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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여사 Oct 23. 2021

탐욕의 산물

- 오디 순 서리 -

(*오디 순 : 뽕나무의 어린 열매와 어린 잎)



▷ 등장인물

여인1, 여인2, 여인3, 여인4, 견인차기사, 여인2의 남편

(※ 이 글에 출연하는 여인 넷은 편의상 여인1, 여인2, 여인3, 여인4로 표기함. - 번호는 나이순 ※)


▷ 중심인물 성격

여인1의 붓끝은 거칠면서도 힘 있어 보인다. 자그마한 몸뚱이에 얼굴은 오목조목, 말은 조곤조곤 하는, 천생이 여자인 그 내면에 어찌 저런 쌩야생이 숨어 있는 지 신기할 정도다.

       

여인2는 그 나이 또래들에 비해 키나 몸집이나 다 크다. 말하는 것도 웃는 것도 먹는 것도 공수해 오는 음식의 양도, 물감을 쓰는 양도 캔버스 크기도 캔버스 채우는 면도 다 크다. 거기에 욕심까지 크다. 그리고 그 큼은 한 성질에서 정점을 이루며 빛을 발한다.

     

여인3은 항상 긴 생머리에 모자를 쓰며 딱 붙는 스키니 진 팬츠에 딱 붙는 티셔츠만을 입는다. 완벽한 S라인 몸매를 가졌기에 가능한 패션이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면 체중을 늘려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녀의 반전 매력은 음식 솜씨다. 해오는 반찬 마다 솔드 아웃이다. 그런 그녀는 주로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린다.  


여인4는 얼굴에 자신 있는 사람만 한다는 숏 헤어를 머리띠와 모자로 번갈아 가며 장식한다.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이며 명품 브랜드 아닌 게 없다. 종일 캔버스 앞에서 고뇌하다가 오후가 되면 드디어 붓을 든다. 그 붓끝은 그녀를 사차원 그 이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배경 - 화실 내부      



화실 중앙에 큰 탁자가 있다.

여인 넷은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과 반찬통을 탁자에 가져다 놓고는 본인이 앉았던 의자를 들고 가 탁자에 둘러앉았다.          


여인2: 와우! 오늘도 만찬이네. 배고픈데 빨리 먹읍시다. 난 왜 그림만 그리면 배가 고픈지 몰라.

여인3: 언니는 항상 고픈 거 아녜요?  

여인2: 뭐라? (여인 넷은 큰 소리로 웃는다.)

여인4: 이건 뭐에요?

여인1: 내가 가져 온 건데 먹어 봐요. 몸에 진짜 좋은 거예요.     


여인 셋의 젓가락이 일제히 그 반찬통에 가서 꽂혔다.       


여인3: 너무 맛있다. 이거 오디 아니에요?

여인4: 오디가 차조 같이 생겼어요.  

여인1: 그게 농익으면 흑자색인 오디가 되는데, 요럴 때 먹어야 훨씬 더 몸에 좋대요.

여인2: 난 여태 익은 오디 청 담거나 술 부어서나 먹어 봤지, 이렇게는 한 번도 안 먹어 봤어.

여인1: 이거 살짝 데쳐서 무쳐 먹어도 맛있어요.

여인4: 야채샐러드도 맛있어요. 이 야채들 직접 키우셨어요?

여인1: 씨 주면 씨 뿌리고, 모종 주면 모종 심고 하다 보니 얘들이더라고요. 알아요? 야채들은 순일 때 먹어야 영양분이 많대요. 그래서 나는 순일 때 먹어요. 얘들 식초 물에 담갔다가 깨끗이 씻었어요. 많이 먹어요. 한 봉지 더 있어요.

여인4: 저건 저 주시면 안돼요?

여인2: (야채샐러드를 소여물 먹듯이 먹으며) 노우! 내가 가져갈래.

여인1: (여인2에게) 저건 여기 주고, 자기는 나와 집이 가까우니 우리 집으로 오셔. 와서 필요한 만큼 가져 가셔요.

여인4: 어머! 고맙습니다. 왕 언니.

여인2: (언니? 언제부터 언니야? - 속에 말) 한 살이라도 젊은 네가 해야지 늙은 내가 하리?  

