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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09. 2021

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5.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인 너는 두 배로 사랑받아야 해

은지가 세 살쯤이었다. 가정위탁센터 담당자와 함께 은지 친부모를 만났다. 친엄마는 마트에서, 친아빠는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주말에도 일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었는데, 은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짬을 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 처진 어깨를 애써 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 사이로 긴장과 불안이 같이 새어 나왔다. 


은지는 친부모를 서먹해했다. 내 주위를 빙빙 돌다가 안기고, 조금 더 큰 원을 그리며 돌다가 안겼다. 내 손을 꼭 잡고, 낯선 친부모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내 목을 끌어안고, 다시 낯선 얼굴을 익히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날 즈음, 은지는 익숙한 그림책을 뽑아왔다. 그리고 친모에게 내밀었다.  

만난 지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은지는 친부모와 그림책을 보고 깔깔 웃기도 하고 찡긋 애교 섞인 웃음도 웃었다. 걸음도 못 걷던 아기가 뛰어다니고, 그림책을 같이 읽고, 사진을 찍으며 교감하는 걸 보면서 친엄마는 울컥하며 입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2016년 여름


은지는 아기 때부터 그림책을 수시로 읽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책 제목을 얘기하면 그 책을 정확히 뽑아내고, 책 내용까지 줄줄 외워서 말할 정도였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해서 물개처럼 손뼉을 치며 자꾸 시켜본 적이 있다.


자식이 예쁘면 자랑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지…. 나도 그랬다. 가는 데마다 은지를 자랑하고 싶고, 보는 사람마다 은지의 특별함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조금씩 크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고, 은지 때문에 항상 웃을 일이 많았다.


가식 아니야?
남의 자식 데려다가 어떻게 키워?

난 그저 은지가 재롱을 부리고 새로운 단어를 말하는 게 신기해서 자랑했는데, 돌아온 건 야릇한 궁금증과 애매한 시선이었다. 울컥울컥 후끈한 것이 목젖으로 넘어왔다. 눈꺼풀이 자꾸 깜빡여지고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예, 우리 은지는 특별한 아이예요.
딸내미 시집보낼 마음으로 키우고 있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처음 위탁 가족이 되었을 땐 주변의 말이 더 아프게 들렸다. 


지금은 훌훌 털어버리고 얘기하지만 처음 1, 2년은 그야말로 수행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은지 엄마가 되는가 보다.’, ‘엄마란 이름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은지 엄마이기 때문에 깨닫는 것들도 늘어갔다.


제주엔 나와 같은 일반 위탁가정이 20여 가정이 있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들이다. 우리는 3개월에 한 번씩 모여 밥도 먹고,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놀기도 한다.

“공주는 내년에 학교에 가는구나? 씩씩이는 볼 때마다 예뻐지네?”


이심전심이라고 우리끼리 모이면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행여 오해를 살까 봐 꿀꺽 삼켰던 말들까지 자조 모임에선 다 털어놓는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아기를 4년간 맡아 키우다가 다시 친부모에게 돌려보낸 위탁 엄마, 6개월 된 아기를 키워 이제 곧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는 위탁 엄마. 직장을 다니면서 갓난쟁이를 키웠는데 그 아기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껄껄 웃는 위탁 엄마…. 이분들의 속내를 듣다 보면 내 고민은 점점 작아지고, 작아진다.


우리 자조 모임의 이름은 ‘행복 나누미’다. 아이를 키우며 고민도 하고, 갈등도 겪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위탁 엄마’로서의 행복을 나눈다. 때론 이 호칭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어서,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지만.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위탁 엄마가 많다는 걸 내가 위탁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처음엔 그게 가능할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꼭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래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낸 엄마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2021년 10월 2일 한라도서관에서


나는 지금도 흔들리는 엄마다. 가끔은 아픈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혀 곯기도 하고, 괜찮은 척 태연하게 연기도 하고, 그러다가 은지가 “엄마!”하고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오면, 그 사랑에 녹아 또 하루를 산다.


혹시, 우리 은지가 친부모에게 돌아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은지의 두 번째 엄마로 살 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은지가 크는 데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테니까. 이 시간, 잠든 은지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은지야!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니까 두 배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해




'가정위탁제도'란? 

부모의 질병,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을 때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정기간 위탁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라는 UN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2003년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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