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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환규 Aug 13. 2023

어느 환자와 판사의 잠재 살인(殺人)

성공적인 수술을 하고도 11억 배상에 유죄까지 확정된 흉부외과 의사

직업이 변호사인 어느 환자


2016년 어느 40대 남성 A씨는 건강검진에서 우측 폐의 위쪽, 즉 우상엽에 결핵이 의심되는 소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우측 폐는 3개의 엽으로 되어 있고 가장 윗쪽에 있는 부위에 병변이 발견됨)


흉부CT 촬영 결과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전문의로부터 "폐렴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은 A씨는 항생제를 처방 받아 복용했다. 그러나 특별한 변화가 없었고, 이후의 흉부방사선검사, 기관지내시경검사 등에서 염증이 진행됨을 확인되어 폐결핵 의심 하에 항결핵제 처방을 받았다. (폐의 염증은 종종 원인을 구분하기가 힘들며 폐암과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런데 수개월 후 다시 촬영한 흉부엑스레이에서 우상엽의 병변은 오히려 진행되는 양상이 확인되었고, 같은 날 촬영한 흉부 CT에서 기존의 병변 부위는 호전이 되었으나 기존 병변의 주위에 새로운 병변이 진행되고 있음이 보였다. 이 경우 병변은 염증일 수도 있지만, 폐암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진단 목적의 수술


의료진은 '진단 목적의 수술'을 결정했다. 이것은 확실한 진단이 내려지기 전에 수술을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일반적으로는 진단이 내려진 후 수술의 범위를 결정해서 수술에 들어가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단순한 혹이 아니라 염증소견이 동반되어 있을 때에는 수술을 통해 병변의 조직 전체를 떼어내기 전에는 확실한 진단이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진단 목적의 수술을 시행하는데, 수술을 통해 많은 조직을 떼어내어 응급으로 조직검사(냉동생검병리판독)를 한 후, 이 결과에 따라 최종적인 수술의 규모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의료진은 병변의 크기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암이 아닌 것으로 나올 경우 '쐐기절제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후 수술에 들어갔다. 쐐기절제술이란 폐의 일부분을 마치 쐐기처럼 제거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료진은 계획했던 대로 쐐기절제술을 하였고 떼어낸 조직을 냉동생검병리검사에 보낸 결과 암세포가 없는 염증소견만 있다는 회신을 받았다. 그러나 의료진은 그것으로 병소가 완전히 제거될지에 확신하기 어려웠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냉동생검병리검사라는 것이 응급상황에서 말하자면 간이로 판독하는 방법으로 최종적으로 세포염색 후에 보는 정식 판독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방법이고, 두 번째 이유는 염증 소견이 중엽 가까운 곳까지 퍼져있어 쐐기절제술로 염증이 완전히 제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의료진은 쐐기절제술로 끝내지 않고 수술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우상엽을 제거하는 우상엽절제술을 시행하였다.


그렇게 수술은 잘 끝났고, 환자는 무난히 건강하게 회복했다. 냉동생검병리검사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음'의 결과만 있었지만, 최종적인 병리검사에서 결핵으로 판독되었고 이 경우 폐엽절제술을 시행한 것이 결과적으로 환자의 완치에 도움이 된 것이다. 


예상치 않았던 전개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다.

환자가 의료진에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나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 암세포가 없다면 쐐기절제술을 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들어갔는데, 우상엽절제술이라는 폐엽절제술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은 설명의무 위반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치료비, 간병비, 위자료와 폐엽절제술을 받음에 따른 소득상실비용까지 모두 배상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의료진은 어이가 없었다. 

첫째, 폐엽절제술은 환자의 완전한 회복을 위한 의료진의 최선을 조치였고,

둘째, 폐엽절제술을 받음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운동능력에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쐐기절제술과 폐엽절제술 모두 수술 후에 남은 폐가 늘어나 비어있는 공간을 모두 채우게 된다. 한쪽 폐를 모두 절제해도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쐐기절제술과 폐엽절제술은 물론이다.)

그리고 셋째, 쐐기절제술과 우상엽(폐엽)절제술은 폐의 절제범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폐기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즉 쐐기절제술을 우상엽 절제술로 전환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측의 피해는 없고, 오히려 염증의 완치에 도움을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환자는 결국 의료진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환자의 직업이 변호사였다)

그리고 1심부터 3심 대법원까지 모두 환자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종 대법원의 판결은 금년 2023년 2월에 확정되었다.

법원은 병원측이 환자에게 1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최종 판결했다.

민사소송과 별도로 업무상과실치사 죄명의 형사 소송도 제기되었는데, 2심은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는 1천만원의 벌금형으로 낮춰졌으나 결국 형사소송에서도 의료진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흉부외과 의료진은 환자의 수술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의 범위가 환자에게 사전에 설명한 범위보다 늘어났다는 이유로 11억원이라는 거금을 배상해야 했고, 업무상과칠사항이라는 범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판단이 어이없는 것이, 폐엽절제술은 변호사 업무에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는 폐엽절제술을 통해 염증의 병소가 완전히 제거되어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변호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흉부외과 의사들의 손목에 대못을 박다


이 판결을 접한 폐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판결을 접한 흉부외과 전공의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흉부외과를 전공하려던 의대생들 중 이 판결을 접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실제 그들은 큰 충격을 받고 진료현장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빈 자리로 인해 폐암환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환자들은 모르고 있다. 남아있는 흉부외과 의사들조차 적극적인 수술을 기피하고 소극적으로 자기방어에 나섬으로써 자신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흉부외과는 안그래도 지원을 기피하는 1순위로 꼽히는데, 올해 초의 대법원 판결은 아예 그들의 손목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그 피해는 결국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치료해 준 의료진을 상대로 11억원을 챙긴 변호사 직업을 가진 환자와 그의 편을 들어 의료진에게 민형사의 책임을 물은 판사들은 사명감에 진료현장을 지키고 있던 흉부외과 의사들에게 크나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진료에 필요한 소신을 빼앗았고 그 결과는 소극적 진료와 수술 기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판사가 아직도 남아서 현직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에게, "너 이래도 계속 수술을 할 거야?"라고 묻는 듯하다. 이것은 다른 환자들에 대한 잠재적 살인행위와 다름 없다. 


PS1. 과연 환자의 직업이 변호사가 아니었어도 이런 판결이 가능했을까?

PS2. 이번 판결은 폐엽절제술이 사무직인 변호사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는 수술임을 확정한 판결이다. 그러나 그것은 판사가 판결할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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