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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밀도

새끼를 잃은 어미새의 눈물

by 무 한소

#엄마의 눈물(08)


다시 낯선 현실이 느껴졌을 때, 웅성거리는 울림을 에워싼 울음과는 다른 여러 소리가 뒤섞여서 공기의 파동을 타고 주변이 더 어수선하게 다가왔다. 진공 상태라면 지금 이런 느낌일까. 마치 통증을 쏟아내듯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높고 낮은 울림은 에너지로 수애 자신이 아닌 그것들 스스로 조절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네.”

수애는 자신이 좀 전에 쓰러져 누워있던 그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나왔다. 가만히 보니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육체가 보인다. '유체 이탈을 한 것일까.' 주변 소리가 환청으로 분리되어 귓가에 맴돌았다. 동굴 내부에서 들리는 듯 소리의 울림이 크게 느껴졌다. 소리와 어수선한 상황에 정신없이 주변을 살펴보았고 갑자기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근두근 걷잡을 수 없이 수애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우울감은 다시 주변 공기를 눌렀고 쓰러진 수애를 살펴보던 시어머니가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시어머니는 연신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며 할 말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수애를 살펴보고 있었다.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한 것처럼 정확하지 않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었다. 그러다 식은땀을 흘리고 쓰러져있는 창백한 수애의 얼굴을 한 번씩 닦아주었다.


딱 거기까지 만이라고, 딱 그것까지만 했어야 감동적이었다고 수애는 멀리 떨어져서 중얼거렸다. 최소한 새끼를 잃은 어미 새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깊은 내면의 모성애를 알고 있는 어머니라면. 딱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되었고 가만히 껴안고 토닥토닥 등을 만져주기만 했어도 되었다.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느낌에 수애는 눈을 떴고 정신을 차렸다. 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혼미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수애는 또 다른 자신의 자아를 발견했다. 자신보다 더 넋을 잃고 몸서리치며 울부짖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의 모습을 관찰하고 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남편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포효하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남편 주위에 있었고 큰소리가 오갔다. 그는 성인이었으나 감정을 위로받지 못한 덜 성숙한 어른 아이였을 뿐이다. 수애의 귀에, 시선에 그 모습은 카메라 자동 셔터를 반복해서 눌러댄 것처럼 집중적으로 선명하게 찍혔다.


바로 그때, 다시 시어머니의 손길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으며 비수의 그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하겠어. 이겨내야지. 내 그 마음 다 안다. 마음 아픈 거... 근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네가 정신을 잡고 있어야지. 혹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민이 아범 쓰러지면 어쩐다니. 네가 자리를 지켜야지.”


시어머니에게는 수애의 아픔이나 수애의 아이보다는 당신의 아들 걱정이 더 크게 다가왔고 우선이었다. 당신 아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딛고 일어서지 못할까 봐 손주도 며느리도 그 순간만큼은 후 순이었다. 수애는 백 번 양보해서 다 이해한다고 마음먹어도 그녀가 쓰러지며 잠시 정신을 잃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다시 만난 순간은 고요나 정막이 더 감사했을 거라고 떠올렸다. 그 순간만큼은 침묵했어야 한다고 되뇌며 참고 있었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에 수애의 원망이 서려 있다. 자신을 향한 자책이고 세상을 향한 한이 서려 있는 눈물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수애와 남편의 표정과 감정을 살피고 집중하는.


그들의 분위기와 표정은 아이에 대한 염려보다는 수애를 걱정하는 슬픔이 훨씬 컸다. 조용히 쑥덕거리며 조심하는 그들의 소리가 수애의 머리에 닿았고 가끔 그 소리는 수애의 눈빛을 통해 통증으로 그녀의 내면에 흡수되었다. 그들의 소리는 수애의 가슴을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멀리서 수군거리는 근심의 소리도 유체 이탈로 자리 이동이 가능한 수애에게는 장해물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죽음 자체나 전후 상황이나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웅성거림이 퍼져있는 주변을 다른 세계의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고 싶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논한다는 건 그녀 나이에는 이상으로 느꼈었다. 책으로 공부하고 책 속 인물들을 통해 감정을 익혔다. 탄생과 죽음을 대비해서 독서로 현실과 이상의 감정을 구분하고 익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단절과 소멸의 죽음이라는 건 그녀에게는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고 낯선 감정이었다. 삶에서 탄생보다 죽음이라는 것은 경험이 훨씬 부족했다. 그때까지 죽음은 고작 그녀가 간접 체험한 책과 매체에서 경험했을 뿐이었다.


수애는 고교 시절 같은 반, 곁에서 함께했던 한 친구의 죽음으로 처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죽음은 삶과 온전한 단절이며 남은 자들의 아픔 또한 그 친구의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시간 수애는 얼룩진 감정을 제대로 정돈하고 그려내느라 꽤 오랜 시간 동안 아팠다. 죽음에 직면한 망자와 남겨진 자인 당사자 외에 가족과 주변 입장을 떠올리며 역지사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회복되는 치유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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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