여인4: (해맑게 웃으며) 죄송해요, 언니. 근데 이 야채샐러드 소스도 너무 맛있어요. 어떻게 만드셨어요?

여인1: 그거 다른 거 하나도 안 넣고 오디 순 효소만 넣었어요.

여인4: 정말요?

여인3: 오디 순으로 효소도 담네. 난 처음 알았어요.

여인2: 오디 순으로 못하는 게 없군. 자기, 이것도 먹어 봐. 이거 여기가 해 온 건데, 묵은지를 된장에 지졌어. 밥도둑이야. 자기는 보기하곤 다르게 이런 구수한 반찬을 잘하더라. 나는 해도 맛이 없어서 버리게 되더라고.

여인3: 언니, 내가 보기하고 어떻게 다른데요?

여인2: 어떻게 다르긴. 손에 물 묻히는 거 엄청 싫어하게 생겼지.

여인3: (손사래 치며) 아니에요. 저, 종일 손에 물 마를 날 없어요. 집에 묵은지 있으면 가져 오세요. 해 드릴게요.

여인2: 정말? 오케이. 다음 주에 가져올게. 고마워.      


점심 식사를 끝낸 여인 넷은 탁자를 치우고 설거지를 끝낸 후 각자 자리로 돌아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배경 - 여인2의 집


여인2가 전화를 받고 있다.

     

여인4: 언니, 어제 먹었던 오디 순 장아찌 있잖아요, 혹시 필요하세요?

여인2: 왜? 자기도 있어?

여인4: 아니요. 아파트 뒷산으로 산책 나갔다가 뽕나무를 발견해서요.

여인2: 갑자기 뽕나무는 왜?

여인4: 오디가 뽕나무 열매잖아요.

여인2: 정말?

여인4: 오디 순 따러 가실래요?

여인2: 따도 돼?

여인4: 임자가 없데요.

여인2: 임자 없는 나무가 어딨어? 공연히 망신당할 일 있어?

여인4: 근처 부동산 가서 물어 봤는데 임자 없으니 마음대로 따 가라고 했어요.

여인2: 그럼, 일단 있어 봐. 내가 전화 해보고 알려줄게.       


여인2는 여인1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인2: 저에요. 통화 괜찮으세요?

여인1: 괜찮아요.

여인2: 오디 순 필요하세요? 임자 없는 뽕나무들이 있다는데 따러 가실래요?

여인1: 좋지요. 갑시다. 오디 순은 단오 전에 따야지 아니면 쇠서 못 먹어요.

여인2: 오늘은 늦었고 내일 갈까요?

여인1: 그럽시다.

여인2: 일단 전화 끊고 계세요. 다시 전화 드릴게요.     


여인2는 여인3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인2: 자기 오디 순 필요해?

여인3: 왜? 누가 준대요?

여인2: 임자 없는 뽕나무가 있는데 가서 뜯어만 오면 된대.

여인3: 언니, 요즘 임자 없는 게 어딨어요? 버린 요강 단지도 주워오려면 임자가 나타난다는데. 공연히 망신당하지 말아요.

여인2: 진짜래. 얼마든지 따 가랬대.

여인3: 언니 갈거예요? 언니 가면 나도 가고.

여인2: 그럼 내일 열 시까지 우리 아파트 정문으로 와.     


여인2는 여인1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인2: 내일 열 시에 봬요.

여인1: 좋아요. 내 차로 갑시다.

여인2: 그러죠, 저희 집 아시죠? 아파트 정문으로 오시면 됩니다.      


여인2는 여인4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인2: 바쁘다 바빠. 내일 열 시.

여인4: 알겠어요. 그럼 거기가 저희 집 바로 뒤니까 저희 아파트 정문으로 오셔서 전화 주세요.

여인2: (입을 삐죽이며) 출발할 때 전화할게 미리 나와 있어. 내일 점심은 수제비 잘 하는 집 있다며? 거기서 먹자. 내가 쏠게.

여인4: 알겠어요.     


