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초툰 Apr 25. 2024

책을 만드는 건 영혼을 갈아 넣는 일

샘플북을 만드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다음 주면, 드디어 독립출판 마지막 강의예요!"


 선생님의 함박웃음에 나도 모르게 '우와, 드디어 6주의 대장정이 끝이 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한심한 인간.

그 뒤에 이어질 대사는 상상도 못 하다니.


"그러니까, 우리 씨! 내일 오전 9시까지 표지와 내지 작업 완료 해서 내주세요."

"네? 지금이 오후 8시인데요?"

"후훗. 원래 마감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답니다."


선생님의 웃음을 타고 온 비수가 내 가슴에 적확히 박혔다.  


 수업이 끝난다고만 생각했지. 내 책의 마감도 같이 다가가오고 있었음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선생님께서는 원고는 바로 출판을 하는 게 아니라 샘플북만 만들어 보는 거라, 부담 많이 갖지 말라고 그동안 누누이 말씀하신 터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샘플북이긴 한데, 이 원고에 마침표는 다 찍혀 있어야 하겠죠?"

"네...."

"이게 샘플북이긴 한데요. 여기, 악마에게만 보이는 인생 삼세판 상담 지는 양피지 서식을 넣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 바꾸실 수 있겠죠?"

"네....."

"잘 나오고 싶죠? 샘플북? 표지는 전체적인 채도를 맞춰서 인디자인 위에 올려 넣기만 하면 돼요. 책 등 구하는 건 우리 저번 시간에 배웠죠? 간단하죠?"


간단하긴 한데요. 쓴생님...제가 인디자인은 개 초보라서요. 겨우 오기 하루 전까지 삽질하다 오는 건데. 솔직히 표지 올리는 건 자신이 없는데, 대신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생각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 그럼요. 선생님."

"그렇죠! 아주 훌륭한 학생이에요."


훌륭한 학생의 이마는 순식간에 구겨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지 페이지 번호를 지우지 못 한걸 보고 선생님이 '이거 혹시 의도하신 거예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결국 페이지 번호를 지우는 법을 몰라서요.라는 부끄러운 대답을 입 밖에 살포시 내려놨는데. 내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이 금세 나를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을 만들어버렸다.


다행히 이곳엔 훌륭하지만 걱정 많은 학생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보다 더 뛰어난 선생님이 있었다.


"아! 그리고 우리 씨 소설 너무 재밌던데요. 아직 교정교열 안 본 상태에서 읽었는데도 너무 흥미로웠어요. 같이 있던 강사님도 글이 좋데요."

"네? 정말요?"

매달 수십 권의 책을 내는 선생님의 글이 좋다는 말을 듣다니 눈물이 핑 돌뻔했다.

"그러니까, 내일 오전 9시. 작가는 마감은 꼭 지키는 거예요. 알죠? 우리님 책 기대할게요."

"네!! 그럼요!"

책방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선생님은 레벨 조차 가늠 할 수 없는 고단수였다는 걸.

그렇게 나는 새벽 2시까지 영혼을 갈아 넣어 샘플북을 제출했다.


면지가 들어가는 페이지가 필요해서 다시 디자인. 앞으로 무조건 그림은 3000픽셀 이상
인디자인 페이지 번호를 지우는 법을 몰라서 한참을 보고 있었던 9페이지.

* 인디자인 페이지 숫자를 마스터 파일이 아니라 페이지에서 지울 때는 시프트+ 컨트롤 키를 같이 누르면 삭제된다.

* 표지의 책 등을 구할 수 있는 사이트에 들어가 총 페이지 수, 내지에 들어갈 용지 g, 토너 잉크를 선택하면 사이트에서 책 등 넓이를 계산해 준다.

https://prinpiamall.co.kr/?pn=product.view&pcode=A3360-Z7477-M6326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은 좀도둑이 아니라 대도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