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들 가요?’
‘이 사람 병원에요. 오늘 입원해요.’
‘왜? 어디가 아파서?’
‘소뇌위축증이라고 난치병이래요.’
앞집 내외와 헤어진 후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앞집 남자, 그 무거운 말을 ‘이 사람 몸살 기운이 좀 있어서요.’ 라는 말처럼 내뱉다니. 그 탓에 나는 엉겁결에 멀뚱멀뚱 서있는 앞집 여자의 등을 쓸어주며 ‘괜찮아요, 요즘 약들이 잘 나오니까 약 먹으면 좋아질 거예요.’ 라는 아무 말을 하고 말았다. 앞집 남자, 언행에 있어 경솔이 지나친 건 알았지만 남이니까 무시했었는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사돈의 팔촌만 됐어도 등짝 스매싱을 날려 버리는 건데.
앞집과 연이 닿은 것은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기 바로 직전이었다.
‘십삼 층이세요?’
‘네? 네.’
‘이사 오신 줄 알면서도 인사도 못 드렸네요. 혹 시어머니세요 장모님이세요?’
‘장모에요.’
‘그러시구나.’
장바구니를 식탁에 올려놓고 쉬려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 영상에 앞집 남자가 보였다.
‘이거 처가에서 보낸 건데 어머니 드시라고요.’
얼떨결에 앞집 남자가 건네는 대봉감이 담긴 접시를 받아 들었다.
‘어머니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고마워요. 잘 먹을 게요.’
나는 남자가 자기 집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웃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엄마. 이거 뭐야 ?’
‘앞집에서.’
손녀가 깰까 봐 딸이 있는 거실로 나오며 작은 소리로 답했다.
‘앞집 사람들 만났어?’
‘여자는 못보고 남자만 봤어.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내가 십삼 층 누르니까 먼저 인사하던데. 초면인데도 나한테 시어머니냐 장모냐 까지 묻던데?’
‘엄마는 호구조사 안했어?’
‘아직. 낼 하려고.’
다음날 손녀를 등원 시킨 후 케이크를 사들고 앞집 현관 앞에 섰다. 벨을 누르려다 멈췄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 대신 노크를 해주세요. -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시키는 대로 했다.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두드리고 귀를 현관문에 바싹 댔다. 마찬가지였다.
커피가 가득 찬 머그잔과 머핀 한 개를 챙겨 소파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자 미처 깨지 못한 세포들이 반응을 보였다.
- 갓난애가 있다. 남자는 나이가 있어 보이던데, 둘짼가? 말하는 본새는 내 스타일은 아니고, 인상은 속없이 사람 좋다는 소릴 들을 거 같고, 몸은 운동이라고는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고, 말이 어렵지 않은 걸 보니 친화력 하나는 만랩 인정. 영업? 서비스업? 무슨 상관이야. 그나저나 여자는 어딜 간 거야? -(속에 말)
간만에 뇌를 썼는지 시장기가 확 밀려왔다. 시계를 보니 밥 때가 지났다. 역시 배꼽시계는 진리다.
아점 먹고 세탁기 돌리고 청소기 돌리고 건조기 돌리고 저녁 반찬 두어 가지 하다 보니, 어느새 손녀 하원 시간이 다 되었다. 혹시나 싶어 주려다 못 준 케이크를 들고 앞집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안에서 현관문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렸다.
사내아이와 그 뒤로 여자가 보였다.
‘앞집이에요. 이거 받아요. 진즉에 인사해야 하는 건데 어쩌다 보니 반년이 훌쩍 갔네요.’
‘아, 아, 네, 감사합니다.’
사내아이의 얼굴은 어제 본 남자를 쏙 빼 닮았다.
‘애는 아들 하나?’
‘아, 아, 네.’
‘추운데 들어가요.’
