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북을 만드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다음 주면, 드디어 독립출판 마지막 강의예요!"
선생님의 함박웃음에 나도 모르게 '우와, 드디어 6주의 대장정이 끝이 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한심한 인간.
그 뒤에 이어질 대사는 상상도 못 하다니.
"그러니까, 우리 씨! 내일 오전 9시까지 표지와 내지 작업 완료 해서 내주세요."
"네? 지금이 오후 8시인데요?"
"후훗. 원래 마감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답니다."
선생님의 웃음을 타고 온 비수가 내 가슴에 적확히 박혔다.
수업이 끝난다고만 생각했지. 내 책의 마감도 같이 다가가오고 있었음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원고는 바로 출판을 하는 게 아니라 샘플북만 만들어 보는 거라, 부담 많이 갖지 말라고 그동안 누누이 말씀하신 터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샘플북이긴 한데, 이 원고에 마침표는 다 찍혀 있어야 하겠죠?"
"네...."
"이게 샘플북이긴 한데요. 여기, 악마에게만 보이는 인생 삼세판 상담 지는 양피지 서식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 바꾸실 수 있겠죠?"
"네....."
"잘 나오고 싶죠? 샘플북? 표지는 전체적인 채도를 맞춰서 인디자인 위에 올려 넣기만 하면 돼요. 책 등 구하는 건 우리 저번 시간에 배웠죠? 간단하죠?"
간단하긴 한데요. 쓴생님...제가 인디자인은 개 초보라서요. 겨우 오기 하루 전까지 삽질하다 오는 건데. 솔직히 표지 올리는 건 자신이 없는데, 대신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생각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 그럼요. 선생님."
"그렇죠! 아주 훌륭한 학생이에요."
훌륭한 학생의 이마는 순식간에 구겨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지 페이지 번호를 지우지 못 한걸 보고 선생님이 '이거 혹시 의도하신 거예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결국 페이지 번호를 지우는 법을 몰라서요.라는 부끄러운 대답을 입 밖에 살포시 내려놨는데. 내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이 금세 나를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을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이곳엔 훌륭하지만 걱정 많은 학생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보다 더 뛰어난 선생님이 있었다.
"아! 그리고 우리 씨 소설 너무 재밌던데요. 아직 교정교열 안 본 상태에서 읽었는데도 너무 흥미로웠어요. 같이 있던 강사님도 글이 좋데요."
"네? 정말요?"
매달 수십 권의 책을 내는 선생님의 글이 좋다는 말을 듣다니 눈물이 핑 돌뻔했다.
"그러니까, 내일 오전 9시. 작가는 마감은 꼭 지키는 거예요. 알죠? 우리님 책 기대할게요."
"네!! 그럼요!"
책방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선생님은 레벨 조차 가늠 할 수 없는 고단수였다는 걸.
그렇게 나는 새벽 2시까지 영혼을 갈아 넣어 샘플북을 제출했다.
* 인디자인 페이지 숫자를 마스터 파일이 아니라 페이지에서 지울 때는 시프트+ 컨트롤 키를 같이 누르면 삭제된다.
* 표지의 책 등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총 페이지 수, 내지에 들어갈 용지 g, 토너 잉크를 선택하면 사이트에서 책 등 넓이를 계산해 준다.
https://prinpiamall.co.kr/?pn=product.view&pcode=A3360-Z7477-M6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