 

#배경 - 야외. 전형적인 봄 날씨



오전 10시를 막 지나고 있다. 아파트 정문에 마스크를 쓴 여인2와 여인3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머리를 끄덕이다가 웃다가 하는 걸 보니 대화중인 듯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검은 에스유브이 차가 여인 둘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트렁크와 뒷좌석은 흙 범벅인 농기구와 큰 고무 대야와 옷가지들이 잔뜩 쌓여 있다. 차가 정차 하자 여인2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여인1: (당황하며) 내 차는 한 명만 탈 수 있는데?

여인2: 한 차로 가실 생각인 듯해서 쟤 차는 파킹했는데,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나요?

여인1: 아니. 보다시피 차 안이 엉망이라, 앞자리에 자기만 태우려고 했지.    

여인2: (여인3에게 코*** 장바구니를 건네며) 이거 깔고 앉아.

여인1: 어디로 가면 될까요? 주소 알려 주세요.

여인2: (여인1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일단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 바로 아파트 뒤에 있대요.    

여인1: 아, 여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전에는 누에 치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나무들이 있는 모양이구나.


여인1의 차는 여인2, 3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여인2: 근데 걔는 어떻게 거길 봤대. 가만 보면 걔 매구야. 뭐 하나 허투루 보는 게 없어.

(*매구: 한국 민담에 등장하는 여우요괴의 일종으로 천년을 묵어 인간으로 둔갑이 가능한 여우요괴들을 총칭)

여인3: 여행 가이드를 해서 그런가?

여인1: 어쩐지 사람이 싹싹하다 했더니.   

여인2: (입을 삐죽이며) 이태리하고 파리를 백 번은 갔다네요. 누군 안 가봤나? 말만하면 거기 커피가 어떻고, 거기 패션이 어떻고 하면서. 거기 가면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오기가 싫다면서, 그럼 그냥 거기 살지, 왜 와? 결혼도 안했다는데.

여인1: 나이는 꽤 있어 보이던데, 미혼이래요?

여인2: 그림 그릴 때 보면 지가 언제부터 화가였다고 기초도 없이 그린 걸 작품이라고 내놓지를 않나, 아주 밉상이 따로 없어. (말하는 내내 입술을 삐죽거리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여인3: 언니가 그 여자 그림 피카소가 따로 없다며 엄청 칭찬했잖아요.

여인2: 자기는 접대용 멘트도 모르니?

여인3: (웃으며) 그럼 비접대용은요?

여인2: 그건 당연히 (양희은 말투로) 너 그림이 그게 뭐니?     


여인2, 3은 폭소를 터뜨렸다. 차는 여인2가 알려준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인4가 보였다. 여인4는 챙이 넓은 화려한 모자를 썼고, 선글라스도 착용했다.


여인2: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차 앞으로 다가 오는 여인4에게) 와우, 파리의 여인이 따로 없는데? 완전 런웨이야. 그러고 뽕나무숲에 가긴 아깝다. 어때? 공항으로 바로 갈까? 근데 어쩌나, 보시다시피 차가.

여인3: 언니, 그만해요. (차문을 열고 안쪽으로 몸을 옮기며) 이리로 와요. 여기서 가까우니 둘이 끼여 앉읍시다.  


여인4가 뒷좌석에 앉자 차는 다시 출발했다.     


여인2: 그 나무들 진짜 임자가 없는 거 맞아? 자기 때문에 오늘 제대로 망신당하는 건 아니지?

여인4: 여기 원주민 아저씨가 가져가고 싶은 대로 가져가라고 했어요.

여인2: 그래? 오늘 자기만 믿겠어.


여인4의 안내를 받고 달린 차가 멈춘 곳은 공사가 진행 중인 제방 둑길 입구다. 둑길 따라 양쪽으로 나무들이 즐비한데, 그 사이사이에 뽕나무들이 섞여 있다. 여인 넷은 차에서 내려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여인2는 코*** 장바구니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한 뭉치와 면장갑을 꺼냈다.


여인2: 면장갑하고 비닐봉지 챙겨 왔으니까 필요하면 써.

여인3: 언니, 나는 한 번 먹을 거만 있으면 돼.

여인4: 저도요.

여인1: 이리들 와서 잘 봐요.  


여인1은 뽕나무 가지 하나를 휘어잡더니 차조 같은 열매들이 달린 부분을 잎과 함께 훑듯이 뜯었다. 여인2, 3, 4는 머리를 끄덕이며 면장갑과 비닐봉지를 들고 각기 뽕나무 앞에 섰다.      

