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삶'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죽음'을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행복'이 뭘까하고 생각하는 만큼 '불행'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들여다보니 '불행'이란 녀석은 꽤 공정한 편이었다. '행복'은 상대적인 편이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해 고민할 때 주변을 돌아보며 나는 얼마나 가지고 있고 누리고 사는지 환경적인 요인을 비교해보고 마음 상태를 돌아보게 되는 반면, 불행은 온전히 마음먹기에 달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 방송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지성을 겸비해 결혼할 때 남편을 이른바 '국민 도둑'으로 만들었던 어떤 여배우의 고백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그녀의 유년시절이 불행했다는 것이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을 보고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한창 전성기였던 스물넷에 돌연 결혼발표와 동시에 활동이 뜸했던 그녀. 수려한 외모와 학창 시절 공부 잘하기로 유명해서 남들 보기에 완벽한 그녀였기에 데뷔 이후 첫 가정사를 공개한 그녀가 새삼 달라 보이기도 했다. 아, 그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보이그룹 BTS도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2018년도에 해체 위기를 겪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우아하게만 보이는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인기 스타도, 대기업 총수도, 유명한 정치인도 불행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 때로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저버리고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남들이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도 불행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저 소소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평화로움과 적어도 타인의 강요가 아닌, 내 선택에 의해 주어진 책임을 다 하는 삶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 전쟁이나 기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위 '불행 포르노'를 보며 그래도 나는 저들보다 우월한 인생이라고 자위하며 찌질하고 저열하게 삶의 만족을 찾기도 한다.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종교적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일만큼이나 높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제 오랜만에 연락이 온 후배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나에게 존경스럽다는 말을 했다. 퇴근 무렵 온 연락에 아이들 하원 시키고, 저녁 먹고, 씻기고, 큰아이 책 읽어주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애들 재우고 나니 새벽녘이 되어서야 '다들 바쁘게 사는 것 같다'는 말에 제대로 된 답장을 할 수가 있었는데 이미 후배는 잠이 든 시각이라 회신을 받을 수 없었다. 짧은 연락이었지만 아쉽기보다 반가운 마음이 컸다. 싫어도 좋다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겹겹이 포장되어있던 내 마음이 스스로 껍질을 벗고 본심을 드러낸, 오랜만에 느껴본 아주 순수한 감정이었다. 나처럼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그가 언제나처럼 잘 헤쳐나가길 진심으로 믿고 바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그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불행은 모든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만, 행복은 사소한 것도 위대하고 특별한 일로 만든다는 것을.
어쩌면 나 스스로가 행복을 허락하는데 빈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불행'에 함락되지 않으려 무거운 철갑옷에 창과 방패를 들고 성문을 굳게 잠그고만 살았는데 행복은 맨몸으로 두 팔을 벌려 광활한 들판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달까. 내가 할 일은 그저 그 무거운 것들을 다 내려놓고 문만 열어주면 되는 일이었는지도.
어제 방심한 틈을 타 잠시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가끔은 긴장의 끈을 놓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을 수많은 행복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