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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13. 2022

고슴도치 엄마

도치맘

 엄마는 고슴도치 엄마다. 제 새끼도 함함하다 해주는, 자식을 아끼고 귀여워해주는 엄마가 아니라 자칫 방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가 찔려서 피가 나고 생채기가 생기고 마는, 보이지 않는 가시가 박힌 엄마라는 소리다.


이를테면 우리 시어머니 같으면 에둘러서 "요즘 운동은 안 하니?" 할 것을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살이 쪘니?"라며 사람을 무안 주기도 하고 "많이 피곤해 보인다"라고 하면 될 것을 "너 얼굴이 너무 안 좋다"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며느리와 사위에게도 예외가 없어서 돌직구 1타 쌍피로 나와 남동생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물론 그것은 악의도 없고 가식도 없고 거짓도 없는 100%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항상 커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 한 치수 큰 것 같은 사이즈의 편한 옷을 즐겨 입으셨는데 이 모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장 애청하는 TV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속세를 떠나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신다.


엄마가 얼마나 세상 물정에 관심이 없으시냐 하면 내가 초등학교 때 단순히 호랑이 띠라는 이유로 호랑이 그림 가방이나 호피무늬 코트를 사주기도 했다. 호피나 레오파드가 패션계에서 상징하는 섹슈얼한 이미지를 알았다면 어린 딸에게 사주진 않았을 터.


그렇게 엄마의 말에 상처받고, 엄마의 행동과 말을 오해하며 보낸 시간 동안 깊게 파인 감정의 골만큼이나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도 생겼었는데 어느덧 나도 성인이 되고 또 엄마가 되고 두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나 혼자 상처받고 마음에 새겼다가 치유했던 가시 박힌 말은 "너를 가졌을 때 나는 너무 불행했다, 지우고 싶었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 존재 자체를 불행의 씨앗 혹은 저주로 규정짓고 나에 대한 원망이나 낙태를 감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등 엄마가 실제로 내게 하지도 않은 말들로 살을 붙여 스스로에게 상흔을 남긴 기억이 있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인지라, 그 말을 엄마 대 엄마로 이해해보자면 임신 당시 남편과의 소통 부재, 고작 스물두 살이었던 본인의 어린 나이, 기댈 곳 없는 친정 등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해서 잘 키워낼 자신이 없었던 거였으리라. 엄마 된 입장에서 내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 생략된 뒷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 였을 것이다.


돌 중에 가장 단단하다는 금강석도 정성 들여 세공하면 값진 다이아몬드가 되듯, 때로는 돌직구에도 언어적 세공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던진 사람이 못한다면 맞은(받은) 입장에서라도.


어제는 세 살배기 작은 아이가 급성 장염에 걸려 어린이집으로부터 맞벌이 부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급작스러운 등원 자제 권유를 받았는데 이를 알게 된 친정엄마가 한걸음에 달려와 아이를 봐주셨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 응급상황에서 눈앞이 캄캄해진 우리 부부에게 군소리 없이 달려와준 엄마가 한줄기 빛과 같았다. 이런 고마움들로 나는 엄마에 대한 묵은 미움들을 밀어내는 동시에 실타래같이 얽힌 오해들을 풀고 대신 그 자리를 감사와 이해로 채우고 있다.


어쩌면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불효는 나 스스로를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 다시 말해 부모님의 헌신과 내게 주신 한없는 사랑을 부정하고 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우리 엄마, 아빠의 따듯한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 30여 년 전에 30대의 엄마, 아빠가 나와 내 동생 들을 그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다시 보니까 우리 엄마 '도치맘' 맞는 것 같다. 제 새끼도 함함하다 하는 그 고슴도치 엄마 말이다.


(*이미지 출처 : 다가섬과 물러섬의 사이에서 고슴도치의 가시 - 언어 공감, 서울교육방송 전자책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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