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식 당일이 되었다. 남자와 여자를 포함해 스무 명 정도가 되는 가족들이 함께했다. 가족들의 눈빛은 투명했다. 마치 그 둘의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카메라 렌즈처럼 말이다. 약혼식을 잔뜩 기대한 가족들은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차려입을 수 있는 옷을 입고 왔다. 예약한 식당에 들어올 때마다 남자와 여자에게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면서.
약혼식의 순서를 고민하던 여자는 남자와 상의 후 간결하되 서로에 대한 서약만큼은 확실하게 하고자 했다. 간단하게 가족에 대한 소개를 한 후 주례를 들었다. 주례는 독특하게 나이가 꽤 드신 여자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여태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조언해 주었다.
-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룬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우선시하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예요.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 같았다. 남자와 여자는 반짝이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기대되면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주례를 마치고 둘은 서약서를 직접 읽었다.
- 나 이은은 남편 빈을 위해 평생 사랑하고 위하겠습니다. 혹여나 갈등이 생기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하며, 서로에게 상처보단 위로를 전하겠습니다.
- 나 빈은 아내 이은을 항상 아끼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나 힘든 상황에도 책임을 지며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에서 두 손을 놓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읽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서로를 위해 서약서를 읽는 건 굉장히 수줍은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다.
서약서를 읽은 후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해 그리고 참여해 준 가족들을 위해 축가를 준비했다.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에 대한 곡이었다. 여자는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을 꼭 붙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평탄하게 부르는듯 싶었다. 1절이 끝나고 간주가 흐를 때 여자는 가족을 쭉 바라보았다. 나의 인생을 만들어 준 사람들과 앞으로 함께 만들어 나갈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남자의 엄마와 여자의 엄마, 그리고 여자의 언니가 눈물을 투둑투둑 흘리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보통 시댁 어른이 눈물을 흘리면 아들을 보내기 싫어서라고 생각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자의 아빠가 하늘나라에 계시기에 여자는 오히려 남자 엄마의 눈물이 이해가 됐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애틋할 엄마와 언니를 보며 여자는 오열하고 말았다. 남자는 겨우겨우 눈물을 참으며 여자의 손을 잡고 2절을 이어 불렀다. 그렇게 노래가 모두 끝나자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남았다.
어쩌면 형식적이었을 수도 있었을 약혼식에 모두 자신의 마음을 쏟아냈다. 남자와 여자가 꾸밈없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드러내듯 가족들도 그러했다. 그렇게 평생 기억에 남을 약혼식을 마쳤다.