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세 개 의자 | 독재는 홀로 하지 않는다.

꼼꼼한 잡담

by 꼼꼼
의자가 안정적으로 서 있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다리는 3개다.


의자 다리 3개는 최소한의 기준이면서도 호율성에 있어서도 탁월하다. 의자 자리가 4개 이상이 되면 더 안정적이게 보일 수는 있어도 다리 길이와 각도가 더 세심해져야 한다. 다리가 많아도 불균형이면 도리어 덜컥거린다. 다리 3개의 의자는 기울어 보여도 덜컥거리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다리가 2개인 의자는 없다. 중심을 잡고 서있지도 못하고, 어쩌다 중심을 잡고 섰다고 해도 의자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누구도 그 의자에 앉아 편함을 누릴 수 없다. 즉 의자 다리 3개는 의자의 기능을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다리가 3개인 의자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독재는 홀로 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과거, 전두환이라는 사람의 독재는 그뿐만 아니라 ‘하나회’라는 집단, 그리고 그에게 힘을 실었던 ‘종교’가 만든 것이다. 아마도 이 셋 중의 어느 하나라도 그 힘이 부족하고 따르지 않았다면 독재가 가능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다고 다를까 싶다.

계엄을 내리는 자와 이를 따라 움직였던 군 지휘부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국회의원과 극우주의자.


이 셋은 언제나 함께다.

그나마 군 지휘부에 항명하듯 멈춰서 버린 이들로 인해 실상 이 어마어마한 사태는 선을 넘지 않고 끝났다.


셋이 하나로 뭉쳐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기획하는 자, 그를 따르는 자, 그를 지지하는 자.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길을 잃는다. 다리 두 개로는 의자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회도 다르지 않는데,

돈과 권력에 대하여 광기 어린 목사와 이를 감싸는 목사집단 그리고 그런 목사를 따르는 성도가 있기에 교회 안에서 잡음은 그치지 않는다.

광기 어린 목사가 있더라도 제대로 관리하는 누군가가 있거나, 아니면 그런 목사를 거부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의 광기는 치기에 불과하고 말았을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제거하는 것으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의 동조자들과 암묵적 침묵자들까지 살피고 정리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교회 안에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이 세 부류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킨 목사는 그에 대한 벌을, 이를 감쌌던 교단이나 목사집단에 대해서는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과 배상의 책임을 그를 따랐던 성도에 대해서는 적절한 징계가 필요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다음에 일어날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어야 했다.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점이 문제가 지속되는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돌아 이런 일이 교회뿐이겠는가?

지금의 사태를 바르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일어날 것이다.


기획해도 적당히 피해 갈 수 있고, 옹호해도 살아남아 표를 얻을 수 있고, 도파민 터지는 이야기로 세력을 만들어도 누구 하나 지적 못하는 상황에서는 또다시 생명이 위협받는 일의 반복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이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어느 다리든 완전히 부수어 다시 설 수 없는 무 의미한 조각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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