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바라던 종착지였나 시작해야 하는 여기였나
살아가면서 도착할 어딘 가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디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매번 어렵다. 선택을 위해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변수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 여유로운 날짜는 언제인지, 통장 잔고는 어떤지, 국내인지 국외인지 살펴볼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는 단박에 결정하고 표 끊고 떠나기도 하더구먼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여행은 도착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착지가 정해지면, 이동수단을 확인하고, 맛집을 검색하며, 숙소를 확인한다. 3일의 여행이든 5일의 여행이든 드는 품값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온라인 검색은 끊임없이 수정을 요구하고, 결정하고 나면 왜 다시 저렴한 뭔가가 떠오르게 되어 선택을 후회하게 하는지 모른다. 가기도 전에 맘 한 구석이 싸하다.
여행 당일이 되어 기대와 설렘으로 출발하고, 목적한 곳에 도착한다. 검색한 맛집과 주변 알려진 곳을 돌아보고 깨끗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 때론 씻지 않은 얼굴에 대충 걸치고 누군가 해주는 풍성한 아침을 먹고,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신다.
빡빡한 일정이 끝날 즈음엔 돌아갈 준비를 한다. 도착지에 왔지만 잠시 뿐이다.
이곳에서의 짧은 일정을 끝냈으니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한다. 왕복표를 끊었으니 다음 목적지는 집이다.
그렇다 집으로 돌아간다.
사는 게 다 그렇다. 목적지가 종착지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목적지를 만들고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하고 때로는 옆길로 빠져 다른 지점에 도착하기도 하면서 지내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말이다.
내 나이 마흔이면 내 인생의 종착지에 도착해 있을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도착지는커녕 시작도 못한 것들이 수두룩이. 일상의 종착지는 있기는 한 건지 의심하다 보니 10년이 또 지났다.
도달했던 목적지는 내가 원한 목적지가 아니었고, 종착지라 여겼던 곳이 종착지가 아니었다.
신분당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지 작은 폰트를 사용해야 하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어릴 적 기껏해야 지금의 1호선 밖에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수원이나 인천에서 청량리면 끝났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기억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인천이야 더 이상은 바다니 그렇다 쳐도 수원을 지나 자꾸 내려가는 1호선을 보며 이제 수원은 종착지가 아니구나 싶고, 얽히고설킨 노선도를 보면서 종착지나 시작점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다 이루어내고, 완벽하게 완성된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이루고자 시작해야 한다는 것,
완벽이라 생각한 곳에서 불안정을 인정하고 다시 한 움큼 노력해야 한다는 것.
지금 내가 목적한 그곳은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것
일상은 그렇게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유연한 것임을…
스스로 우쭐 대며 자신의 지혜와 성과를 떠벌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은 일인지
정관을 만들어 놓은 것이 종착지가 되어 더는 자신의 교회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재정규약과 세칙 뒤에 숨어서 스스로는 재정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피상적 관계로 연결된 공동체를 온전하다 자랑하며 현재에 머무르게 된 관계.
목사 한 사람, 잘 선택하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고 믿는 성도.
자신은 신앙에 있어서 우월하고 종착지에 도착한 듯 착각하는 목사.
그 모든 것에 있어 목적지는 종착지가 아니고 시작점임을 기억해야 한다.
정관과 시스템, 규약과 세칙을 만드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종착지가 아니라 시작점임을
친절한 태도가 관계의 전부가 아님을, 한 사람 바뀐다고 모든 것이 온전해지지 않음을
이 모든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 절실하다.
오늘 하루의 종착지는 결국 집이다. 그리고 집에서 내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