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출애굽기 속 여성들을 묵상하며
여기 두 여인이 있다. 이름은 십브라와 부아. 이들의 직업은 출산을 돕는 산파이다. 이들에게 이집트 최고 권력인 왕이 특명을 내린다. "히브리 여자들이 낳은 남자 아이는 죽이라." 히브리인들의 세가 늘어나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할까 걱정된 왕의 두려움에서 나온 끔찍한 명령이었다. 하늘 위 절대적인 힘, 태양에 빗대어지는 왕의 명령에 십브라와 부아는 저항한다. 죽임이 아닌 살림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갓 태어난 어린 생명들을 무참히 죽이려하는 도에 어긋난 명령에 지혜롭게 반기를 든다. "히브리 여자들은 너무 건강해서 저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순풍 낳아버린답니다. 저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는 지혜로운 언변으로 상황을 무마하는 재치까지 갖춘 두 사람의 기지가 돋보인다. 이렇게 '살림'에 동참하는 두 산파가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과 자유로 나아가는 출애굽 이야기의 첫 장을 연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이집트 왕의 서슬퍼런 횡포는 더욱 심해진다. 산파들에게만 은밀하게 내렸던 명령의 대상은 백성 전체로 넓어진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들은 모조리 강에 던지라."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연약한 생명을 짓밟는 죽음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폭정을 이어간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에도 여전히 살림하는 여자들이 있다. 한 여인이 출산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 아이의 성별은 애석하게도 남자다. 작고 여린 생명을 차마 강물에 던질 순 없어 아이의 어머니는 갈대 상자에 아이를 담아 강물에 떠내려 보낸다.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갈대 상자를 아이의 누이는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남동생이 담긴 상자가 목욕을 하는 이집트 공주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이집트 공주는 폭군의 딸이다. 이제 동생의 여린 생명은 여기서 꺼지는 것일까. 하지만 공주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물려 받지 않았다. 되려 어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이 때 소녀는 기지를 발휘한다. "제가 이 아이를 양육할 유모를 소개시켜드릴까요?" 당찬 제안을 하고는 자신의 어머니를 데려온다. 나일강에서 죽음을 맞이할 뻔 했던 남동생을 엄마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갓난 아이의 누이이니 많아야 10대 남짓 된 어린 소녀의 주체적이고 담대한 행동 덕에 이 후에 수많은 히브리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출애굽의 주인공이 될 모세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살림'하는 여자들이 살리는 역사의 단초가 된 것이다.
"남성이 주도하는 질서의 강고함 속에서 주변인이며 약자인 여성들은 포악한 시대의 새로운 희망의 전령이었다. 이들은 주어진 현실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았다. 자유했다."- 김순영, <어찌하여 그 여자와 이야기 하십니까> p.35
남성이 주도하는 질서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 강고한 벽에 돌을 던져 균열을 내는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유난히 철옹성 같은 벽에 둘러싸여 있는 집단이 바로 교회다. 교회 안의 여자들은 시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만 뽑아 온 몇몇의 성경 구절로 침묵하고 복종하는 존재로 억압당한다. 하지만 성경의 중요한 역사 중 하나인 '출애굽, Exodus'의 시작을 만들어낸 것은 여자들이었다. 남성권력이 쌓아올린 죽임의 질서에 저항하여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낸 여자들이 교회에서 경전이라고 읽고 또 읽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강고하게 쌓아올린 가부장적 교회질서에서 해방되는 또 한 번의 출애굽이 이뤄지는 역사의 페이지마다 '살림(life-sparing)'하는 여자들의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겨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