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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28. 2023

My way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얼마 전,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요즘 우울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저녁식사를 하며 나의 양쪽에 앉은 두 아이를 챙기느라 무심히 흘려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벼운 우울, 불안증 같은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동시에 솔직히 나도 맞벌이하면서 애들 챙기느라 힘들다는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면 우리 네 식구가 출전해서 팀으로 뛰어야 하는데 남편은 언젠가부터 경로를 이탈해서 표정 없는 얼굴로 조금씩 멀어져 가는 나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어떻게든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 애 둘을 데리고 아등바등하다가 화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빨리 안 오고 뭐 하냐고 남편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멀찍이 떨어진 그가 서 있는 곳이 벼랑 끝인 줄도 모르고.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어떤 과정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우리 곁에 오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아이들 때문이었으리라. 다행한 일이면서 미안한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남편에게 나는 가족들을 두고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다그치기나 했으니까. 남편은 본인이 힘들어도 처자식들이 잘 살고 있으면 된 거라 여기며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는데, 내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안 든다"라고 했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언젠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큰아이의 같은 반 친구가 하원을 하며 합류해서 논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말을 걸어서 몇 마디 나눴는데 그 엄마가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그랬는지 단순히 개인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영어나 한글 쓰기, 숫자 연산 등 학습적으로 사교육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며 영어 그룹수업을 같이 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왔다. 심지어 엄마들끼리 독서모임도 하고 있다고. 이 나이땐 그저 잘 노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도 조바심이 생길 정도의 제안이었다. 내가 교육에 무관심했나, 혹시 우리 아이가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부터 해서 무엇을 얼마나 시키면 한 달에 비용이 얼마나 들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이 때 누가 얼마를 저축을 하고, 자녀 사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입직 n연차에 계급이 무엇이고 하는 것들이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내가 선택하고 행한 일들에 대한 믿음을 사그라들게 했고, 남편도 영향을 받아서 같이 위축됐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우리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에 선뜻 서로 그렇다고 얘기하질 못했으니까. 기준을 타인에 두니 비교는 한도 끝도 없었고 우리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졌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바꿔 남편과 내가 아이가 하나 일 때, 아이가 없을 때로 돌아가서 예전의 우리를 돌이켜봤다. 그때 우리는 대출로 전세 아파트에 살다가 빚을 더 내서 어쨌든 집도 차도 샀으니 그땐 빚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차도 있고 집도 있다고, 부채가 힘들면 팔고 다시 예전처럼 살면 된다고, 가마솥에 누룽지 긁듯 눌어붙은 희망들을 긁어모아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저 우리 가족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는 소소한 삶의 목표도 상기하면서.


어쩌면 우리가 낙오라고 생각했던 그 길 끝에 놓인 건 우리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결승선이었는지도. 각자의 인생의 피니쉬라인(finish line)은 각자가 만드는 법. 내가 선택한 길이 트랙이고 내 페이스대로 완주하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도 일등도 꼴찌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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