대화가 더 이상 이어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앞집 현관문이 닫혔지만, 나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앞집 여자의 멀뚱멀뚱한 시선이며, 동굴 속 저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무겁고 습한 말소리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엄마, 앞집 만났어?’
‘만났어. 근데 왠지 께름직하단 말이야.’
‘뭐가?’
‘여자가 언어 장애가 있는 거 같아.’
‘말을 못해?’
‘말도 말이지만, 나를 보는 눈이 멀뚱멀뚱한 게, 꼭 얼빠진 사람 같았어.’
‘정말? 애는?’
‘아들 하나. 앞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울 엄마 호기심병 도지셨네.’
다음날 이미 밤이 시작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앞집남자가 보였다. 여자도 아이도.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려고요.’
‘우리 애들은 퇴근 전인데.’
‘어머니만 계시면 돼요.’
‘그러면 들어와요.’
앞집 사내아이와 손녀는 서로 보자마자 함께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저흰 커피면 돼요.’
앞집 남자 말대로 커피만 세잔 준비해서 앞집 내외가 기다리고 있는 소파에 와 앉았다.
‘아내가 상당한 미인이에요. 어떻게 만났어요?’
‘직장 상사였어요.’
‘그래요?’
‘이 사람은 해외 영업팀에, 저는 해외 정보팀에 있었어요.’
‘그래요. 멋지네요.’
‘아내는 육아 휴직 중?’
‘아뇨, 때려치웠어요.’
‘왜요?’
‘초면인데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
–되지. 되고말고. 당연히 되지. 뭔데? 빨리, 빨리 좀 말해. 궁금해 죽겠잖아. - (속에 말)
‘사실 이 사람은 재혼이고 저는 초혼이에요. 전 남편 사이에 딸도 둘 있어요.’
-오 마이 갓! 좋아. - (속에 말)
‘딸들은 처가에서 키우고, 저흰 쟤하고 셋이 살아요. 이 사람은 거의 처갓집에 가 있어요.’
앞집 남자는 내가 묻기도 전에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서슴없이 이어갔다. 앞집 남자의 얼굴은 상기되어 갔다. 앞집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동공이 비었어.’ 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들었던 말이다. 남편을 땅에 묻고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때였다. 나는 무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던졌던 말이다.
‘이런 말 해도 되려나 싶은데.’
‘괜찮아요, 하세요. 저 사실 오늘 어머니하고 얘기 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내가 아픈 것 같은데.’
‘그게요, 사실 이 사람 전 남편, 그 인간이 이혼을 안 해줘서 재판 중이었어요. 그 인간 아주 나쁜 놈이에요. 어머니, 이 사람 왜 이렇게 됐는지 아세요. 그 개새끼 때문이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안 하더니 이렇게 된거에요.’
‘… ….’
‘결국 회사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요. 오 년이에요. 오 년을 끌던 재판이 엊그제 끝났어요. 쟤 있잖아요, 여태 호적에도 못 올렸어요.’
‘… … 이제 다 끝났으니까 앞으로 좋은 일만 있겠거니 하고 살아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에요.’
앞집 남자는 손바닥으로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나는 긴장했다. -그게 다가 아니면, 뭔데? 얼른 말해 얼른, 궁금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구. 얼른 얼른. -(속에 말)
‘이 사람 전 남편 그 새끼요, 성폭력자에요. 그것도 지 친 딸 둘 상대로요.’
나는 두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이 사람도 잠자리 안 해준다고 담뱃불로 지지고 때리고.’
‘… ….’
‘고소했는데 증거 불충분이래나 뭐래나, 그 개새끼 무혐의 처리 됐어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그만! 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앞집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안들은 걸로 하고 싶었다. 앞집 내외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 속내를 눈치 챘는지 앞집 남자가 일어섰다. 앞집 여자도 남편을 따라 일어섰다.
‘가볼게요.’
