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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두만 Dec 19. 2022

슬픔을 숨기는 슬픔



  1  자녀가 급성 후두염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차장님이 급히 퇴근했다.  모습을 보며  생각이 났다.  살인지 정확히는 기억  나지만 나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 곁에는 엄마와 동생들이 있었다. 몽롱한 상태로 바라본 엄마의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짓고 동생들과 함께 밝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는 지체장애를 가진 막냇동생의 손을 잡고  아들의  앞에서 씩씩했다. 이제  당시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으나, 억지로 지은 활기찬 표정 뒤에 감췄던 엄마의 슬픔을 아직도 짐작하지 못한다.


  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빠의 슬픔은 또 어떠한가. 가부장적인 집안의 장남이었던 아빠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를 모셔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가장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며, 그 과정 속에 놓인 고통들은 홀로 삼켜야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점차 건강을 잃어갈 때, 아빠는 슬픈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빠는 퇴근 후 먼저 할머니께 문안을 드렸으며,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 방에 드나들지 않았다. 때때로 아빠는 출퇴근 길에 할머니 생각으로 운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기만 했을 뿐, 아빠는 끝까지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아빠에게 눈물을 삼키는 일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순리이며, 앞으로도 고쳐지지 않을 습관이기도 했다.


  자식의 병 소식을 들은 차장님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급성 후두염이 치사율이 높지 않은 병인지, 직장 상사 앞에서 감정을 추스른 건지, 혹은 너무 놀라서 감정 자체가 마비됐는지 모르겠다. 다만 드러내지 않은 모든 것들은 드러난 것보다 안쓰럽다. 어떤 상황들은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없는 사람도 언젠가는 감춰둔 슬픔을 꺼낼 텐데, 그 사이 익어가는 비통함은 억눌린 만큼 큰 슬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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