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장소를 지나다니며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들 속에서 어느 날 내 시선을 사로잡은 두 사람이 있었다. 덥수룩한 백발의, 문자 그대로 머리카락이 전부 새하얗게 센 할아버지와 새카만 양갈래 머리를 언뜻 보기에도 정성스레 빗어 묶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운전을 하며 지나친 2초 남짓한 짧은 순간, 도로변에 마르고 작은 체구의 노인이 양팔로 노란 가방을 등에 멘 어린 손녀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부스스한 백발 할아버지와 단정하게 차려 입힌 어린 손녀의 대비가 꽤 강렬하여 잔상이 오래 남았다. 유치원 통학버스를 기다리는지 먼 곳을 응시하며 서 있는 다른 듯 닮은 두 사람. 다부지게 손녀를 끌어안고 있는 검게 그을린 노인의 팔에 대강 걸터앉듯이 안긴 아이의 모습에서 오히려 할아버지에 대한 강한 신뢰와 안정감이 느껴졌다. 불안에 휩싸인 아이 었다면 조부의 품에 파묻혀 그의 옷자락이라도 위태롭게 붙잡고 있지 않았을까.
부슬비가 내리던 오늘 아침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를 지나쳤다.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아이에게 치우쳐진 우산 하나. 처음 마주했던 두 사람의 대조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습하고 더운 장마철 날씨의 불쾌함을 뽀송하게 날려줄 포근한 가족이 보인다. 여전히 같은 곳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시선, 차가운 빗방울을 피해 우산 안에서 맞잡은 손, 정반대인 것 같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두터운 신뢰와 따스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이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아득히 많을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왠지 두 사람 사이에 괴리가 없어 보였다. 이렇듯 무엇을 보고 느끼던지 짧은 순간 겉으로 보이는 외형보다 그 안의 디테일과 숨은 의미에 집중하면 좀 더 대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고 했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커버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