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 때 홍혜숙이라는 아이와 짝꿍이 되었다. 동그란 얼굴에 눈도 동글 입도 동글, 모든 게 동글동글해서 ‘홍시야’ 하고 불렀다. 짜증 나도 싫어도 뾰족 침을 잃어버린 동그란 머리못처럼 화냈고, 웃어도 동그란 쟁반처럼 웃었다. 홍시는 공부도 잘했다. 게다가 문학소녀여서 불독선생님의 국어시간에 홍시가 자작시를 낭독한 적도 있다. 남해 금산에 올라선 이순신 장군의 고독과 그 기개를 노래한 시였다. 언뜻 시조 같기도 했던 그 시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멋지네! 나는 홍시한테 반했던 게 틀림없다. 만날 무섭게 으르렁거리던 불독선생님도 문학소녀 홍시에게는 다정했다.
이쯤 하면 홍시가 범생 같겠지만 아니다. 홍시는 잘난 체 하지도 않았고 빈틈도 많았다. 특히 체육시간엔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허당의 몸짓으로 자주 웃겼는데 뜀틀을 뛰어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뜀틀을 깔고 앉았다. 홍시는 볼이 빨개져서 뜀틀에서 기어 내려와 다시 달렸다. 잘 되지 않는 것도 끈기를 가지고 하는 욕심쟁이였지만 어떤 것에는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것처럼 흐물한데가 있었다. 그러면 홍시는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네.’ 하는 식이었다. 그 속은 과연 떫었을지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때는 단단한 땡감 같다가도 홍시 옆구리 터진듯한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챙겨줘야 할 것 같았는데 사실은 챙겨준 적은 없고 홍시의 허당에 내가 웃고 홍시가 따라 웃는 꼴이 반복되었다.
나는 범생이 친구랑은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들은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한다.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심지어 복도 벽에 붙어있는 거울 앞에 서는 것도 못 봤다.(학교의 복도엔 거울이 쫘라락 붙어있었다. 아예 거울 벽이라고 해야겠다. 이래 놓고 선생님들은 우리더러 공부만 하란다.) 외모에 관심을 가질 나이에 거울을 본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일일 텐데도 그들은 책만 본다. 나는 내 기분에 충실한 나머지 쉬는 시간이면 코에 난 여드름을 짜느라 종일 빨간 코 못난이가 되어있었고, 홍시한테 수업 중에도 내 코가 괜찮은지 같은 질문을 해댔고, 홍시는 나사 빠진 모양으로 짜증을 냈다. 그 모습에 내가 웃었고 홍시도 따라 웃었는데 진짜 실없이 그렇게 웃어대다가 배꼽이 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마 배꼽이 빠지면 그걸 보고 또 웃을 애가 홍시였다.
범생과 완전 반대 축은 날라리들이었는데 나는 날라리랑도 친하지 않았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날라리들은 저들끼리 어울리며 뭉쳐 다녔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교실 뒤편 구석에서 그들은 사물함에 삐딱하게 기대어 우리를 애송이로 보는 듯한 눈으로 깔아보며 껌을 딱딱 씹었다. 그뿐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누구에게 죽을 정도로 끔찍한 짓거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사부작사부작 저들끼리만 모였다 흩어졌다 했다. 구린내가 나 코를 킁킁대며 가까이 가기라도 하면 “꺼져!”라고 했다. 그러면 후딱 꺼져주었다.
교실에서는 늘 불협화음의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우리가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협주곡은 우리가 연주하는 것이었다. 내가 불협화음의 트라이 앵글이라면 홍시는 언제 딱딱거릴지 모르는 캐스터네츠였다.
협주곡 바깥에서는 불량한 날라리들이 삐딱하게 서서 협주단을 째려본다. 발은 리듬에 맞추어 까딱까딱한다. 침도 날카롭게 탁, 뱉는다. 꼭 시작을 알리는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협주곡이 시작된다.
나는 학교 앞산의 안개에 푹 빠져있다가 시작된 협주곡에 얼렁뚱땅 챙챙 트라이앵글을 친다. 협주는 계속된다. 기본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어디선가 캐스터네츠의 소리가 딱딱 튀어나온다. 처음엔 불협화음에 모두 예민하게 귀 기울이다 이것도 계속되다 보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캐스터네츠는 용감하다. 딱딱 딱, 홍시는 자기가 불협화음인지 모른다. 이상한 협주곡, 예상할 수 없는 곡이란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악보 없는 협주곡은 우리와 닮았다. 그러고 보니 범생이들도 협주곡에 꼭 필요하다. 계속 연주하게 하는 지구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조용한 힘이지만 끈기 있다. 날라리들도 협주곡 밖에 있는 듯하지만 아니다. 그들도 협주곡의 일부이다.
