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년 연말연시를 실감하는 감흥은 잦아들기만 하는데도 막상 2024년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나니 마음속에서 결심의 본능이 울렁였다. 몇 년 전부터는 새해 다짐으로 매번 운동, 독서, 글쓰기를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더 납작하고 넓어져서 그저 건강과 행복만을 바라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결심의 본능이 가져온 새해 다짐은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나 성과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마음가짐에 대한 것으로 정리되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듣는 곡이 그 해의 향방을 정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인 걸 알면서도 나도 재미 삼아 기운차고 즐거운 노래를 찾아 듣고는 했는데 올해는 그 마음가짐을 담아 선곡을 했다. <Legends Never Die>. 지극히 평범하여 그 어떤 전설도 되어보지 못한 내가 갑자기 왜 절대 죽지 않는다고 외치는 노래를 골랐느냐 하면, 어쨌거나 나의 세계인 내 인생에서는 결국 레전드의 자리에 오른 것도 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그 사람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세포들이 나온다. 이성 세포, 감성 세포, 사랑 세포, 세수 세포, 스케줄 세포 등등... 그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포는 '프라임 세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획기적이고 귀여운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아 생각해 본다면 내 삶에도 프라임 세포가 활약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을 만들어내고 이끌어낸 나를 레전드라 부르고 싶다. 그간 내 인생에 있던 수많은 '나' 중에 지금의 나를 서 있게 만들어 준 그 전설들을 기억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떻게 했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서 맘에 드는 성과를 이뤄낸 적도 있었고, '어떻게 버텼지?' 싶을 만큼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고 결과야 어찌 됐든 결국 끝을 봤던 순간도 있었고, 정말 훌륭하게 해낸 일도 있었고, 정말 간절했던 순간도 있었고, 내가 기특했던 적도 있었고, 마음이 짠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나 자신이 낯설정도로 끈질겼던 그때의 나는 그 순간을 불사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레전드 네버 다이. 전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나의 빛나는 순간과 처절한 순간을 만들었던 그때의 나는 죽지 않았다. 분명 내 안에 잠들어 있고 앞으로의 내 삶에서 필요할 때 죽지 않고 몇 번이나 살아 돌아와 다시 그 영광의 순간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레전드이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너무 소박한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나의 인생이라는 이 작은 세계 안에서는 분명히 전설적인 게 맞으니까.
아직 어두운 겨울 아침, 출근하면서 차가운 공기 속으로 뜨거운 입김을 불어 길을 트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잠룡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설은 세계가 부르는 한 절대로 죽지 않고 나의 일부가 된다. 올해에는 또 어떤 내가 나를 구해낼지 기대가 된다.
https://youtu.be/4Q46xYqUwZQ?si=ohpJrtiR9Vpn8B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