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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여사 Feb 06. 2022

아들의 기억

‘그러고 보니 아빠는 내 나이에 나를 낳았네요.’

난데없는 아들의 말에 나는 누우려다 말고 침대맡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맞아. 너도 결혼해야지.’      


아들은 설을 맞아 오랜만에 집에 왔다. 종일 제 누나 가족과 함께 설음식들을 장만하며 먹고 놀고 이야기하기를 반복하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각자 잠자리를 찾았다.       


‘저 얼마 전에 아빠 꿈 꿨어요.’

아들은 제 잠자리로 갈 생각이 없는지 침대 끝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정말? 아빠 모습 어땠어?’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아빤 좋겠다. 안 늙으니.’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아들을 보며 웃었다.

‘상황도 그때랑 같았던 거 같아요.’

‘상황? ……어떤?’

나는 긴장했다.

‘아빠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엄마랑 병원에 다녀왔는데, 예후가 안 좋다며.’     


-그랬구나. 아들은 그 당시 상황들을 기억하고 있구나.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들을 위해 당시의 기억들을 주섬주섬 모아 꺼내 놓았다.       


그 날,      

이른 아침이었다.

갑작스런 굉음에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잠시 멍한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뭐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 나갔다. 남편이 화장실 앞에 큰 대자로 쓰러져 있었다.

‘자기야!’

‘… ….’

‘무슨 일이야? 왜 이래?’

‘…… 괜 …찮 …아.’

남편은 겨우 소리를 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게 뭐야? 어떡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몸이 떨렸다. 겁이 났다. 무서웠다.  

‘…괜…찮…아 …나 …괜 ….’

남편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구급차를 불렀다.


‘몸이 이렇게 되도록 모르고들 계셨다니.’

응급실에서 남편을 맞은 의사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혈부터 해야 합니다.’

‘수혈이요?’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습니다. 그동안 하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


그 해 봄부터 남편은 속이 더부룩하니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나도 아빠도 위암이 걸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냥 불규칙한 식습관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어. 너도 알지만, 아빠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잖아. 그러니 술과 담배는 물론 거의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지. 방송국이며 신문사를 상대로 마감 맞춰서 글 쓴다는 거, 그거 얼마나 스트레슨지 아니? 아빠는 -자기야, 이번 주엔 뭐 쓰지?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알 것 같아요. 저는 매 주 찬양대 곡 뭐하지? 라는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 건 아빠 일에 비하면 힘들다의 힘의 히읗도 쓰면 안 되지. 어따 대고 감히?’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들에게 눈을 흘겼다.


‘문득 생각났는데, 너 태어나던 해에 아빠가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렸어.’

‘영화 아니었어요?’

‘연극이 먼저였어. 연극이 대박 나는 바람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거야.’

‘그랬군요.’

‘너 낳고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였어. 첫 공연 보러 가는데 대학로에 긴 줄이 보이는 거야. 내가 -우리 연극이 저렇게 줄 서있으면 좋겠다. -라고 했는데 진짠 거야. 그때만 해도 연극은 초대권이 많이 돌던 땐데, 그 연극은 현장 티켓 구매로 큰돈을 벌었어.’

‘와! 멋지다!’

‘아빠는 복덩이 아들 덕분이라며 좋아했어.’

‘다행이네요. 내가 아빠에게 그런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니.’    

‘생각하면, 아빠, 빨리 갈 줄 알고 그랬는지, 무슨 일을 그리 많이 했는지, 방송국, 연극, 영화, 신문사, 정부 홍보영화 시나리오 집필까지 맡아 바쁜 와중에, 그 해에는 한국 기독교 백주년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맡게 되었어. 때문에 기독교 역사 발길을 따라 전국을 다녔고, 오월에는 백령도에 촬영 갔다가 파도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해 이 주간 발이 묶여 있기까지 했어.’

‘저 기억나요. 어린이 날인데 아빠가 없어서 운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그 때였네요.’

‘내 생각에는 그때 몸이 많이 상했던 거 같아. 건강한 사람들도 버티기 힘들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는데, 아빠는 몸이 안 좋은 상태로 버텨야 했으니.’               


응급실로 간 후 검사는 이어졌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겠지만, 일단 위암으로 의심됩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련님은 당시 S대학병원 흉부외과 레지던트 사년 차였다.

‘지금 바로 응급실로 모시고 오세요.’


그렇게 다시 검사가 시작되었고, 결과는.

‘형님 위암 맞습니다. 일단 열어봐야겠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아직도 나를 쳐다보던 도련님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란 여자, 대체 뭐한 거야? 알아? 당신 살인자야! -

그 눈빛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위암이고 싶었다.  


나는 긴 숨을 토해냈다.

‘죄송해요, 엄마. 공연히 내가 아빠 얘기를 꺼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던 거야. 아빠나 나나 설마 암일 거라는 생각은 아예 안 했어.’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아빠가 힘들어 할 때면 나는 병원에 가자고 했어. 그런데 그때마다 약속만 하고는 바쁘다는 이유로 안 갔어.’

