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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28. 2022

너를 기리며

6주 2일. 짧은 생의 기록

올해 2월. 예정일보다 일찍 터져 하루 만에 멈춰버린 월경이 미심쩍어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뜻밖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두 아이가 있고 맞벌이를 하는지라 임산부가 된 후에도 내 생활에 큰 변화는 없었다. 다만 직업 특성상 야간 당직 근무 면제와 임부복 지급 등을 위해 회사에 일찍 알릴 필요가 있었을 뿐. 덕분에 많은 축하와 크고 작은 배려들을 받고 비로소 내가 진짜 임산부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주.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토요일 아침. 임신 주수로는 9주 1일 차가 되던 날이었다. 첫째부터 둘째까지 산부인과 검진에 항상 동행해주던 남편에게 두 아이를 부탁하고 궂은 날씨에 괜히 우르르 가서 고생하지 말고 혼자 진료를 받고 오겠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었는데. 그날따라 주치의 선생님이 대기 환자가 많아서 가장 빠른 분께 접수를 하고 20~30분 정도 대기 후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사실 이미 지지난주인 7주 차에 아기 심장소리를 듣지 못해서 긴장이 된 상태였다. 간혹 착상이 늦게 되어서 아기가 주수보다 더디게 자라는 경우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했던 터였다. 첫째 아이 때는 전치태반, 둘째 아이 때는 심장 부정맥 소견으로 우여곡절을 겪고도 무사히 두 번의 출산을 마쳤고 못 먹거나 토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빈속에 울렁거림, 유방통증 등 임신 증세가 지속되고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었는데.


진료실에 들어가니 낯선 여의사 분이 앉아계셨다. 바로 배 초음파를 보자고 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온도가 더울 정도로 따듯해서 땀이 조금 났던 것 같다. 화면을 꽉 채운 커다란 아기집에 흑백 강낭콩처럼 흐릿한 점을 찍어 초음파 화면을 확대하고 확대하며 이리저리 말없이 관찰하던 의사는 "아기가 왜 이렇게 안 자라는 걸까요?"라고 묻는 내게 "유산인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사과를 보고 사과라고 말하듯 아무런 감정도 주저함도 실리지 않은 건조한,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어조로 '유산'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의사에게 지금 뭐라고 하신 거냐고 되물을 정신도 없이 순간 멍해져서 가만히 듣기만 하는 나에게 부연설명을 하셨는데 뒤에 말은 정확히 잘 기억도 나질 않고 결론은 수술을 해서 내 몸 밖으로 죽은 아이를 배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수술 날짜를 잡고 가라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서 접수처 옆에 작은 상담실 같은 곳에서 간호사 분과 마주 앉고서 언제 시간이 괜찮으시냐는 물음에 그제야 실감이 났는지 그만 울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쓰고 있던 마스크까지 흥건히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이 물티슈를 뽑아 건네시며 임신 초기에 유산하는 경우가 꽤 있다며 너무 자책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상담실을 나와 수납을 하려고 기다리면서 진료대기 중인 수많은 산모들의 뒷모습을 보며 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목적지를 향해가던 일행들 틈에 있다가 혼자 버려져 길가에 낙오된 신세가 된 기분이랄까. 울먹거리면서 수납까지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탔는데 빗줄기는 차창을 가리고 눈물이 앞을 가려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왔는지 모르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쪼르르 달려 나와 고작 한두 시간 떨어져 있던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다며 품에 꼭 안기는 첫째 아이에게 가장 먼저 위로를 받았다. 빨개진 내 눈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남편에게 아이의 유산 소식을 전하며 부둥켜안고 또 눈물을 쏟았다. 남편은 오늘 나를 병원에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다며 자책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수술을 하기로 해서 각자 회사에 연락해 휴가를 냈다. 이 와중에 두 돌이 안 된 둘째는 콧물감기에 걸려 칭얼댔고 집에서 싼 김밥을 갖다 주려고 전화한 친정엄마에게 갑작스러운 유산 소식을 전해야 했다.


6주 2일. 우리 집 비공식 막내 셋째가 내 뱃속에 '살다'간 시간. 심장도 채 만들지 못하고 좁고 어두운 뱃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짧은 생이 다해버린 줄도 모르고 그 아이를 2주가량 더 품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 모든 신이 원망스러웠다. 작고 여린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이 고작 6주였다니. 이렇게 잠깐 줬다 뺐을 거면 애초에 허락하지 말지. 심한 출혈이라도, 통증이라도 있었다면 그전에 내원을 해서 조치를 받지 않았을까. 몸이 무겁고 피곤했던, 힘드니까 좀 쉬라며 어쩌면 생이 다해가던 아이가 보낸 작은 신호들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컸다. 사실 착상 때부터 갈색 출혈이 줄곧 있어서 유산방지 질정을 처방받긴 했었는데 병원을 다녀오자마자 출혈이 멈추길래 안심하고 제때 약을 안 넣었던 게 화근이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곱씹으며 괴로워했다. 이름도, 성별도, 생일도 가져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떠난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새삼스럽게 내 뱃속에서 열 달을 버티고 세상에 나와준 두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겹쳤다. 나는 참 둔하고 못난 엄마였다.


수술 당일. 여느 때처럼 두 아이를 등원시키는 길에 바라본 움트는 꽃봉오리들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휴가를 낸 남편과 함께 찾은 산부인과에서 마지막으로 본 초음파 사진에서는 아기의 흔적을 거의 찾기 힘들 정도로 빈 아기집만 보였다. 주말 이틀을 보내고 온 사이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믿을 수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잠시 우리 곁에 머물다 간 아이. 이 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왔다 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너의 존재가 우리에게 강렬한 의미로 남을 수 있도록, 나는 회복실에 누워 다짐했다. 네 몫까지 열과 성을 다해 살아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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