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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5.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인 너는 두 배로 사랑받아야 해

by 가족이 되는 시간

은지가 세 살쯤이었다. 가정위탁센터 담당자와 함께 은지 친부모를 만났다. 친엄마는 마트에서, 친아빠는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주말에도 일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었는데, 은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짬을 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축 처진 어깨를 애써 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 사이로 긴장과 불안이 같이 새어 나왔다.


은지는 친부모를 서먹해했다. 내 주위를 빙빙 돌다가 안기고, 조금 더 큰 원을 그리며 돌다가 안겼다. 내 손을 꼭 잡고, 낯선 친부모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내 목을 끌어안고, 다시 낯선 얼굴을 익히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날 즈음, 은지는 익숙한 그림책을 뽑아왔다. 그리고 친모에게 내밀었다.

만난 지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은지는 친부모와 그림책을 보고 깔깔 웃기도 하고 찡긋 애교 섞인 웃음도 웃었다. 걸음도 못 걷던 아기가 뛰어다니고, 그림책을 같이 읽고, 사진을 찍으며 교감하는 걸 보면서 친엄마는 울컥하며 입꼬리를 바르르 떨었다.


c2a93537-b4b3-43e9-b294-b60668c75d88.jpg 2016년 여름


은지는 아기 때부터 그림책을 수시로 읽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책 제목을 얘기하면 그 책을 정확히 뽑아내고, 책 내용까지 줄줄 외워서 말할 정도였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신기해서 물개처럼 손뼉을 치며 자꾸 시켜본 적이 있다.


자식이 예쁘면 자랑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지…. 나도 그랬다. 가는 데마다 은지를 자랑하고 싶고, 보는 사람마다 은지의 특별함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조금씩 크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고, 은지 때문에 항상 웃을 일이 많았다.


가식 아니야?
남의 자식 데려다가 어떻게 키워?

난 그저 은지가 재롱을 부리고 새로운 단어를 말하는 게 신기해서 자랑했는데, 돌아온 건 야릇한 궁금증과 애매한 시선이었다. 울컥울컥 후끈한 것이 목젖으로 넘어왔다. 눈꺼풀이 자꾸 깜빡여지고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예, 우리 은지는 특별한 아이예요.
딸내미 시집보낼 마음으로 키우고 있죠.
eff28b80-b25c-43fb-8c6f-d598a759d1cf.jpg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처음 위탁 가족이 되었을 땐 주변의 말이 더 아프게 들렸다.


지금은 훌훌 털어버리고 얘기하지만 처음 1, 2년은 그야말로 수행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은지 엄마가 되는가 보다.’, ‘엄마란 이름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은지 엄마이기 때문에 깨닫는 것들도 늘어갔다.


제주엔 나와 같은 일반 위탁가정이 20여 가정이 있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들이다. 우리는 3개월에 한 번씩 모여 밥도 먹고,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어울려 놀기도 한다.

“공주는 내년에 학교에 가는구나? 씩씩이는 볼 때마다 예뻐지네?”


이심전심이라고 우리끼리 모이면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행여 오해를 살까 봐 꿀꺽 삼켰던 말들까지 자조 모임에선 다 털어놓는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아기를 4년간 맡아 키우다가 다시 친부모에게 돌려보낸 위탁 엄마, 6개월 된 아기를 키워 이제 곧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는 위탁 엄마. 직장을 다니면서 갓난쟁이를 키웠는데 그 아기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껄껄 웃는 위탁 엄마…. 이분들의 속내를 듣다 보면 내 고민은 점점 작아지고, 작아진다.


우리 자조 모임의 이름은 ‘행복 나누미’다. 아이를 키우며 고민도 하고, 갈등도 겪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위탁 엄마’로서의 행복을 나눈다. 때론 이 호칭조차 입 밖으로 낼 수 없어서, 그저 웃음으로 무마하지만.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위탁 엄마가 많다는 걸 내가 위탁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처음엔 그게 가능할지,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꼭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래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낸 엄마들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라도서관에서 은지.jpg 2021년 10월 2일 한라도서관에서


나는 지금도 흔들리는 엄마다. 가끔은 아픈 말 한마디가 가슴에 꽂혀 곯기도 하고, 괜찮은 척 태연하게 연기도 하고, 그러다가 은지가 “엄마!”하고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오면, 그 사랑에 녹아 또 하루를 산다.


혹시, 우리 은지가 친부모에게 돌아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은지의 두 번째 엄마로 살 거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은지가 크는 데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테니까. 이 시간, 잠든 은지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은지야! 은지는 엄마도 둘, 아빠도 둘이니까 두 배로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해




'가정위탁제도'란?

부모의 질병,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을 때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정기간 위탁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라는 UN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2003년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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