나는 아들에게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했다.      


사실 그 부분은 아직까지도 내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죄책감으로 남아 있다.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 모든 사람들이 남편의 죽음 앞에서 그 말을 했었다.      


‘너 그 때 일곱 살이었지?’

‘네.’

‘맞아. 살았을 수도 있지.’

나는 회한의 숨을 토했다.

‘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미안하다. 아빠를 지켜주지 못해서.’      


사실이다. 나는 아들과 딸에게 지금까지도 그 어린 것들에게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힘들어 하고 살도 빠지는데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기에 한의원에서 보약을 지어다 먹게 했는데,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보약 때문에 전이가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해요.’

‘맞아. 아빠나 나나 미련하게도 추측에 의한 진단에 의지했어. 정말이지 암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했어.’          


남편이 수술을 받던 날이었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시간이 꽤 걸릴 거라는 도련님의 말과는 달리 남편은 수술실에서 한 시간여 만에 나왔다.       

‘이미 장막까지 전이가 되어 있어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일단 위에 있는 큰 덩어리만 제거 했으니까……. 형님, 그냥 맛난 거 드시게 하고… ….’

도련님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식은요? 외국에 가면은요?’

도련님은 고개를 저었다.


‘저 아빠한테 죄송한 거 있어요.’

‘… ….’

‘아빠 병원에서 퇴원해서 오셨을 때 못 알아보고 -저 사람 누구에요? 삼촌이에요? -라고 했었거든요.’   

‘아빠가 살이 이십 킬로 이상 빠졌으니까 못 알아보는 게 당연했지. 너도 그랬지만, 평소 아빠를 알던 사람들도 병문안 와서는 쉽게 다가서질 못했어. 그런데 나는 몰랐어. 살이 빠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모습이 변한 사실은 깨닫지 못했어. 내 눈에 아빠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어.’     


그랬다.

그때 나는 남편에 대해 사용되는 단어들에 대해 단순히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만을 인지할 뿐, 각 단어들에 내포되어 있는, 곧 현실로 다가올, 그 어마어마한 의미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특히 시한부와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랬다.      


나는 단 한 번도 남편은 물론 그 누구를 붙들고, 내 남편은 오 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요! 라며 울부짖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남편은 물론 그 누구를 붙들고, 내 남편은 곧 죽어요! 라고 울부짖지 않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남편은 물론 그 누구를 붙들고, 내 남편이 죽으면 나와 저 어린 것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라며 울부짖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남편은 분명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눈 앞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언제부턴가 엄마가 아빠 계신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거 같아요.’

‘항암치료 끝나고 부터였나, 복수가 차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안 좋아졌어. 아빠는 그런 모습을 너희들에게 보이기 싫다고 했어. 나도 같은 생각이었어.’

‘그랬던 거군요.’

‘아빠 성격이 그랬어. 워낙이 조심스러운 데다가, 남에게 안 좋은 모습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도, 스스로 용납 못하는 사람이었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잠든 깊은 밤이면 아빠는 너희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가서 한참을 보곤 했어. 너희들이 없는 낮에도 집 안 구석구석을 거닐며 그간의 삶들을 하나씩 하나씩 눈에 담았어. 거실 창 앞에 서서는 창밖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곤 했어.’     


‘아빠는 본인의 상태를 아셨어요?’

‘위암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초기로 알고 있었어. 의사는 환자에게 본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했지만 난 반대였어.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오 개월 후면 죽습니다. - 라는 말을 할 수가 있겠어. 그건 고문이야. 난 지금도 말 안 하는 게 환자를 위해 옳다고 믿어.’

‘저 역시 결정하기 힘든 문제에요.’

‘내가 미리 말하는데, 유언이다 유언!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면 말하지 마. 굳이 말 안 해줘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떠날 때가 되었구나. - 내 생각엔 그게 더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아닐까? 굳이 미리 알아서, -나 언제 죽지? 받아 놓은 날이 되었는데 나 왜 안 죽는 거야? - 그런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긴 싫으니까.’

‘엄마,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엄마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실 거예요.’

‘오래는 몰라도 사는 날까지 큰 병 없이 있다가 갔으면 좋겠어.’            


‘아빠는 발견 당시 몇 기였어요?’

‘말기였어. 손쓰기에는 너무 많이 늦었다고 하더라고. 난 그 말을 아빠에게 전하지 않았어. 대신 치료 잘하면 좋아진다고 말했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잖아. 그 기적이 아빠에게서 일어날 수도 있는 거니까.’

‘끝까지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 처음엔 아빠도 믿었던 것 같아. 하지만 병이 깊어질 때쯤부터 의심했던 것 같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남편과 나 사이에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라도 남편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라도 할까 싶어 말을 아꼈고,  

남편은?  

남편은 본래 그리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남편은 주변인들로부터 속이 많이많이 깊은 사람으로 정평이 났을 정도로 과묵하며 인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는 수다쟁이였으며, 아이들에게는 익살꾼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게 입을 닫았다.      