 

여인1: (여인2, 3 ,4를 번갈아 보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래가지고들 어느 세월에 다 하겠어? (여인2, 3, 4에게로 가더니) 내가 가지를 쳐 줄 테니 그늘에 돗자리 펴고 앉아서 훑기만 하셔.

여인3: (말 끝나기가 무섭게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여인1에게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얼마나 한다고.


여인1은 차에서 손잡이가 긴(원래 손잡이에 장대를 이어 만든) 낫과 돗자리를 꺼내더니 돗자리는 나무 그늘에 던져 놓고 뽕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서 가지들을 치지 시작했다. 커다란 가지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여인2: (여인4에게) 자기야 얼른 돗자리 펴. 그리고 가서 가지들 이리로 가져와. (여인3을 가리키며) 쟤도 오라고 해. 같이 왔으니 같이 해야지.

여인3: 언니, 하지 말라 해요. 한 번 해 먹을 거만 있음 되니까, 지금처럼 손으로 뜯으면 되는데.   

여인2: (돗자리에 앉으며) 일단 앉자. (여인4에게) 자기는 가서 이제 그만 하라고 해. 지금까지 한 걸로 충분하다고. 더운데 땀 흘리지 말고 오라고 해. 그나저나 저걸 다 언제 하냐?   

   

여인1이 여인 2, 3, 4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       


여인2: (양반은 못 되네- 혼자 말) 이쪽으로 와요. 이 땀 좀 봐. 가지는 내가 열심히 훑을테니 여기 앉아 좀 쉬어요.

여인1: 진짜 힘드네. 이럴 줄 알았으면 전기톱을 가져 오는 건데.

여인2: (화들짝 놀라며) 전기톱? 전기톱은 왜?

여인1: 낫으로 높은데 가질 치려니까 어깨가 너무 아파. 전기톱이 있으면 갖다 대기만 하면 되는데. 잠깐만, 나 차로 저기 좀 갔다 올게요. 저기도 뽕나무가 있어.

여인2: (여인1이 가리키는 쪽을 본다.)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해요. 이제 그만. 이미 친 것들만 해도 많아요. 저기는 다음에.

여인1: (일어서며) 다음엔 쇠서 안 돼. 그리고 여기 나무들 곧 잘릴텐데, 온 김에 두고두고 먹을 장아찌 담급시다.       


여인1은 여인 셋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차를 타더니 시동을 걸고 둑길 넘어 뽕나무가 있는 곳으로 질주했다.


여인2: (여인4에게) 쫓아가서 말려.


여인4는 일어서서 여인1의 뒤를 쫓았다.

 

여인3: 언니가 못 말리는데 누가 말려요.

여인2: 그나저나 이걸 다 언제 하냐? 벌써 손바닥이 마비된 듯. 가지들 몇 개 저기다 던져 버리자. (여인 3이 일어서서 큰 가지 하나를 힘들게 들어올리자) 그래그래. 잘한다. 표시 안나게 다른 가지 위에다 겹쳐서. (여인3이 여인2의 지시대로 다른 가지 위에 뽕나무가지를 던지자) 잘했어, 잘했어. 이것들만 빨리 해가지고 가서 점심 먹자. 수제비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수제비로는 안 되겠다. 고기 먹자 내가 살게.      

여인4: (여인1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며) 저기요. 언니들. 어떡해요. 차가 빠졌어요.

여인2: 차가? 왜? 어디에?

여인4: 보니까 저기가 진흙 구덩이길래 뒤에서 멈추라고 손짓을 하는 데도 그냥 막 달려가시더니.        


여인2, 3, 4는 차가 빠져 있는 곳을 보았다.      

진흙 구덩이에 빠진 차와 여인1은 그야말로 물아일체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도 여인1은 차에서 온갖 농기구들을 꺼내 차를 끌어낼 방법을 찾고 있다.

      

여인2: (화를 내며) 이게 무슨 일이야? 가지 말라면 가지 말지. 왜 고집을 부리고 그래. 몸에 좋은 거 얼마나 먹고 오래 살려고 그러는지, 정말 싫다 싫어. (여인4를 보며) 보험 들었을 거 아냐. 가서 얼른 보험 회사 부르라고 해.


