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이 어떻게 같냐?

꼼꼼한 잡담

by 꼼꼼

나와 너를 갈라놓는 이유가.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좋고 싫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옳음이 좋은 것이고, 그름을 싫어하는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나의 옳음은 언제나 좋은 것이며, 내가 그르다 생각하면 무조건 싫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좋은 것은 옳다고 떼쓰고, 내가 싫은 것은 그른 것이라 고집부리면,

어떻게 나와 네가 우리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답을 찾기 어렵다.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기에 옳고 그름도 합의에 이르기 어려운 때에 각자의 삶에 눅진한 좋고 싫음까지 더해지니 결정과 선택은 한없이 더디다.


사람마다 다른 옳고 그름은 우리 함께 공존해야 하는 공적가치를 기준하여 어떤 사람도 배제되어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조정하고,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좋고 싫음에 대한 정서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자신의 좋고 싫음의 원인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시간만 축내고 있어서는 우리 함께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서로 잘 났다고 아우성치는 것에 우열을 가려 누가 더 잘 났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공동체의 소명일 수 없다.


누구든 교회를 걱정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교회에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하는 중이라 믿는다. 단지 내가 옳다고 믿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아니라 하고 내가 좋다고 하는 것을 아니라 하더라도 서로 부둥켜안고 교회를 세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순진한 생각을 가진 나와 당신이 다른 점이다.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순진한 생각으로 교회를 바꿀 수 있느냐고 타박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방법이 다를 뿐 우리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법의 차이를 줄여 나가는 노력이 서로 필요하다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어디 교회뿐이랴,

우리네 살아가는 도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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