‘한 날, 내가 말을 하려고 자기야! 라고 아빠를 불렀어. 아빠는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을 주었어.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어. 아빠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있었어. 창문에 고인 달빛이 아빠의 젖은 눈가를 비추고 있었어.’

‘… ….’

‘그 날 생각했어. 아빠가 가장 좋아할 선물이 뭐가 있을까? 하고’

‘그 책이 그래서 출판된 거군요?’

‘응.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어. 아빠가 내게 건넨 연애편지와 수필, 시 등을 모아서 출판사에 연락했어. 출판사에서 출판을 결정했고, 책 제목은 아빠가 정했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빠는 출판 된 책을 보지 못하고 떠났어. 뭐가 그리 급했는지.’

‘정말 아쉽네요!’

아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출판 작업이 진행 되고 있을 때였다.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으로 바뀌었다. 대지가 따스한 기운을 품자 나무는 새 순을 올리고 하늘은 온기로 구름을 품었다.       


한 날, 교회 친구가 남편과 함께 병문안을 왔다.  

‘기도원에 가보는 건 어떻겠니?’

‘… …모르겠어.’

‘남편을 살릴 생각을 해야지.’

‘병원에서 멀리 가면 안 된다고 했어.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그렇다고 손 놓고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는 거야?’     


나는 남편을 차 뒷자리에 눕혀 태우고 친구가 알려준 기도원으로 출발했다.   

‘하늘이 참 예쁘다!’

‘봄이야. 향기 맡아 봐.’

나는 창문을 살짝 내렸다.’

‘좋지?’

‘좋아.’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저 그 날 생각나요. 그 날이 내 생일인데 교회 갔다 왔는데 엄마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 생일인데 엄마 어디 갔냐며 막 울었어요. 그리고 이틀 뒨 가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몰랐다. 당시의 기억들을 뒤져 보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랬다. 남편의 병원 생활이 시작 되고부터 아이들은 내게서 배제 되었다.      


기도원에 도착했다. 주변은 이미 칠흑 어둠에 묻혀 있었다.      

‘이 곳은 병원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중증인 환자를 머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렵게 오셨으니 안수기도라도 받고 가십시오.’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남편과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무섭고 두려웠다. 아무래도 공연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남편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했으니, 남편에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병원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장에 병원으로 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남편은 구급차로, 나는 내 차로 병원을 향해 달렸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그 먼 길을 갈 생각을 하다니.’

의사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 날 저녁, 남편의 친한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다.

‘자기야, 애들 데리고 갈비 먹으러 가자.’

남편은 갑작스런 말과 함께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래그래. 그러자. 자기 아픈 거 다 나으면 애들 데리고 가자.’

나는 남편을 다독이며 눕게 했다. 남편의 친구들은 얼굴을 감싸 안고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날 밤,

왜 그리 잠이 쏟아지는지, 나는 졸다 못해 아예 침대 끝에 얼굴을 걸친 채 잠에 빠져 있었다. 문득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해 겨우 눈을 떴다. 남편이 희미한 소리로 나를 찾고 있었다. 남편은 혼수상태에 빠져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손등에 꼽았던 링거바늘이 뽑힌 탓에 침대와 환자복 여기저기에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그 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나는 계속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했고 남편은 혼수상태를 오갔다.   


날이 밝기 시작하자 다행히 남편도 나도 진정이 되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어.’

나는 남편을 부축했다.

‘고마워. 미안해.’

‘뭐가 고맙고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나 아플 때 자기는 이렇게 안 해줄 거야?’

나는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저 면도가 하고 싶은데요.’

남편은 간호사를 보자 말했다.

‘환자분, 갈색 수염 너무 멋져요.’

간호사는 남편에게 면도기를 건네며 엄지 척을 했다.  

‘제 수염에 단풍이 들었지요.’

남편은 간호사에게 화답해 주었다. 남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퍼졌다.       


안심이 되었다.  고비를 넘긴  했다. 회진  의사는 남편을   나를 밖으로 불렀다.  기대에  눈으로 의사를 쳐다보았다.      


나는 분명 의사가 나에게  

다행히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대로 가면 호전될  있습니다. -라고 말을  거라고 믿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할 가족들을 부르셔야 되겠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참으려 했지만 울음이 터졌다. 나는 발을 구르며 소리 내어 울었다. 실컷 아주 실컷 울었다. 그동안 차마 밖으로 내놓을 수 없었던 울음을 마구 마구, 끝 저 끝에 있던 것까지 다 끄집어 올려 쏟고 또 쏟아냈다.      

속이 시원해졌다. 얼굴과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병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다가가자 나의 손을 잡았다.       

‘자기야, 울지 마. … 나는 자기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소리 없이 환하게       


‘저 그 날 기억나요. 나랑 누나랑 병원에 갔고, 엄마가 나랑 누나랑 아빠에게 데려가서 손을 잡게 했고, 아빠는 나랑 누나에게 초콜릿을 주셨어요.’


※ 남편은 딸과 아들에게 육필로 마지막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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