여인4는 몸을 돌려 여인1이 있는 곳으로 향해 갔다.


여인3: 언니, 어떡해?  

여인2: 짜증난다, 짜증나. 보험 회사에서 나오면 뭐라 그럴 거야? 오디 순 서리하다가 차가 저 지경이 됐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뭐라 그러겠어?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멀쩡한 여자들이 왜 그러고 다니냐고 비웃지 않겠어? 이런 망신 망신 개망신이 없다 없어.


진흙을 뒤집어 쓴 여인1은 여인4와 함께 여인2, 3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여인2: (화가 잔뜩 난 채로) 꼴이 그게 뭐예요? 차에 갈아입을 옷 없어요?

여인1: (전혀 개의치 않으며) 괜찮아요. 집에 가서 씻으면 되요. 난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오디 순이나 훑어요.

여인2: 이 와중에 그런 말이 나와요?

여인1: (여자2의 태도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보이며) 왜 화를 내요.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답니다.

       

여인 셋은 하는 수 없이 돗자리에 앉아 뽕나무 가지를 훑기 시작했다. 여인1은 일어나 옷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고 있다. 견인차가 도착했다.


견인차 기사: 차 어딨어요?

여인1: 저기요.

견인차 기사: (여인1이 가리키는 쪽을 보며) 아이고, 저긴 왜 들어 갔어요? 우리도 저긴 못 들어가는데.

여인2: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못 들어가다니, 그런 게 어딨어요?  

견인차 기사: 아주머니, 저기 들어가면 제 차도 못 나옵니다.

여인2: 왔으면 차를 꺼내줘야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인1: (여인2를 말리며) 잠깐만요. 아저씨 일단 저랑 저기에 가봅시다.    

 

여인1과 견인차 기사는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인2: (견인차 기사 등덜미에 대고 눈을 흘기며) 뭐라는 거야? 여자들만 있다고 무시하는거야 뭐야? (세워 놓은 견인차를 보며) 이 차가 못 들어가면 들어 갈 수 있는 차를 가져와서 꺼내면 되지? 못 들어간다니, 말이야 막걸리야?

여인3: 언니, 나 머리 아파요. 저 사람이 우리 이러고 있는거 보고 뭐라 하겠어요?

여인2: 뭐라긴, 할 일 없는 여편네들이 미쳤다고 하겠지. (여인4에게) 그나저나 자기는 왜 오디 순 따러 가자해서 이 사단을 만드는 거야?


진흙구덩이에 갔던 여인1이 혼자 돌아왔다.


여인1: 혹시 돈 가진 거 있어요?

여인2: 내 그럴 줄 알았어. 돈 달라죠?

여인1: 아니. 차는 못 들어가는데 우릴 보니 그냥 갈 수 없대요. 마침 도구들이 있으니 같이 꺼내보자고 하시네. 그래도 그냥 해달라고 할 수 없잖아요. 내가 현찰이 있으면 주겠는데 카드만 있어서요.

여인2: (네가 오자고 했으니 네가 내라? - 속에 말) (기분 나쁘지만 애써 참으며) 얼마 드려요?

여인1: 오만 원만 빌려줘 봐요.

여인2: 무슨 오만 원씩이나 줘요? 점심 값으로 삼 만원만 줘요.

여인1: 사람 부릴 땐 그 사람 서운하지 않게 챙겨 주는 게 내 지론이랍니다. 그냥 오만 원 줍시다.

여인2: (퉁명스럽게) 알겠어요.  

여인1: (여인2가 건넨 오만 원짜리 지폐를 받으며) 나중에 갚을게요.

여인2: (나중에? 나중에 갚겠다는 말은 안 갚겠다는 거잖아. - 속에 말)  


     

#배경- 여인2의 집     



거실 한가운데 돗자리가 펴져있고 거기에 오디 순이 한 가득 높이 쌓여 있다.      


여인2의 남편: (퇴근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풀만 뜯고있는 아내에게 비웃는 말투로) 그건 다 뭡니까? 웬 풀더미를 잔뜩 쌓아 놓고 뭐하고 계십니까?  


여인2는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남편에게 소리쳤다.


여인2: 이거? 내 탐욕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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