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중 하나일 거라는 착각

by 전두엽

왜 사춘기 오면 한 번씩 심오한 고민을 하게 된다잖아요. '나는 어떤 존재일까' '이 넓은 우주에 나는 한 톨 먼지같은 존재구나' '내 미래는 뭘까' 그런 것들이요. 저는 사실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도 신기하지도 않았고요. 나름대로 논리적인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된 여덟, 아홉살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존재론적 의문을 딱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말로 표현을 하려면 절대 표현이 안 돼요. 그나마 내세울 만한 이 문장도 제 의문을 정확히 관통하진 못하네요.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거란 생각은 착각이 아닐까.'

자의식이 비대해지면서 '나'에 대한 각종 의문들이 생기는 경향과 다르게 전 오히려 '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난 그냥 지구에,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 사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나'라는 상태를 실감하는 거죠. 특히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양치를 할 때나 유산소 운동을 할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 행동에만 집중할 때 불쑥 '나'라는 게 섬뜩해져요.

'하고 많은 존재들 중에 왜 하필 이 몸으로 태어났을까'가 아니에요. 모든 게 섬뜩해진다는 거예요. 이 아득한 실감은 우울증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데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굳이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1년, 2년, 10년 살아서 평균 수명 이상을 보내 봐야 이 의문을 절대 풀 수가 없거든요.

여기까지 말하면 공감해 주려는 몇 명이 '맞아, 가끔 내가 죽으면 이 영혼이 어디로 갈까 궁금할 때가 있어'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하곤 해' '유체이탈을 경험해 보고 싶어' 등으로 대답해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닌데요,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데 꽤 유용한 반문을 작년에야 찾았어요. '나'로 살면서, '1인칭'이 어색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나요?

신체와 영혼의 분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신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든, 유령이나 귀신이 됐든, 형체 없는 영혼만이 남든 결국 '1인칭'이잖아요. 더 쉽게 설명해 볼게요. (이것도 작년에야 극적으로 찾은 예시예요.) 인생이 VR 게임이라면 그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태초부터 뒤집어 쓰고 있는 VR 기기가 있겠죠. 그 VR 기기를 통해 게임 안에서 1인칭 시점을 갖게 되죠. 내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이 거울로 봐야 보이고, 내 시야 안에는 팔다리와 몸통 일부만 보이고, 내가 움직이는 반경까지만 세상이 보이는 그런 화면이요. 그 평생 끼고 있는 VR 기기를 벗는다는 가정은 해 본 적이 없나요?

사실 이 예시도 완벽하지 않아요. VR 기기를 쓰고 있는 몸 역시 결국 1인칭이니까요. 여기까지 꾸역꾸역 설명이 이어지면 '그래서 2인칭이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같은 걸 경험하고 싶다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와요. 그건 또 아니에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제 생각에 공감해 주지 않아서 의문형으로 설명을 이어갈 뿐이지, 사실 저에겐 이게 의문이 아니라 다 실감한 내용이거든요. 다른 경험이나 해석은 필요가 없어요.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나'라고 생각하고 살잖아요. '내'가 '나'이듯이, 저 사람도 저 사람 인생에서의 '나'일 것이라고요.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걸 강하게 확신해요. 내가 누군가에게는 타인이고, 저 사람들 중 하나일 거라는 그 착각에서 애초부터 빠져나와 있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개체에 불과하고, 세상을 구성하는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그 증거를 절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네가 특별한 존재라는 얘기를 심오하게 하는 것이냐'? 그 얘기가 아니에요. 이 모든 세상이 곧 내가 하나의 인간일 뿐인 증거라고 하겠지만 아니잖아요. 뭔가가 만져진다는 것, 지구가 큰 우주의 작은 행성이라는 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는 것 모두 결국 '나'로부터 벗어나 있는 일이잖아요. 아까 든 VR게임 예시에 따르면 지금 VR기기를 벗느냐 마느냐 하고 있는데 게임 속 세상이 진짜인 증거를 나열하고 있는 식이에요. '나'에 대한 의문과는 상관이 없어요.

'트루먼쇼처럼 전부라고 믿었던 세상이 다 가짜라는 생각인가' 물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에요. 트루먼쇼는 트루먼의 세계를 '쇼'로 구분 짓는 지점이 정확히 있잖아요. 진짜 현실이라는 게 확실히 있고 그 안에서 가짜 세상을 설계한다는 전제니까요. 저는 이 세상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진짜일 수 있어요. 문제는 그게 '나'를 벗어나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객체일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아냐는 거죠. '나'를 벗어나 본 존재가 이제껏 있었던가요. 착각에 의하면 하나님도, 부처님도, 하다 못해 인간의 형태를 하지 않은 모든 생명도 결국 '나'로 비롯됐을 거 아니에요. 제가 확신을 갖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나'로부터 모든 게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는 걸 영영 반증할 수 없는 거예요. 흑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흑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백이라는 증거를 절대 얻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흑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착각에서 벗어나 모든 걸 실감하고 있었음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세상 아무도 이에 공감해주지 않도록 만들어진 환경이 제가 이 생각을 오래 할 수 없게끔 방해하기 때문이에요. 거울을 보면서 '너 누구야'라고 여러 번 물으면 미쳐 버린다는 미신처럼, 이 생각을 오래 하면서 적당한 설명을 찾으려고 하다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해져요. 그러다가 멀리 못 가고 '내'가 사는 현실을 마주치죠. 당장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성실하게 당장의 삶이라는 것에 임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을 더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요.

어른이 되면 충분히 설명할 만 한 문장을 찾을 거라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 걸 보면 앞으로도 똑같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기겁하니까 말은 안 해왔지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이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죽어보고 싶어요. 물론 죽는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의 사람일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가 깔린 곳에서 계속 사는 것보단 답을 찾을 가능성이 더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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