챙챙, 딱딱 딱… 챙, 따닥 딱… 툇!
오랜만에 홍시와 통화를 했다. 이제껏 몰랐지만 홍시도 범생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도 열심히 하는데 걔네들은 자기가 도저히 범접할 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적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들은 목표가 뚜렷했다. 우리처럼 만날 웃어대는 건 실없는 사치로 보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통화하는 중에 홍시는 내 목소리에 닭날개 파닥거리는 소리는 사라진 것 같다며 이제는 인생을 얘기해도 되겠다고 이상한 소릴 했다. 어쭈, 그게 무슨 말이냐. 나 이제 책도 좀 보고 작가도 되었지 않냐고 말은 했지만 이미 쭈글쭈글해지고 난 뒤였다. 홍시는 여전히 웃으면서 솔직하다. 무섭네.
이제는 통화도 되었으니 연락하며 살자고 홍시가 허락했다. 고맙습니다. 이러구러 홍시와 십여 년 동안 연락을 못하고 살았다.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고 그랬을 것이다.
홍시가 고향 보건소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홍시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능 수학능력 평가에서 오지선다 답안지에 답을 한 칸씩 밀려 쓰는 바람에 원하는 과로 가지 못했다. 수학을 특별히 잘했던 홍시였다.
나답기도 하고 너답기도 한 실수에 훗날 우린 웃었다.
나는 홍시가 과학자나 연구원이 될 줄 알았다. 어느 날 홍시가 고향을 떠난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면서도 시험 준비를 한 것이다. 너답지 않게 무슨 공무원이냐 했더니 자기 다운 연구 쪽 일을 하는 공무원이 된다고 했다. 일하면서도 말없이 공부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었다. 역시 홍시네!
이십 대의 홍시는 서울로도 자주 연수를 왔는데 나의 반지하 방에서 며칠씩 묵었다. 한 번은 홍시가 충전식 소형 청소기를 사놓고 깜빡하고 놔두고 가버렸다.
“홍시야, 이거 두고 갔네. 내가 잘 쓰고 있을게.” 홍시 덕에 무선청소기의 편리함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결혼하자 홍시가 크리스털 컵세트를 선물하려고 사놨다고 했다. 그러더니 “언제 볼 줄 모르겠네. 일단 잘 가지고 있을게.” 하더니 홍시의 신혼살림이 되어버렸다. 홍시의 결혼식에서 낸 축의금보다 더 많은 교통비를 거절하지 않고 냅다 받아 오기도 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그러면서도 의가 상한 일이 한 번도 없다.(나는 그렇다!) 다른 곳에서 이랬다면 벌써 의절 대상 1호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누울 자리를 보고 누울 눈치와 염치 정도는 내게도 있다.(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홍시가 다시 나에게 닭날개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해서 나는 왜 귀여운 오리와 참새도 있고, 우아한 백로도 있는데 하필 닭날개는 뭐냐, 먼지 날리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라고 했다. 맛은 닭날개만큼 맛있는 것도 없잖아!
전화를 끊었다. 또 언제 통화할지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앞으로 더 기대된다고 했다. 예상할 수 없는 협주곡처럼. 홍시와 나의 교집합에는 긴 공백의 기간이 있었지만 우리는 여중시절만으로도 언제든 다시 어제 일처럼 떠들 수 있었다. 사실은 각자 앞으로 더 기대되는 삶보다 지금 이 자리를 더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을 서로 알고 있다.
서울의 나의 단칸방에서 홍시가 오렌지를 까면서 연신 흥얼거리던 게 생각난다.
“홍시야 흥얼거리는 게 버릇이야?” 내 말에 홍시가 말했다. “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 돼. 기분이 좋아져.”
홍시는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게 아니라 흥얼거려서 기분이 좋아진단다. 공기를 단숨에 바꿔버리는 대단한 홍시. 통화가 끝났는데도 유쾌한 캐스터네츠 소리가 딱딱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