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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Oct 16. 2021

헤어지기 위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정인이가 살아있다면 가야 할 곳

- 지난 13일은 정인이의 1주기였다.



16개월 정인이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시 붙고…, 멍이 들었다가 나았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갔다. 캄캄한 방에서 혼자 울다 잠들었다는 아이. 부러진 다리로 마지못해 걸었다는 아이. 살아보려고 그래도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다는 아이의 모습은 먹먹함을 넘어 무력함을 느끼게 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수준이라면 우린 지금 어느 수준일까? 췌장이 끊어지고, 온몸이 짓이겨진 채,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듯 처참하게 뭉개진 아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출처- 사단법인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학대 아동은 즉시 분리돼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용할 시설이 없다고 고개를 흔든다. 쉼터를 늘리고, 지원을 더 해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시설’이 아니라 ‘가정’에 초점을 맞추면, 있지 않은가? 가정위탁 말이다.

가정 위탁은 친부모의 학대나 질병, 수감 등으로 부모와 분리될 수밖에 없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한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그야말로 학대 아동이 곧바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는 7년째 위탁가정으로 살고 있다. 제주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은지를 소개받았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은지를 키우고 있다. 처음엔 5년 계약으로 시작했는데 계약을 연장하면서 장기 위탁가정이 됐다.


‘위탁가정’이라는 말이 여전히 낯설다. 지금도 위탁가정을 설명하려면 수십 번 질문을 받고 답을 한다. 위탁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아이는 언제까지 위탁가정에서 살 수 있는지, 양육비는 어떻게 하는지, 친부모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지….


그만큼 위탁가정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위탁가정은 숨죽이며 아이를 키워왔다. 행여 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친자식이 아닌 줄 알면 이상한 눈으로 볼까 봐 속으로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 주변에서도 위탁가정을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위탁가정을 알려야 한다. 학대 아동이 갈 곳이 없다고 하는 이때, 준비된 위탁가정들이 있지 않은가? 작년에 일어난 ‘창녕 9세 소녀 사건’도 결국 위탁가정이 품어주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위탁가정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용기내어 나서면,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도울 것이다. 그렇게 사회도 변해갈 것이다.  


2021년 1월. 은지랑 어진이.


7년 차 위탁 엄마인 나는 요즘 은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친엄마랑 미혼모 시설에서 살았던 이야기, 은지와의 첫 만남, 우리 집에 와서 3일 내내 울었던 이야기, 은지가 처음으로 걸었던 이야기….

은지는 자꾸 더 듣고 싶다고 조른다. 


“오늘은 은지 한 살 때 이야기해 주세요!”, 

“000 엄마(친엄마)는 지금 어디 살아요? 전화할 수 있어요?” 

“은지는 배은희 엄마랑 살고, 000 엄마는 가끔 만날게요!” 

갓 여덟 살이 된 은지는 쉬지 않고 표현한다.


은지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 언젠가는 설명해 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진 것 같다. 더 어릴 때는, “은지를 어떻게 낳았어요?”, “은지가 뱃속에 있을 때 얼마큼 뚱뚱했어요?” 하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이제는 낳아 준 친엄마와 길러 준 위탁 엄마를 구분한다. 너무나 해맑게 친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 


은지야! 000 엄마(친엄마) 만나면 뭐라고 할 거야? 


음…,
어떻게 20살에 은지를 낳았어요?
물어볼 거예요! 히히


아이는 역시 아이다. 이렇게 생각이 커지고 마음이 커지겠지. 나는 은지의 성장을 보면서 또 늙어가겠지. 우리의 앞날이 더 건강하길 소망하며 오늘도 은지랑 놀이터로 출동한다. 

건강해라, 은지야!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학대, 질병, 사망, 수감, 이혼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양육해 주는 제도다. 계약을 연장하면서 만 18세까지 위탁 양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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