앞집 남자의 눈에 서운함이 가득했다. 앞집 가족이 가자마자 물걸레로 거실을 박박 문대어 닦았다. 귓속도 비누로 거듭거듭 씻어냈다.
‘누구 왔었어?’
‘앞집 내외가 너희들하고 인사하고 싶다고 와서 기다리다가 갔어.’
딸과 사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전할 필요가 없는 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안은 앞집 남자의 말※
-나한테 왜? (원했으니까.) 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국민 청원이라도 올리라고?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 시위라도 하라고? 난 못해. (왜?) 보다시피 난 늙었어. 에너지는 이미 고갈 되었어. 끓어오를 피 따위도 없어.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지도 오래 전이지. 난 그저 손녀 돌보는 하미일 뿐이야. (핑계.) 나 같은 게 소리친다고 저들 귓등에나 들리겠어? 비웃지나 않음 다행이지. (그럼 한 여자의 억울함은? 저 불쌍한 어린 것들의 앞날은?) 난 몰라. 왜 하필 나 같은 늙은이한테? (딸과 사위는?) 안 돼. 걔들은 끌어들일 생각 마. 둘이 악착같이 벌어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든 세상인데,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할 순 없어. (알아? 당신도 그 개새끼나 다름없는 인간쓰레기라는 사실을?) -
앞집 남자는 더 이상 내 집 현관 벨을 누르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그 날이 된 것이다. 그 날은 추석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사실 그날 나는 앞집 남자가 여행 가방을 들고 있지만 않았어도 눈인사만 건네고 숨듯이 들어와 버렸을 것이다.
‘앞집에 사람들 있는지 가봐라.’
‘왜?’
‘추석인데 아내가 그러니 상도 못 차렸을 테고, 음식 좀 보내려고.’
나는 추석 장을 볼 때부터 앞집 몫까지 준비했었다. 한 상 가득 차려 사위에게 들려 보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앞집 남자가 상을 엎어버리지나 않을까 싶어 현관 밖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 너무 감사드린대요. 엄청 감동하던대요.’
‘다행이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한 명절 상을 치우고 식구대로 배가 불러 산책이나 나갈까 의논 중이었다. 현관 벨이 울렸다.
‘앞집 분이네요.’
사위는 현관문을 열었다.
‘어머님께 감사인사 드리려구요.’
앞집 남자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현관에 도착하자 갑자기 앞집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절을 하듯 머리를 바닥에 붙였다.
‘무슨 일이에요? 왜 이래요? 어서 일어나요.’
‘어머니, 저 태어나서 이런 명절 상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저요, 술 끊었었어요. 근데 오늘만큼은 안 마실 수가 없어서 마셨습니다.’
사위와 아들은 앞집 남자에게로 가서 각각 양쪽 어깨죽지에 팔을 끼고 일으키려 했다. 앞집 남자는 뿌리치며 울부짖었다.
‘어머니, 저 미친놈이라고 욕하신 거 압니다. 네, 저 미쳤어요. 미쳐도 더럽게 미쳤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저란 놈은 살 수가 없어요. 저요, 저 한 번 잘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이 미친놈과 그 개새끼한테 배신당한 저 여자랑요. 짐승만도 못한 내 부모나 그 개새끼 보란 듯이 잘 살아보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겁니까? 저 불쌍한 여자는 왜 저렇게 죽어가야 하냐구요? 저 불쌍한 죄 없는 내 새끼는 왜 어미 없는 설움을 받아야 하는 거냐구요? 왜요? 왜?’
앞집 남자는 몸부림을 치며 주먹으로 미친 듯이 가슴을 쳐댔다. 앞집 남자의 피 멍든 가슴은 시뻘건 피를 뿜었다. 탈대로 타버린 심장은 재를 토했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진 애간장은 싯누런 고름으로 쏟아져 내렸다.
‘… ….’
한참을
아주 한참동안을 그렇게
나와 딸과 사위와 아들은,
우리는 그런 앞집 남자를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