을 식혔다


얼마만의 자유일까.

바람이 몹시 매서웠던 밤을 지나

넉넉하고 여유로운 봄을 느꼈다

정담의 정이와 담이

사람을 그리워하며 터전을 지켜온 아이들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봄을 실어 춤을 춘다.


평야는 숨 쉬고 여유롭게 노래한다

정이와 담이가 손을 내밀자

사춘기 소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미소가 활짝 피었다

누가 누구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지.


평야 위 언덕 집 두 채

정이와 담이가 잠시 쉬어가는 둥지

빨간 벼슬을 치켜세우며 옆을 지키는

수탉의 노래는 겨울에 뒤쳐진 봄을

다시 부른다.


책임은 결심과 다짐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천으로 보금자리 안에 사뿐히 준비해

동굴 둥글, 송이 숭이, 원난 듯 각난 듯 별난 듯

지푸라기를 깔고 앉았다

아름다움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정담을 담은 마음은

부성애로 모성애로 우애로 사랑으로

방울방울 시큼 상큼 달콤하게 터졌다


정담은

이미 봄을 입고 있었다.


햇살이 물결치며 평야를 채웠고

시선의 시초지에

장독이 빛줄기 끝에 매달려

장식되었다

정이와 담이가 뛰고 춤추며

우리를 마중했고

수탉은 벼슬보다 멋진 아름다운 소리로

봄을 노래했다


정이와 담이가 처진 꼬리 끝에 닿은

아련한 시선으로

우리를 배웅한다


다음 봄을 약속하며 4월에는

이별을 고한다




덧. 순, 진실한 거짓들》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드립니다. 프레임을 깨고 나온 그곳에 자유가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또 다른 프레임이 있었죠. 이번 연재를 하며 그 시간을 반복하고 답습한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크게는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요. 이제 다시 그것을 깨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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