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은 벽에 만든다.

꼼꼼한 잡담

by 꼼꼼

하나의 문제와 사건에도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해결 방식

서로 다른 책임감이 작용한다.

교회문제를 다루면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자신의 생각과 해결방식에 동의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문제의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

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지점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항상 쉽지 않았다.


특히,

자신은 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문제과 갈등의 직접적 당사자를 제거하고 원인을 개선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 사람으로 인해 문제는 다시 복잡해진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를 들여다보며, 개선과 조율이 필요한데도

무작정 자기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고만 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 말로 모두의 시선을 이끌어가니

답답한 지경이다.


어디 이뿐인가?

나 아니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사람도 만만하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열정이야 인정할 수 있지만,

자기만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다른 의견이나 방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들은 의견을 물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그 어떤 의견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이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밀고 간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더 이상은 의견을 내기도 싫어지고, 대화하기도 불편하다.


이런 두 가지 경험 모두
원활한 '대화'가 되지 않으니 ‘벽’을 만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가 풀려 가는 듯하다 보면, 다시 제자리다.

한 시간, 두 시간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다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두께도 높이도 넓이도 가늠하기 어려운 벽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스스로 잘했다 생각하는 것은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음이었다.


‘문’은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이니
이 튼튼한 벽을 기초 삼아 문을 내보려는 시도를 해왔던 날이었다.


벽이 없으면 문의 존재도 없을 것이니

문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벽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지혜가

모든 순간 필요했다.


문은 벽에 만드는 것이라는 진실의 힘이 필요하다.

2025년을 맞이하는 지금,

답답한 정치, 사회적 상황 앞에선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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