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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잘쓰는헤찌 Mar 23. 2023

입학을 축하합니다.

#입학 #꽃 #봄 #꽃샘추위 #황사 #화이트데이 #신입생 #나들이 소풍

“여러분들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3월의 꽃은 또 피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오랫동안 맴도는 남부지방의

봄은 유난히 더 따뜻하다.

이 따뜻한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빼꼼히 얼굴을 알린다.

꽃샘추위는 봄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특이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처 물러나지 못한 추위는 또다시 따뜻해진 봄의 기운을 시샘했다.


- 알았어, 알았어, 잊지 않을게.


우리 할머니는 사탕을 참 좋아하셨다.

다 빠져버리고 아래 앞니 2개가 달랑 남은 그녀에게 사탕은 유일한 달콤함이었다.

그녀의 사탕 리스트는 꼭 청포도, 스카치 커피 맛 사탕 등의 ‘달달함’이었다.

2020년 3월하고도 열너댓 날이 더 지난 그해의 화이트데이.

나는 할머니가 좋아하실 사탕 여러 개를 사서 조수석에 툭툭 올려두었다.

그날은 유독 2,000pm이 넘는 황사 농도가 앞을 가렸다.

뿌연 창가에는 꽃가루와 황사가 뒤엉켜서 노란 지린내가 빼곡하게 내려앉았다.


“할매!”

나는 대문에 서서 사랑채에 있을 할매를 힘차게 불러본다. 할머니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손녀의 목소리를 맞은 할머니는 기쁨의 발걸음을 재촉해 문을 여셨다. 예전 같으면 경주 최씨 큰 안방마님의 발걸음의 체통이 느긋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손녀를 기다리는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진아~ 니 왔나? 밥 묵자.”

미닫이문 귀퉁이를 잡고 서 있는 할머니의 미소가 환하다. 적적한 노인의 삶에서 손녀는 꽤 반가운 손님이었을 테다.


1930년대 여성의 인권이 낮았던 시기에 태어난 할머니는 남들과 달랐다. 있는 집 여식으로 대학까지 나오셨고, 글을 깨나 쓰시던, 배운 여성이었다.

당시 시대의 분위기에 묻어가 오랜 시간 큰 안방마님으로 사셨고, 이따금 책을 사서 읽음으로써 젊은 시절 배움을 적셔두었다. 수천 번 제사를 준비하고 주도하던 큰 안방마님, 그 70년 넘는 세월의 음식은 어느 자식도 감히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손녀 앞에 작은 밥상을 내어놓고, 정갈한 무침류와 방금 끓인 국 한 대접이 놓인다. 그리고는 손녀를 향해 다정한 언어를 건네신다.

“신입생들 들어왔제? 아들 좀 어떻더노?”

“애들 착하고 순하다.

할매랑 내 일하는 데랑 더 가까워져서 좋다.”


“그래. 시간 나면 종종 놀러 오거래이. 할매 밥 해주꾸마.”

“할매, 이놈의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우리 시장에 나들이 가가 국시도 묵고 소풍도 가제이”

그러나 다음 해 봄에도 코로나는 너무 많았다. 사람과의 소통이 줄면서 눈에 띄게 수척해진 할머니는 깜빡깜빡, 순간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오랜 시절 할아버지와의 추억이나 제사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아주 긴 시간, 이야기 타래를 풀어내셨다.


“진아,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 가래이. 제사 없는 집으로 가라. 나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정성으로 조상을 모셨지만 너거는 그저 조상 복 받아서 행복하게 살거라.”


“너거 할아버지가 연세대 나와 가 경찰도 하시고 농협 직원이기도 했다. 사람 진짜 괜찮았데이. 지금에야 일제시대 경찰을 순사라 카면서 친일파라 오해하지만 절대 사람한테 해 안 끼쳤다. 거지들 오면 항상 한 상 가득 밥상 내어주라 카고, 어려운 사람 있으면 끌어주고 잘못한 사람도 눈감아주고 했데이.”


그리고 그 다음 해의 봄에도 우리는 시장에 나들이를 가지 못했다. 그날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 또 올게”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바싹 마른 나뭇잎이 떨어질 때 즈음, 그녀는 하늘의 따스함을 찾아갔다. 먼저 봄의 새싹을 밟으러 올라갔다. 딱 오십 년 전 먼저 가신 자신의 부군과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서둘러 올라갔다.

쫑알쫑알 떠들어 대는 여섯 살 난 막내를 두고 먼저 간 남편에게, 짠-하고 나타나기 위해 평온한 미소로 먼저, 그녀만의 봄을 찾아 가버렸다.


따스한 봄 같은 할머니는 하늘하늘한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좌측에는 50년간 기다린 사랑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자기보다 좀더 나이 들어서 온 아내가 예쁘다는 듯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직 어린 그들의 아들이 킥보드를 타며 해맑게 놀고 있었다. 할머니보다 십 칠 년이나 먼저 봄을 찾아온, 큰아들이었다.

그들은 긴 잠에서 깬 할머니가 눈을 떴을 때 아내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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